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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의 약탈, 호르무즈의 덫··· 한국의 대응은?

2026.03.25 06:49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와 카타르 가스전 타격으로 글로벌 에너지 위기가 현실화됐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이 촉발한 전쟁의 뒤처리를 동맹국들에 떠맡길 심산이다.
3월2일(현지 시각), 호르무즈 인접 항구에서 한국 선원들이 직접 촬영해 보내온 아랍에미리트 제벨 알리항. ©전국해상선원노동조합연맹 제공


‘그래. 내가 도움을 요청했지. 힘이 없어서 도와달라고 했던 것 같아? 웃기지 마. 너를 시험해본 거야. 너희들은 우물쭈물하며 개겼다. 두고 보자.’ 최근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동맹국들에게 퍼부은 위협과 저주 발언들은 대략 이렇게 요약된다.

3월14일 트럼프는 본인 소유의 소셜미디어인 ‘트루스 소셜’에 한국·일본·영국·프랑스·중국을 콕 집어 ‘호르무즈 해협으로 군함을 파견해 길을 열어달라’고 요청하는 게시물을 올렸다. 중국은 고사하고 동맹국들도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민주주의 국가인 동맹국들로서는 트럼프가 비밀리에 일방적으로 저지른 전쟁에 선뜻 국민(군인)과 자산(선박)을 몰아넣을 수 없다. 트럼프는 격노하며 ‘왜 미국만 해상 교역로(호르무즈 해협)를 지켜야 하느냐’는 ‘나름 타당한’ 문제 제기로 시작해서 ‘애초에 다른 나라 군함은 필요 없었다’는 현실 부정으로 넘어가더니 ‘누가 돕고 돕지 않았는지 기억하겠다’라는 협박으로 치달았다.

그러나 동맹국 군함이 정말 필요 없다면, 트럼프는 화를 내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3월16일 기자회견에서 자신의 분노에 그럴듯한 이유를 갖다 붙였다. “그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서 요청해본 거야. 우리(미국)는 40년 동안 동맹국들을 보호해왔어. 그러나 동맹국들은 (은혜도 모르고) ‘정말 별것 아닌 사안(some-thing that’s very minor)’에도 관여되기 싫다는군.”

이 발언에 〈뉴욕타임스〉(3월16일)는 “군함 파견 요청이 동맹국들에 대한 충성심 테스트(loyalty test)였다고 시사한 것”이라고 풀이했다.

배은망덕한 동맹국들?



트럼프의 요청은 결코 ‘정말 별것 아닌 사안’이 아니다. 장기전의 수렁에 동맹국들을 밀어 넣고 그 몸뚱이들을 딛고 일어나 자신의 머리라도 진흙탕 속에서 빼내겠다는 계산에 가깝다.

‘트럼프의 미국’은 지난 3월13일 이번 전쟁의 획을 그은 결정적 작전을 펼쳤다. 이란 본토에서 25㎞ 정도 떨어진 하르그섬을 폭격해서 핵심 에너지 인프라를 제외한 상당수 시설을 파괴했다. 하르그섬은 이란의 원유 수출 허브다. 본토 유전에서 생산된 원유의 90% 이상이 송유관을 통해 하르그섬의 저장고로 집적된다. 섬의 터미널에 정박한 유조선들이 원유를 적재한 뒤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해 아시아와 유럽으로 향한다. 이런 측면에서 하르그섬 공습은 이란에게 ‘언제든 수출길을 끊어버릴 수 있다’는 전술적 경고였다.

