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 얼굴 반쪽 된 건 그리움 때문이라네” [새로 나온 책]
2026.03.25 06:48
난설헌, 나는 쓴다
허난설헌 지음, 김경미·홍인숙 옮김, 나의시간 펴냄
“고운 얼굴 반쪽 된 건 그리움 때문이라네.”
허난설헌의 글 ‘광한전 백옥루에 들보를 올리며’는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쓰노라.” 집에 들보를 올리며 축원하는 상량문이다. 8세에 지어 천재성을 드러낸 글로 전해지나 저작 시기를 두고 논란이 있다. 이름은 초희, 자는 경번. 강릉에서 초당 허엽의 셋째 딸로 태어난 허난설헌은 문장가 허봉과 허균의 누이다. 스물일곱에 세상을 떠난 그의 삶은 ‘글 쓰는 자’로 요약된다. 자유롭게 시를 배우고 독서하며 지내던 그는 열다섯 살 무렵 안동 김씨 가문의 김성립과 결혼했으나 사이가 좋지 않았다. 아들과 딸이 일찍 죽었다. ‘시를 지으면 저절로 운율이 맞았던, 비범한 재능의 소유자’, 허난설헌의 흩어진 시편을 모은 건 동생 허균이다. 〈난설헌시집〉의 순서를 해체해 재구성했다.
셰익스피어 컬렉션
진영종 지음, 글항아리 펴냄
“인간 셰익스피어는 떠났지만, 그의 작품은 남아 있다.”
지금 왜 셰익스피어인가. 미국의 셰익스피어 학자 스티븐 그린블랫은 미국의 트럼프가 당선되는 절망적 상황에서 셰익스피어를 통해 무언가 써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앞이 캄캄할수록 오히려 셰익스피어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셰익스피어 시대 연극’ 전공으로 영국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진영종 성공회대 영어과 교수도 그의 책을 읽고 생각했다. ‘셰익스피어 작품에 등장하는 세상의 모든 사람과 상황’을 우리 현실에 빗대 고민해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윤석열의 비상계엄으로 암흑 속에 있을 때였다.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을 역사극, 희극, 비극, 문제극으로 나눠 각각의 특징과 텍스트 바깥의 맥락까지 짚었다. 오래된 극작가에게서 왜 사람들이 매번 새로움을 발견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담바고 문화사
안대회 지음, 문학동네 펴냄
“담배를 버린다면 살아 있다고 해도 무슨 재미가 있겠소?”
담바고. 담배가 수입될 때 따라 들어온 말이다. 일본에서는 다바코, 베트남에서는 투억이라 불렸다. 이해할 수 없는 말과 발음을 한자로 표기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어휘가 생겼다. ‘tabaco'를 소리 나는 대로 표기한 것인데 나라마다 한자 발음 차이에 따라 달라졌다.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인 저자가 담배의 역사를 살폈다. 그 중에는 담바고 계열의 파생 어휘도 있다. 17세기 초엽 한반도에 들어올 때 ‘신선의 풀’이라 불리던 담배만큼 조선시대 사회상을 잘 드러내는 물건이 있을까? 조선 후반 300년 역사를 보여주는 담배의 모든 것이 담겼다. 많은 이익이 남는 특용작물 담배의 위상부터 일제의 침략 앞에 통째로 흔들린 전통 담배의 문화까지 두루 살핀다.
인생여전
양성민 지음, 돌베개 펴냄
“인생역전이면 좋겠지만, 인생여전이라도 나쁘진 않다.”
지은이는 경남 등 지역에서 20여 년 동안 조선, 건설 등 여러 형태의 노동 현장에서 일용직이나 단기계약직으로 일하며 살아왔다. 노동조합과 노동·인권 관련 단체에서도 일했다. 현장에서 일하며 겪은 에피소드를 모아 육체노동 에세이를 써냈다. 지은이는 제32회 전태일문학상 르포 부문 수상자. “일상에서 에피소드를 포착해내는 시선이 탁월하고, 무엇보다 재미있으며” “단순노동에서 얻은 통찰을 담담히 이야기” 등의 심사평을 받았다. 노동 현장에서 경험한 일, 두 차례 겪은 체불임금 사연 등 삶과 세상의 풍경을 담았다. 사회비판적 시선을 유지하며 낙천적 태도로 냉소하지 않는다. 명랑하면서도 유쾌한 새로운 작가의 탄생이라고 충분히 적을 만하다.
이화림 회고록
이화림 구술, 장촨제·순징리 엮음, 박경철·이선경 옮김, 마르코폴로 펴냄
“36년의 역사는 조선이 국가독립을 쟁취한 빛나는 역사다.”
이화림은 항일 독립운동의 숨은 영웅이다. 윤봉길 의사의 상하이 거사 당시, 부부로 위장하여 현장을 사전에 답사하고 삼엄한 일본군의 감시망을 뚫어낸 전략가였다. 이후 중국 대륙에서 태항산 줄기를 누비며 조선의용군의 일원으로 전장을 누볐다. 그는 의학을 공부해 전우들의 상처를 치료하는 의사로, 일제에 맞서 총을 드는 전사로 살았다. 해방 이후에도 분단된 조국의 현실 속에서 그는 경계에 선 유랑자로 살아야 했다.
이 책은 기록되지 않은 역사에 대한 기록이다. 더불어 여성 독립운동가가 겪어야 했던 고통에 대해서도 세밀하게 술회한다. 영화 〈파묘〉에서 배우 김고은이 연기한 무당 ‘화림’이 독립운동가 이화림 지사의 이름을 따온 것이다.
판차탄트라
배해수 엮음, 지혜의나무 펴냄
“난관을 극복하는 다섯 묶음의 지혜.”
‘판차탄트라(Panchatantra)’는 2000년 이상 인도인들 사이에 회자되어온 오래된 이야기 모음집이다. 브라만 학자인 비슈누 샤르마가 왕의 아둔한 세 아들의 교육을 위해 들려준 이야기라고 알려졌다. 다섯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 ‘판차(Pancha)’와 지혜의 확장을 의미하는 ‘탄트라(Tantra)’가 합쳐진 이름이다. ‘친구를 배신하지 않는 의리’ ‘새로 사귄 친구와의 우정’ ‘전쟁을 치르는 과정에서의 교훈’ ‘이익과 손해’ ‘경솔함으로 인한 갖가지 실수’라는 다섯 가지 묶음의 이야기 보따리가 실려 있다. 이 책은 동물이 자주 등장하는 우화집이다. 약삭빠른 행동이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충고, 이웃을 돕는 삶의 기쁨 등이 담겨 있다. 술술 읽히지만 오래 생각하게 만드는 대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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