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조롱하던 박왕열, 고개 들고 입국…살인범에서 마약왕 '전세계'로
2026.03.25 12:40
사탕수수밭에서 한인 3명 살해, 수감 중 텔레그램으로 국내 마약 유통망 장악
9년간 송환 거부했던 필리핀, 李대통령 나서자 급선회…3주 만에 절차 마무리
고강도 수사 후 구속영장 신청 방침…李 "한국 해치는 자는 지구 끝까지 추적"
필리핀에서 수감 생활을 하던 마약왕 박왕열(48)이 송환 시도 9년 만에 국내로 압송됐다. 박왕열은 사탕수수밭 총기 살인부터 마약 유통까지 필리핀과 한국을 무대로 거대한 범죄 사슬을 구축했다. 한국 정부와 사법 시스템을 조롱해왔던 박왕열은 압송 순간에도 고개를 들고 손가락질을 하며 반성 없는 태도를 보였다. 경찰은 박왕열에 대한 고강도 수사를 벌인 뒤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박왕열은 25일 새벽 민항기인 아시아나 OZ708편을 타고 필리핀 클라크필드를 출발, 오전 6시34분께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10년 만에 한국 땅을 밟은 박왕열은 7시16분께 출국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양 손에는 수갑이 채워져 있었고, 수염이 덥수룩한 상태였다.
남색 야구 모자를 쓴 박왕열은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정면과 취재진을 번갈아 응시했다. 박왕열은 고개를 숙이지 않고 꼿꼿이 든 채 공항을 빠져나간 뒤 3분 만에 호송 차량에 탑승했다.
박왕열은 '국내로 송환된 심경이 어떤가' '사탕수수밭 살인 피해자나 유족에게 할 말 없나' '필리핀 교도소에서 호화 생활을 했느냐' 등 쏟아지는 질문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이동 중 취재진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면서 "넌 남자도 아녀"라는 말을 뱉거나, 혼잣말을 하는 모습도 포착됐다.
박왕열은 경기북부경찰청 광역범죄수사대에서 수사를 받게 된다. 박왕열의 범죄 혐의를 수사하던 경찰관서 3곳 중 하나인 경기북부청이 관련 사건을 병합해 수사를 이어갈 방침이다.
유승렬 경찰청 수사기획조정관은 인천공항 브리핑에서 "지금까지 여러 수사를 통해 다수의 공범을 확인했고 수사 중에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체포 당시 압수했던 휴대전화 등 증거물을 철저히 분석하고 공범자를 조사해 마약 조직의 실체를 규명하고, 신속하게 구속영장을 신청하겠다"며 "검찰 송치 이후에도 여죄 여부를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강조했다.
체포 영장을 발부받은 경찰은 이날 조사를 마치고 박왕열을 의정부경찰서 유치장에 수감한 뒤 26일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범죄인인도조약에 따라 박왕열은 마약 관련 국내 수사와 재판이 종료된 후에는 필리핀으로 돌아가 잔여 형을 복역해야 한다.
"한국 뒤집어진다" 송환 불발 자신하던 '범죄왕' 박왕열
박왕열은 필리핀 현지에서 한국인 3명을 살해했고, 수감 중 텔레그램을 이용해 마약 유통을 전개하며 '마약왕'으로 불렸다. 현지 감옥에서 호화 생활을 이어간 박왕열은 수감 중 한국 언론과 접촉해 정부의 끈질긴 송환 요구를 조롱하며 "(한국에) 못 간다. 왜냐면 내가 마약 판 증거가 없다"면서 "말하면 뒤집어진다. 검사부터 옷 벗는 놈들도 많을 것"이라고 발언하기도 했다.
박왕열은 국내에서 수산물 수입유통회사를 운영하던 기업인이었다. 사업이 기울면서 1만207명에게서 1조960억원을 가로챈 IDS홀딩스에서 모집책으로 활동했고, 수사망이 좁혀오자 2010년 필리핀으로 도주했다.
필리핀에서 카지노 사업을 하던 박왕열은 2016년 국내에서 150억원대 유사수신(투자 사기) 범죄를 저지르고 도주해 온 한국인 3명에게 은신처를 제공했다. 박왕열은 이들에게 "필리핀 카지노 사업에 투자하면 큰 수익을 주겠다"며 7억원을 받아 챙겼다. 하지만 이후 투자 수익금 배분을 압박하자 같은해 10월11일 새벽 바콜로시의 한 사탕수수밭으로 끌고가 모두 총기로 살해했다. 살해된 한국인들의 시신에서는 잔혹한 고문 흔적도 발견됐다.
박왕열은 사건 발생 37일 만에 마닐라의 대형 콘도에서 한국과 필리핀 경찰이 꾸린 합동검거팀에 의해 검거됐다. 그러나 2017년 3월 외국인 이민자 수용소의 천장을 뜯고 탈옥했다. 결국 두 달 만에 붙잡혔지만 2019년 10월 또다시 탈옥에 성공한다. 두 번째 탈옥 당시 박왕열은 재판을 받고 돌아가던 길에 식사 대접을 미끼로 호송관들을 식당에 앉혀둔 뒤 그대로 화장실 창문을 통해 도주했다.
1년간 도주 행각을 이어간 박왕열은 이 시기 감옥에서 알게 된 동남아 3대 마약왕 중 한 명인 '사라 김(김형렬)'으로부터 마약 유통 노하우와 네트워크를 전수받았다.
텔레그램 닉네임 '전세계'로 활동한 박왕열은 필로폰, 엑스터시, 케타민, 대마 등 대량의 마약류를 국내로 밀반입해 유통망을 장악했다. 그가 구축한 것으로 알려진 하부 조직 '바티칸 킹덤'은 국내 20·30대 들을 포섭해 마약을 광고하고, 특정 장소에 마약을 숨겨두고 찾아가게 하는 '던지기' 수법으로 전국에 마약을 뿌렸다.
살인죄 등으로 필리핀 대법원으로부터 징역 60년을 선고받은 박왕열은 마약 유통을 통해 확보한 자금으로 교도소에서 호화 생활을 했다. 박왕열이 한때 수감됐던 뉴 빌리비드 교도소는 돈만 있으면 약부터 식료품, 옷 등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필리핀 정부는 그간 한국 측의 범죄인인도 요청을 거듭 거절해왔다. 기류가 바뀐 것은 이재명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면서다. 이 대통령은 이달 3일 필리핀을 국빈 방문했을 때 페르디난도 마르코스 주니어 대통령에게 박왕열의 임시 인도를 공식 요청했다. 필리핀 당국이 적극 협조하기로 하면서 불과 3주 만에 송환이 이뤄졌다.
이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엑스(X·옛 트위터)에 박왕열의 한국 송환 소식을 다룬 기사를 링크 하고 "대한국민을 해치는 자는 지구 끝까지 추적해서라도 반드시 잡는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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