이란의 주요 원유 수출 터미널이 있는 하르그섬 전경을 담은 위성 사진. ©AFP PHOTO


이란은 굴복 대신 중동 전역으로 전선을 확장하는 영악한 ‘비대칭 공격(승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약자가 강자의 빈틈을 찌르는 방식으로 싸우는 전술)’으로 응수했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같은 중동의 미국 동맹국에 소재한 석유 인프라, 수출항, 금융센터 등을 미사일과 드론으로 공격했다. ‘우리가 수출하지 못하면, 사우디 등 다른 산유국도 기름을 못 팔게 하겠다’는 것이다. 가장 치명적인 전장(戰場)은 단연 호르무즈 해협이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이란은, 글로벌 석유 공급의 20%를 점유하는 이 해로의 봉쇄 가능성을 번번이 언급해왔다. 그러나 이란에 ‘호르무즈 봉쇄’는 위협이지 실제로 시도할 수 있는 옵션은 아니었다. 글로벌 경제는 물론이고 이란 경제에도 치명적 타격이 예상되며, 미국과의 정면충돌도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 신정(神政) 체제 자체가 근본적으로 위협받게 되면서, 이란은 사용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그중 하나가 해협 봉쇄의 ‘실행’이다.

‘해협 봉쇄’는 핵무기와 비슷하다. 미국 등 글로벌 공인 강대국들의 핵무기 보유 동기는 ‘적국의 공격을 막기 위한 억지력’이지 핵미사일의 실제 사용이 아니다. 이란에겐 ‘해협 봉쇄’가 그랬다. 그러나 이번 전쟁에서 이란은 해협 봉쇄가 실행 가능하며, 핵무기 없이도 글로벌 경제를 옥죌 수 있는 강력한 ‘억지 수단’이라는 사실을 확인해버렸다. 호르무즈 해협을 길이 아니라 전쟁터로 만드니 전 세계가 부들부들 떨고 있지 않은가.

더욱이 해협 봉쇄의 비용은 핵무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적다. 해협에 기뢰를 몇 발 풀어 놓거나 소형 고속정과 드론으로 어쩌다 한 번씩 공격하는 것만으로도 길을 막을 수 있다. 배가 멈추고, 선박보험은 끊기며, 시장은 공포에 휩싸인다.

전쟁의 초점이 이란 본토에서 호르무즈 해협으로 이동했다. 트럼프는 개전 이후 한동안 ‘전쟁의 목표’도 뚜렷이 제시하지 못했다. 이란의 해협 봉쇄 실행 이후부터 비로소 단 하나의 분명한 목표를 단호하게 선언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해협의 안전한 항행’이다.

트럼프는 동맹국들의 파견 군함에 ‘상선 호위’ 임무를 맡길 심산이었다. 그는 3월 들어 ‘이란의 전력은 이미 완전히 파괴되었다’고 반복적으로 말해왔다. 트럼프의 ‘가상 세계’에선 군함이 상선들을 호위하며 유유히 해협을 통과해도, 무력화된 이란은 속수무책일 터였다. 그에게 상선 호위는 “정말 별것 아닌 사안”이었다. 그러나 ‘실재하는 세계’는 다르다. 군함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기뢰와 드론, 해안에서 날아드는 미사일, 때때로 출몰하는 소형 고속정의 공격을 헤쳐 나가며 항로를 확보해야 한다. 정작 트럼프도 개전 초기부터 이 방안을 검토했지만 3월19일 현재까지 실행하지 못했다. 가상 세계에서와 달리 너무 위험하기 때문이다.

미군만으론 어렵지만 동맹국들의 군함까지 가세하면 안전한 ‘상선 호위’가 가능할까. 사실은 이 작전이 체계적으로 입안된 것인지조차 의심스럽다. 미국 펜타곤(국방부)은 ‘다국적 상선 호위 연합작전’의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거나 동맹국들과 협의한 바 없다. 이 모든 사태는 트럼프가 주말에 느닷없이 올린 사적인 게시물에서 비롯되었다.

〈알자지라〉(3월16일)에 따르면, 이란 혁명수비대 알리 모하마드 대변인은 이란 해군이 거의 파괴되었다는 트럼프의 주장을 조롱했다. “그렇다면 군함을 페르시아만으로 넣어보시든가.”

