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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ABC'가 아니다...유시민 작가가 놓친 정치의 본령

2026.03.25 19:01

[주장] '뉴이재명' 현상은 전통적 가치와 새로운 가치의 충돌...나의 정의와 상대방의 정의, 다를 수 있어유시민 작가의 'ABC론’을 둘러싸고 여권 안팎에서 뜨거운 토론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래는 하헌기 새로운소통연구소 소장의 주장과 의견을 담은 글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이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환영합니다. <편집자말>

'뉴이재명'에 대해 이런저런 아전인수식 해석들이 난무한다. 유시민 작가의 'ABC론'도 그 중 하나이다. 하지만 그 여러 해석들의 공통적인 등뼈는 하나다. 뉴이재명은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자는 아니었지만 이재명 대통령의 통치에 공감해 대통령을 지지하게 된 유권자층'이란 전제가 중론이다.

혹자는 여론조사상 국정지지율과 정당지지율의 갭에서 나타나는 숫자로 '뉴이재명'을 읽는다.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지지하는 약 10~15%의 그 숫자가 '뉴이재명'이라는 것이다. 혹자는 실용과 중도·보수라는 키워드로 '뉴이재명'을 읽는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들을 대변하거나 편승하려는 '정치인' 혹은 '스피커'들을, 유시민 작가는 B그룹으로 정의했다.

반면 '뉴이재명'과 대척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인가? 유시민 작가의 분류에 따르면 그들은 A그룹이다. '가치를 중시하는 코어 지지층'으로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부터 이재명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진보 진영의 전통적 지지층을 가리키는 것 같다. 그리고 A그룹과 B그룹의 교집합을 C그룹으로 정의했다. 가치를 추구하면서도 현실적 이익과 생존을 함께 고려하는 합리주의자들이란 얘기다.

'뉴이재명' 현상은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25일 유튜브 방송 <매불쇼>에 출연한 유시민 작가
ⓒ 매불쇼

유시민 작가의 벤다이어그램 분류에 적잖은 사람들이 불편함이나 이견을 표했다. 유권자를 임의로 라벨링해 등급을 매기고 갈라치기한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여기엔 착시가 있다. 엄밀히 말하면, 유시민 작가의 벤다이어그램은 유권자를 갈라치기해서 그룹핑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A그룹은 유권자를 가리키는 게 맞는데 B그룹은 가리킨다기 보다 정치인이나 스피커를 가리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이 부분에 대해 유시민 작가는 25일 매불쇼에 출연해 그 부분이 일견 맞는 지적이라고 인정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A를 가치를 중시하는 전통적 민주당 지지자들로, B를 뉴이재명 지지자들을 가르키는 것으로 오해한 측면이 있다. 물론 나는 유시민 작가가 지지자, 정치인, 스피커를 너무 단순도식화해서 말했기 때문에 그런 오해가 발생하는 건 필연이라고 봤다.

이런 저런 혼탁한 아전인수들이나 뇌피셜로 의미부여를 해놓은 단순도식들을 전부 걷어내고 보자.

'뉴이재명'과 같은 현상은 처음있는 일인가? 그렇지 않다. 실은 시대가 전환될 때마다 늘 있어 왔던 일이다. 가령 말이 '김대중·노무현·문재인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전통적 지지층'이지, 그 지지층들도 늘 하나의 가치를 보고 정치적 지지의사를 표해온 건 아니다. 당장 유시민 작가부터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지지자였다고 말하기가 어렵다. 본인 스스로 평화민주당에 몸 담았을 시절부터 김대중 총재와 동교동계 인사들을 싫어했다고 밝히지 않았던가? 유시민 작가는 대표적인 친노 인사로 평가받지만 과거엔 심지어 김대중 대통령 더러 하야하라 일갈한 적도 있다.

