“감옥서 1㎞ 떨어진 마잉푸 위쪽”···안중근 유해 위치 단서 일본 신문 첫 공개
2026.03.26 06:00
안중근 의사의 유해가 매장된 위치를 추정할 수 있는 구체적 단서가 담긴 일본 신문 기사가 새롭게 발굴됐다.
안 의사 서거 116주기를 하루 앞둔 25일 이규수 전 히토쓰바시대 교수는 서거 약 5개월 뒤인 1910년 9월 10일 보도된 ‘오사카마이니치신문’(현 마이니치신문)의 기사를 처음으로 공개했다. 보도에는 기자의 상세한 묘소 현장 답사 내용과 함께 뤼순 감옥 관계자의 증언이 포함돼 있다. 이 전 교수는 “매장지의 구체적인 거리 정보와 매장 위치를 특정할 수 있는 일본인 사형수 실명이 포함돼 있어 유해 발굴 작업에 중요한 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신문에는 안 의사의 묘소를 직접 찾은 기자의 상세한 기록이 담겼다. 기자는 안 의사의 지지자로 알려진 구리하라 사다키치 전옥(감옥 형무소장)이 붙여준 안내자를 따라 묘지를 방문했으며, 묘지는 감옥에서 약 10정(약 1㎞) 떨어진 “울타리도 산도 없는 산 중턱”에 위치해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기존에 알려진 감옥 담장 인근이 아니라 감옥 관리 구역 내에서도 일정 거리가 떨어진 지점임을 시사한다.
지형에 대한 묘사도 포함됐다. 기사에는 묘지에 대해 “정면으로 마주 보이는 산등성이 정상에는 청나라 통치 시기의 기병영(騎兵營) 터가 거의 완전한 형태의 흙담으로 남아 있고, 고개를 숙이면 오른편으로 마잉푸(馬營浦)라 불리는 작은 부락 거리의 한쪽 끝과 약 1정(약 109m) 떨어진 남쪽 산기슭이 가깝다”고 적었다. 이어 “이를 ‘마잉푸의 위쪽’이라 부를 수 있으며, 삼면이 산으로 막혀 있고 남쪽만이 마잉푸 마을을 넘어 멀리 황금산과 라오후웨이를 마주하고, 그 사이로 항구 밖 바닷물이 보인다”면서 “서쪽으로는 바이위산(白玉山) 정상의 표충탑이 솟아 있다”고 기록됐다.
마잉푸는 뤼순 감옥 공동묘지가 있던 둥산포(東山坡)의 옛 지명으로 현재는 다롄시가 문화재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관리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 일대를 유력한 매장지로 지목해 왔다.
또 묘소 위치를 특정할 수 있는 단서도 제시됐다. 안 의사는 같은 날 같은 시각에 처형된 강도살인범 등과 함께 매장됐으며 묘지는 가장 앞줄에 위치했다는 것이다. 기사에는 “2~3년 전 다롄에서 중국인 환전상을 꾀어내어 2천 엔을 강탈하고 그를 교살한 모토야마 겐이치(本山謙市), 야마무라 세이이치(山村精一) 등을 비롯해 불과 얼마 전 처형된 중국인 살해범 혼다 오토마쓰(本田音松), 일본인 살해범 위안광가오(袁廣高) 등의 묘소와 인접해있다”고 적었다.
일본 당국이 안 의사의 묘가 발견되는 것을 막기 위해 철저히 위장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구리하라는 “안중근의 형제가 유해 반환을 강하게 원했고 일본인들의 감정도 격앙돼 있어 신중히 고려했다”며 “성명과 사망 연월일을 기록한 널판지를 묘표로 세우지 않고 (관과 함께) 묻어서 흙을 덮고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도록 방치해 매장 지점의 형태와 흔적을 완전히 감췄다”고 말했다.
또 “특별히 들여온 백목(표면을 가공하지 않은 목재)으로 일본식 침관을 만들었다”며 “발굴을 막기 위해 일반 죄수처럼 지하 4척(약 1.2m) 이내에 묻지 않고 특별히 7척(약 2.1m) 아래로 깊이 매장했다”고 밝혔다. 매장 장소에 대해서도 “이 감옥 부속 수인 묘지 안”이라고 확인했다.
이 기사는 ‘방외생’이라는 이름으로 나갔는데 고마쓰 모토고 기자의 필명이라고 이 전 교수는 전했다. 고마쓰는 다롄 랴오둥신보와 오사카마이니치 기자 일본 고치현 도요신문사통신원 등으로 활동한 언론인이다. 1910년 2월 안중근 의사 재판을 방청하고 법정 스케치를 남겼으며 이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전시된 바 있다.
안 의사는 사형집행 전 두 동생에게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한)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 뒀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안 의사 유해 발굴은 약 40년 전인 1986년부터 정부와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추진돼 왔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매장 위치는 확인되지 않았다.
2005년에는 남북 장관급회담에서 공동 발굴에 합의하고 중국 정부도 협조 방침을 밝히면서 한때 탄력을 받는 듯했다. 구리하라의 딸 이마이 후사코의 증언에 따라 위안바오산이 매장 추정지로 지목돼 2008년 3~4월 한·중 공동 발굴이 이뤄졌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같은 해 중국은 샤오파오타이산(小炮台山) 등에서 추가 발굴을 진행했으나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둥산포는 2006년 남북 공동 발굴단이 현장 답사만 실시한 곳이다.
이 전 교수는 “위안바오산이나 감옥 바로 옆이라는 기존 발굴 지점에서 나아가 뤼순 감옥 옛터를 기점으로 반경 1㎞ 지점을 위성지도와 고지도를 대조해 봐야 한다”면서 “청나라 기병영터와 마잉푸 부락 위치, 기사에 명시된 일반 형사범의 매장 기록 확인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울러 “한민족 전체가 공유하는 역사적 인물인 안 의사의 유해 발굴을 남북이 공동으로 추진한다면 민족 공동의 역사 인식을 회복하고 상호 신뢰를 구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재명 정부도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에 대한 의지를 여러 차례 밝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월 방중 당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에게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협조를 요청했다. 또 2월에는 안 의사의 유묵이 116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소식을 엑스에 전하면서 “정부도 안중근 의사 유해 발굴과 송환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국가보훈부는 지난 18일 학계와 단체 등 전문가를 비롯해 국회, 정부 관계자 등 총 23명으로 구성된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 민·관 협력단’을 발족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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