패권의 편익과 비용



〈로이터〉(3월16일)에 따르면,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도 “강력한 미 해군도 불가능한 일을 유럽의 호위함 몇 대가 해낼 수 있다고 기대한단 말인가”라며 트럼프의 구상을 꼬집었다. 동맹국들은 (미국이라기보다) 트럼프를 신뢰하지 않는다. 트럼프는 이미 충동적이고 논리적이지 않은 언행, 거짓말, 말 바꾸기, 억지 쓰기 등으로 악명이 높다. 이번 전쟁에서도 그의 속성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는 동맹국들과 어떤 협의도 없이 세계경제 전체에 엄청난 충격을 가할 전쟁을 도발했다. 개전 직후부터 계속 ‘이란을 거의 파괴해서 곧 종전’이라며 ‘이번 전쟁은 짧은 소풍’이라고 떠벌렸다. 그러나 전쟁은 장기화되고 지리적 범위도 확대 중이다. 더욱이 〈월스트리트저널〉(3월13일)에 따르면, 트럼프는 ‘미국의 공격이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이어질 수 있다’는 펜타곤의 우려를 알고 있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워싱턴 D.C. 국회의사당에서 국정연설을 하고 있다. ©EPA


그러나 그는 이란이 베네수엘라처럼 곧바로 무릎을 꿇을 것으로 오판해서 사고를 치고 그 뒤처리를 동맹국들에게 맡기려 한다. 미국 국가대테러센터(NCTC)를 총괄했던 조지프 켄트 국장이 3월17일 X(옛 트위터)에 공개한 서한 형식의 사직서에 따르면, “이란은 미국에 임박한 위협이 아니”었으며, 이 전쟁은 “이스라엘 및 로비 세력의 압력으로 시작되었다”. 켄트는 심지어 이스라엘 측이 ‘짧은 기간 내에 승리’라는 논리를 조작해서 트럼프를 속였다고 주장했다.

영국은 물론 트럼프의 게시물에 거명되지 않은 이탈리아나 오스트레일리아, 스페인 정부 관계자들도 3월16일 일제히 ‘트럼프의 작전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역시 분쟁 상황이 안정된 뒤의 후속 작업에나 함선을 파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중국의 답변은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의회에서 “어떤 결정도 내리지 않았다”라며 완곡한 거부 의사를 밝혔으나 3월19일 트럼프와 정상회담 이후 입장을 조정할 가능성이 없지는 않다.

현실 세계에서 확인되는 가장 뼈아픈 징후는, 미국 주도의 국제질서가 돌이킬 수 없이 망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파이낸셜타임스〉(3월15일)와 인터뷰하면서, 동맹국들이 중동 지역의 원유에 크게 의존하고 있는 만큼 “해협에서 나쁜 일(봉쇄)이 일어나지 않도록 협조하는 것이 당연하다”라고 말했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미국뿐 아니라 세계경제를 위협한다. 트럼프는 그 비용을 분담하지 않으려는 동맹국들을 무임승차자로 간주하고 있다.

이 ‘비용 분담론’은 ‘나름 타당한’ 문제 제기다. 그러나 트럼프에겐 어울리지 않는다. 그는 애초 비용 분담론의 기반인 ‘국제질서 모델’을 거부해왔다.

다카이치 사나에 일본 총리는 미국의 군함 파견 요청에 완곡한 거부 의사를 밝혔다. ©REUTERS


이 모델에 따르면, 패권국과 동맹국들은 각각의 역할을 맡아 서로 협력하며 국제질서를 유지한다. 패권국의 역할은 국제사회에 대한 공공재(국제 공공재) 공급이다. ‘국제 공공재’의 항목에는 자유무역 체제 유지, 국제 금융시스템 안정, 집단 안보, 해상 통행 보호 등이 포함된다. 패권국은 국제질서 유지 비용의 상당 부분을 부담하지만 손해를 보지는 않는다. 정치·경제적으로 엄청난 편익을 누리기 때문이다. 패권국의 통화(달러)는 기축통화 지위를 갖는다. 다른 거의 모든 국가들의 상거래가 달러로 최종결제되는 만큼 패권국은 글로벌 금융 네트워크를 좌지우지하는 권력을 행사한다. 이는 압도적 전력(戰力)과 맞물려 거대한 범위의 패권국 중심 안보 동맹, 유엔 등 국제기구의 ‘세팅’ 및 운영, 유무형의 상품 표준 결정까지 ‘글로벌 지배구조’의 최정점에 패권국을 앉힌다. 패권은 순수한 부담이 아니라 미국의 번영을 가능하게 만든 제도적 환경이었다. 패권국과 동맹국들은 권력과 이익을 등가교환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트럼프의 미국’은 패권의 비용에 집착할 뿐 편익은 거론하지 않는다. ‘미국이 패권 때문에 망했’으며 ‘적국보다 동맹국들이 오히려 미국을 더 착취했다’라고 억지를 부린다. 이는 피해자인 미국이 가해자인 동맹국들을 이후 경제적·군사적으로 혹독하게 약탈해야 마땅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열혈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세력의 트럼프 지지를 떠받치는 이데올로기다.

