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펼치는 순간, 페이지 사이에 깃드는 평화
2026.03.24 10:06
밥상 차림을 찾아다닌 적이 있다.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린'으로부터 소박 정성스런 밥상 차림까지 우리나라 곳곳으로다. 상차림에는 하늘이 담겼더라. 물론 땅과 바다도 담겨있었다. 그러고 보니, 바람의 표정도 담겼다.
상을 차리는 일이란, 제 곁에서 나는 먹을 만한 것들이 오랜 시간을, 사람의 손길과 부비벼 사람을 살려내는 일이었다. 그래서 산도 담기고, 바다도, 갯벌의 짭조름 눈가에 슬며시 맺히는 소금기 한 움큼도 담겨있었다. 마지막 부비고 부비고 '손맛'과 '맵시'는 만의 하나 품 정도였다. 그 만의 하나의 품이 같은 땅, 같은 하늘, 같은 산 바다와 갯벌을 담았어도 이 집과 곁의 집 맛과 모양을 다르게 피워내었다.
대명천지, 이 벌건 대낮 같은 시절에 떼로 죽고 죽이는 전쟁이라니, 그 전쟁의 포화가 비행기로 열네 시간 이 먼 땅까지 생활의 위기로 번져오는데, 엎친데 덮쳐 '파병 요청' 뉴스가 간담을 서늘하게 한다. 공습, 사망, 반격, 파괴. 이 격렬한 언어들의 시간에 상차림이며 밥이라니, 한가한 소리다. 온통 시선을 빼앗는 죽음의 말들 사이에서 이렇게라도 한가한 먹고 사는 이야기에, 뭔가 가느다란 삶의 빛이 고이거든. 그 고운 숨 한 모금 권커니 잣커니다.
밥을 나누듯 책도 작가와 편집자, 독자를 이어
상의 자리에 밥의 자리에 책을 놓는다. 책을 짓는 일이란, 상을 차리는 일이다. 누군가 빚은 세계가, 누군가 짓는 손을 통해, 누군가 그 세계 안에 깃들며 하루치 이틀치 삶의 기운을 얻는다. 짓고 먹고 나누며 살아가는 일, 문자의 발명 이래 수천 년을 늘늘 살아온 일이다. 앞에서부터 누군가는 작가, 편집자, 독자이다. 그 사이 사이를 매개하는 존재가 있다. 책방(서점)이다. 누군가의 짓고 담아낸 밥과 밥을 누군가 먹는 사람 위해 차리내는 존재, 그 밥상을 펼치는 공간이다.
우리나라 곳곳에 수많은 책방 서점이 있다. 참고서까지 다루는 중형 도시 종합서점으로부터 마을 숲 어귀 작은 책방까지다. 자고 나면 사라지는 종합서점의 자리를 동네 책방이 거꾸로 채워나가기 시작한 것은 2014년 겨우 다듬어진 도서정가제 덕분이다.
책방 서점의 새로운 생태계가 지난 10년 조성된 것이다. 그 생태계는 결 다른 책방지기의 내력이 스민 취향의 책 공동체다. 네다섯 평 규모부터 제법 작은 건물 한 동에 이르기까지, 전국에 동네 책방은 1000여 곳을 넘는 숫자를 이루고 있다.
동네 책방은 그가 깃든 마을, 동네의 무엇과 늘 만난다. 수많은 읽기 쓰기 동아리, 저자와 만남, 쓸 데 있고 없고 가리지 않는 재미난 클래스, 아이들 공부방 노릇부터 마을 아짐 아재 사랑방 역할과 만난다. 작가의 생각을 머금은 책을 수없이 많은 빛깔 색깔로 펼쳐내는 곳이다.
그 동네 책방이 모여, 2018년부터 작은 네트워크를 이뤘다.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책방넷)다. '힘겨운 3년'을 버티며 우리는, 우리가 책이라는 물건 안에 담긴 누군가의 문장을, 우리 유기체 곳곳으로 실어 나르는 실핏줄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를 통해 닿은 그 문장 하나가 누군가를 다시 평안케 하리라는 것을 안다.
동네 책방이 만드는 북페어 '사이에서'
| ▲ 북페어 '사이에서' |
| ⓒ DMZ세계문학페스타 2026 조직위원회 |
읽는 사람에게 가 닿는 첫째 조건, 작가들(한국작가회의)과 책방(책방넷)이 북페어를 준비하고 있다. 경기도, 경기문화재단 등의 도움에 힘입은, DMZ세계문학페스타와 북페어 '사이에서'이다. 상차림을 책 차림으로, 북페어는 대표적인 책 차림 공간이다. 우리는 매년 6월 서울국제도서전을 만나고 있다. '텍스트힙'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는 대표적인 북페어이다. 우리나라 대표 출판사들이 참여해, 닷새, 십오만 명 관람객을 동원하는 흥행을 이어가고 있다.
서울도서전을 비롯해 큼지막한 도서전은 대개 출판사 중심이다. 전국 동네방네 책방들이 자신들의 평화큐레이션을 모아 북페어를 연다. 도서전에 끼지 못하는 작은 출판사의 귀한 책, 동네 이야기를 담은 지역책까지를 큐레이션으로 챙겨 선보이는 북페어다. 전국의 동네 책방, 작은 출판사, 개인 제작자들이 생명, 평화, 공존의 메시지를 담은 책을 선보인다.