그런데 당시까지만 해도 유시민 작가의 분류법에 따르면 김대중 대통령과 동교동계는 A그룹을 대변하는 정치인들이다. 그렇다면 당시 유시민 작가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노사모'라는 새로운 지지층에 편승해 A그룹을 공격한 것인가?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실제로 유시민 작가가 노무현 대통령으로 상징되는 가치에 깊이 공감한 반면, 김대중 대통령에게는 문제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추정한다. 자신의 이익 때문이 아니라 그냥 가치의 차이였을 것이란 뜻이다.

시대가 변하고, 바뀐 시대에 맞는 새로운 의제가 사회에 설치되면, 그것을 상징하는 새로운 깃발이 서게 마련이다. 김대중이라는 깃발과 노무현이라는 깃발은 큰틀에서 지향이 같을 지 모르겠지만 엄연히 다른 깃발이다. 김대중이라는 깃발 밑에 모인 주류 정치인들은 동교동계였고, 코어 지지층은 호남이었다. 노무현이라는 깃발 밑에 모인 주류 정치인은 친노였고, 코어 지지층은 '노사모'였다. 각 깃발 아래 모인 정치인도 지지층도 조금씩 중첩은 될 지 몰라도 완전히 일치하는 집단이라 보기는 어렵다.

시대의 전환기에 구주류 혹은 전통적 지지기반과 신주류 '뉴코어지지층'이 충돌하는 사례는 흔했다. 동교동계와 친노 간의 갈등뿐만이 아니다. 호남은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기반이었지만 민주당이 수도권 정당으로 확장되던 문재인 대표 시기에는 민주당을 심판하기도 했다. 그런 현상들은 가치와 이익의 대립이라는 단순도식으로는 설명하기 어렵다.

선량한 의도가 낳는 '갈라치기'

기본적으로는 전통적 가치와 새로운 가치의 충돌이다. '뉴이재명' 현상도 비슷하다. 이재명이라는 깃발이 사회에 새로 설치되고, 거기에 동의해 모여든 사람들 중엔 전통적 지지층과 생각이 다른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늘 있어 왔던 가치와 가치의 충돌이 발생하는 것이다.

정치의 본령이란 충돌하는 가치들을 조율하거나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절충해 사회적 합의를 창출하는 일이다. 그 과정에서 노선투쟁이 발생하기도 하고 끊임없는 대화와 타협을 통한 협상이 전개되기도 한다. 이 과정에서 진짜 문제는 정치가 전통적 지지층을 대변하느냐 새로운 지지층을 대변하느냐가 아니다. 어떤 정치인은 기업을 대변하고 또 어떤 정치인은 노동계를 대변하기도 하는 것처럼, 당연히 뉴이재명을 대변할 수도 있고, 전통적 지지층을 대변할 수도 있다.

문제는 누구를 대변하느냐에 있는 게 아니라 자기만 '가치'를 추구한다는 독선과 배타적인 태도이다. 유시민 작가의 ABC론에 문제의식을 느끼는 이유다.

'뉴이재명' 현상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자신의 정치적·비평가적 성장의 동력으로 삼고 싶어하는 사람들도 물론 존재할 것이다. 유시민 작가 주장대로, 그런 사람들 입장에서는 전통적 지지층의 힘이 빠지고 '뉴이재명'이 더 커지는 것을 원할 것이다. 그래야 자신의 지지기반이 커질 테니까. 그런 정치·비평 활동은 필연적으로 유권자를 갈라칠 위험을 내포하기에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그 반대도 얼마든지 성립한다. 유시민 작가의 ABC론도 새로운 가치를 추구하는 지지층을 환대하고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는 지지층과 통합을 모색해 민주당의 더 큰 확장을 모색하자는 주장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전통적 지지층은 '가치'를 좇는데, '뉴이재명'은 '가치 중심'이 아니란 전제가 깔린 갈라치기다.

본래 '갈라치기'라는 게 대단한 악의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언행은 진정성이 있고 가치 중심인데, 반대편에 선 이들의 언행은 '자신의 이익을 위한 모종의 의도'가 있는 모략이란 식으로 사고하는 '윤리관'과 '정의관'을 동력으로 한다.