트럼프는 패권의 편익을 유지하되 비용은 제거하려고 한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며 자기파괴적인 전략이다. 동맹국들은 패권국가에 대한 순응을 일종의 교환 관계로 간주해왔다. 일방적 지배와 약탈까지 허용하지 않았다. 더욱이 트럼프의 이번 전쟁은 국제 공공재(항행 보장)를 공급하기는커녕 국제유가 인상과 전쟁 위험 확산이라는 재앙을 초래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동맹국들에 내민 군함 파견 요구는 교환이 아니라 약탈로 여겨질 뿐이다. 동맹국들은 이미 트럼프와 무역 합의(?)에서 대미 투자 명목으로 수천억 달러씩을 갈취당할 예정이었다. 동맹의 구조가 협력에서 통제와 약탈로 변질되고 있다. 약탈은 궁극의 무임승차다.

3월18~19일을 거치며 전황은 한 단계 더 격화되었다. 그동안 암묵적으로 상호 자제해온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공습이 본격화되었다. 이스라엘은 세계 최대 가스전인 ‘사우스 파르스’의 이란 영토를 공습했다. 이란은 미국 동맹국인 카타르의 액화천연가스(LNG) 시설 및 아랍에미리트와 사우디의 석유 인프라 타격으로 보복했다. 카타르는 글로벌 LNG 공급의 20%를 점유하고 있다.

이란은 호르무즈 해협의 전면 봉쇄에서 ‘선별 봉쇄’로 전환하고 있다. 미국 및 그 동맹국 상선의 통과는 막지만 비적대국들은 협상을 통해 항행을 허용한다는 개념이다. 인도, 터키 국적의 배들이 항행 중이라는 소식이 들려온다. 명백히 ‘미국 동맹’의 분열을 겨냥하고 있다.

3월19일 오후 4시(한국 시각) 현재, 브렌트유의 배럴당 가격은 하루 전보다 10달러 이상 오른 113달러에 이르렀다. 원·달러 환율은 1500원을 돌파했다.

트럼프의 군함 파견 요구는 한국 정부를 선택 불가의 상태로 떠밀 수 있다. 파병을 거부하면, 트럼프는 관세 폭탄과 주한 미군 방공자산(패트리엇 등)의 중동 차출로 위협할 것이다. 아니면 다른 대가를 요구할지도 모른다. 파병에 동의하면, 한국은 사실상의 분쟁 당사자로 편입된다. ‘상선 호위’라는 명분과 달리 기뢰·드론·미사일 공격이 뒤섞인 호르무즈 해협에서 한국 군함은 교전 가능성에 상시적으로 노출될 것이다. 일단 교전과 이에 따른 희생자가 발생하면 이후의 개입 확대는 통제하기 어렵다.

이 같은 딜레마에 한국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현재로서는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월10일 ‘주한 미군의 방공무기 국외 반출’과 관련해서 언급한 대목을 추상적 원칙으로 제시할 수밖에 없다. “국가 방위는 국가 단위로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어딘가에 의존하면 그 의존이 무너질 경우가 있다. 혹여라도 있을 외부적 지원이 없을 경우 어떻게 할 것이냐를 언제나 생각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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