북페어 사이에서는, 70개 가까운 참가사가 파주출판도시 지혜의숲에 3월 28일부터 29일 이틀 모인다. 책방을 비롯한 참가사들은 책에 더해 작가와 북토크와 공연 11개, 전시 8개, 작은 워크숍 6개와 개별 부스에서 이뤄지는 이벤트 42개와 함께 모인다. 세계적인 그림책북페어 '볼로냐국제아동도서전'에서 올해 특별주제부문 라가치상을 받는 이억배 작가의 '분단의 철문을 열자'는 메시지를 비롯해 평화를 만드는 이야기와 음악 콘서트가 이틀을 한 시간 사이로 펼쳐진다.
사이에서는 전국동네책방지기가 뽑은 평화 책과 그 안에서 뽑은 평화 문장 40여 개가 걸개로 북페어 공간을 수놓는다. 평화책은 100선을 가려 전시회로 만날 수 있다. 전시에는, 책장에 숨겨운 평화 지도책(게으른오후), 4·3과 5·18을 담은 <기억공장> <기억빌딩>의 원화아트프린팅(노는날), 미어캣의 모자(시옷책방) 등을 만날 수 있다. 부스마다 소규모 작가와만남, 사인회가 열리고, 필사체험, 낭송회, 판화찍기, 문장책갈피, 문장키링 증정에, DMZ동식물책가도, 평화핀배지 들을 준비하고 있다.
일 년 내내 동네 책방에서 만나는
우리나라 곳곳 책방들이 한 장의 거대한 대동여지도를 펼치는 순간이다. 그 지도에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를 비롯해 국내외 작가들의 문학작품을 '작가 초대의 방'에서 만날 수 있다. 세계의 문학을 한자리에서다.
그동안 책방마다 이어온 작가와 작품 읽기를 한 매듭으로 풀어내기도 한다. '동네작가동네책방'이다. 많은 책방들이 독서모임을 열고 친구들과 한 작가의 책을 여러 권 오래 읽어낸다. 그렇게 작가 한사람이 작 책방의 독자들과 보이지 않는 선분으로 이어 져온 것인데, 이번 북페어를 통해 그 작가가 책방과 현실 공간에서 만나는 '사건'을 만든다.
반나절 책방지기, 작가낭독회, 사인회들을 각각 부스와 무대, 이벤트 공간에서 만나게 한다. '동네작가동네책방'은 일회적이 아니다. 앞으로 한국작가회의와 책방넷이 작가와 책방 사이를 책 친구로 이어, 내년 새로운 북페어에 일 년 동안 피고 맺은 작가-책방의 이야기를 풀어내려 한다.
북레어 사이에서는 사이존재, 청년들의 몫도 단단하다. 파주출판도시에서 열리는 행사, 출판도시 예술학교 파주타이포그라피배곳(PaTI) 청년들이 빠질 수 없다. 모두 여덟 꾸러미가 함께해 그간 '갈고닦은' 책과 책읽물건(굿즈)을 내어 보인다.
또 특별한 초대 손님들이 있다. 김남주기념사업회, 늦봄문익환기념사업회, 백기완노나메기재단, 신동엽기념사업회, 이호철북콘서트홀, 전태일재단 벗들이 함께한다. 이름 하나하나 이번 페스타를 관통하는 생명 평화 공존 그 자체인 벗들이 요즘 어떻게 살아가는지 엿볼 수 있다. 이윤엽 판화가는 '평화예술퍼포먼스'로 관객과 만난다. 더불어 책방넷과 한국서점인협의회가 함께 이어온 '독서문화놀이터'에서는 읽기의 귀환, 독서생태계의 활성화, 올해 분기를 맞는 도서정가제이야기를 만날 수 있다.
'책을 펼치는 순간이 바로 평화로운 순간'이다, 말한다. 생명이 생동하고 평화롭고 공존의 기운을 머금는 때와 곳은? 누군가 무릎을 맞대고 잠깐 세상의 소요에서 벗어나 가만 책을 펼치는 순간, 누군가가 활자와 이미지로 펼쳐놓은 세계로 한 걸음 내딛는 순간이다.
끙끙 낑낑 일에 지쳐 한숨 돌리는 순간, 잠들기 전 침실에서 잠깐 페이지를 넘기는 잠깐에도 깃든다. 그 평화로운 순간에 초대한다. 세계의 작가, 우리의 작가, 맺고 푸는 동네 책방들이 여러분을, 그 생생한 생명 평화 공존의 세계로 모신다.
DMZ세계문학페스타는 2026년 3월 27일부터 29일까지이다. 북페어 '사이에서'는 뒤 이틀 28~29일, 파주 출판도시 지혜의숲 다목적홀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이대건 책마을해리·책방해리·도서출판기역 대표 겸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회장입니다.
[DMZ세계문학페스타 홈페이지 바로 가기] https://dmzwlf.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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