과거 문재인 전 대통령은 의사들이 파업을 하니 간호사들의 노고를 칭찬하는 글을 SNS에 올렸다. 정말로 노고를 칭찬한 것이고, 악의로 한 일이 아니리라 생각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갈라치기로 인식했다. 선량한 의도로 한 일도 결과적으로 갈라치기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젠더 갈등 문제에서도 문재인 정부는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2018년 한때는 20대 남녀 공히 80%대에 육박하던 지지율이 단 2주 만에 20%p가 이격되는 특이한 현상이 발생한 적이 있다. 2주 만에 20대 남성들의 국정지지율이 20%p 빠졌기 때문이다. 그런 현상이 발생하면, 정치는 원인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탐색하고, 다시 통합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시절 민주진영이 한 일은 덮어두고 '혐오에 빠진 이대남' 운운이었다.

유시민 작가 역시 마찬가지였다. 과거의 일이기는 하지만, 1번남·2번남으로 갈라 2번남을 비난하고 어떤 이대남 층을 두고는 '쓰레기'라고 힐난하기도 했다. 악의로 했겠는가? 실제로 유 작가가 기준 삼는 모종의 윤리적 잣대가 있을 것이다. 그 잣대로 피아를 식별해 적을 가장 저열한 집단으로 묘사하고 우리 진영에는 윤리적 위안을 주는 논리구조를 제공하는 사람이 유시민 작가다. 하물며 ABC론은 그것을 민주 진영 내부에 대고 던진 셈이니 적잖은 사람들이 상처를 받을 수밖에.

나의 정의와 상대의 정의는 다를 수 있다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지만 이재명 대통령은 지지하는 약 10~15%의 그 숫자가 '뉴이재명'이라는 것이다. 사진은 이재명 대통령과 김혜경 여사가 2월 11일 충주 무학시장을 방문해 상인들을 만나고 현장 민심을 청취하는 모습.
ⓒ 청와대 제공

유시민 작가의 논법은 타협과 합의가 끼어들 틈이 없는 전선에서는 '신경안정제'가 된다. 가령 군사독재 정부 시절이나 12·3 내란 국면. 헌정질서와 공화국 자체를 타격하는 세력에 대해서는 대화와 타협이 낄 여지가 없다. 오직 분쇄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그런 국면에서는 '갈라치기'를 당연히 해야 한다. 같은 보수라도 보수와 극우, 공화국의 적과 공화국의 수호자를 당연히 갈라야 한다. 그리고 공화국 수호 연대를 위한 논리와 언어를 사용해야 한다.

그런데 헌정질서 안에서 전개되는 충돌과 갈등에 대해서는 다르게 대해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는 자기가 옳은 일 하는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견고한 '정의감'이 오히려 타인을 상처 입히고 분열을 촉진시킬 수 있다. 공화국 자체를 흔드는 게 아닌 이상, 나의 정의와 상대의 정의가 다르기 때문에 절충점을 찾는 것이 정치이지, 나는 정의인데 상대는 다른 이해관계로 움직인다고 가정하면, 풀리는 게 없다. '정치'가 아니라 '승패'로만 모든 게 결정되는 세계가 될 뿐이다.

그럼에도 나는 안도한다. 이런 저런 스피커들을 다 합한 것보다 중요한 스피커인 이재명 대통령의 태도 덕분이다. 이 대통령은 '자기만 옳다'는 태도가 얼마나 큰 폐단을 낳는지 명확히 인식하고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정작 '뉴이재명'을 호명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전통적 지지층의 목소리만 전폭적으로 수용하지도 않는다. 정책과 인사, 메시지에서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태도를 강하게 견지한다. 사회가 이런 저런 소음들로 소란스러워도 대통령이 이런 중심을 잡으면 결국은 일이 풀리는 방식으로 흘러가리라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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