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4월 위기설’ 선 그었지만… 벌써 원자재 공급 대란 조짐 [美·이란 전쟁]
2026.03.24 19:00
‘산업의 쌀’ 나프타 겨우 2∼3주뿐
한 달 뒤 분해시설 가동 중단 땐
플라스틱·비닐 포장재 등 수급난
정유·석화 넘어 산업 전반 타격
기업, 대체 거래선 찾기 전전긍긍
정부, 나프타 수출금지 조치 검토
금주 내 시행 목표 부처 간 협의
중동 전쟁이 4주차에 접어들면서 산업계 전반에 원자재 공급 대란 조짐이 일고 있다. 정부는 원유와 액화천연가스(LNG) 수급난이 경제 마비를 초래할 수 있다는 ‘4월 위기설’에 선 긋고 있지만 기업들은 대체 거래선 확보 등 대비책을 마련하느라 비상이다.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직격탄을 맞은 정유·석유화학 업계뿐 아니라 자동차, 철강, 조선, 화장품 등 플라스틱 부품과 비닐 포장재를 사용하는 소비재 기업들까지 산업계 전체로 위기감이 확산하는 양상이다. 정부는 위기 진화를 위해 이번 주 중 핵심 원료인 나프타의 수출을 제한하고 매점매석을 금지하는 등 강수를 꺼내들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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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일 중동 사태에 따른 폴리에틸렌 등 원료 수급 불안 영향으로 최근 일시적으로 인원 감축 운영에 들어간 경기 안산시의 한 비닐봉투, 종량제 봉투 제조 공장 내 가공 작업대의 불이 꺼져있다. 연합뉴스 |
24일 산업계에 따르면 정유 업계는 현재 원유 재고분으로 버틸 수 있는 기한을 4월까지로 본다. 정유사들은 통상 4∼5주치의 원유를 재고로 보유하는데 수입산 원유의 65%를 차지하는 중동산이 호르무즈해협 봉쇄로 들어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정유 4사는 러시아산이나 이란산 원유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지만 결제 리스크와 선박 확보 문제, 제재 불확실성 등 넘어야 할 과제가 많다.
원유가 부족한 마당에 원유를 정제해 만드는 나프타도 빠르게 소진되면서 연관 산업에 심각한 후유증을 초래할 수 있다. 나프타를 가공해 생산하는 에틸렌과 프로필렌은 플라스틱·합성섬유·합성고무·화학제품의 원료로 섬유, 패션, 화장품, 전자제품, 자동차 등 산업계 전반에 쓰인다. 옷, 침구류, 자동차 타이어, 자동차 범퍼·내장재, 신발, 세제, 샴푸, 가전제품 등 어지간한 소비재에 다 쓰인다. 나프타가 ‘산업의 쌀’로 불리는 이유다.
업계에선 나프타 재고가 2∼3주 분량에 불과해 이대로면 한 달 뒤 나프타분해시설(NCC) 가동이 중단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지난달 80% 수준이었던 NCC 가동률은 최근 60%대 후반으로 하락했다. 미국의 고관세 여파에 원료 수급난까지 겹친 자동차 업계는 올해 수익성이 더 악화할 수 있다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완성차 업체 관계자는 “핵심 부품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면 공장 가동을 중단해야 해 완성차 생산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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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 플라스틱 제조사들은 조업 중단 위기에 놓였다. 한국플라스틱공업협동조합에 따르면 중동 전쟁 발발 이후 플라스틱 중소 제조사의 71.1%가 공급사로부터 원료 공급을 축소하거나 중단할 수 있다는 안내를 받았다. 가격 인상을 통보받은 기업은 92.1%였다.
비닐과 포장재가 만연하게 쓰이는 뷰티, 패션, 식품업계도 긴장하고 있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포장재와 접착제 등 일부 품목은 두 달 정도 비축분을 마련해 놓은 상태”라며 “당장 생산에 큰 차질은 없지만, 상황이 길어지면 가격 인상은 물론 공급 불안 가능성까지 배제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음료업계 관계자는 “포장에 사용되는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ET)와 폴리에틸렌(PE) 등 주요 폴리머 제품은 약 3개월가량 재고를 보유하고 있어 당장 생산 차질은 제한적이지만, 수급 불안이 장기화하면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했다. 쓰레기 종량제 봉투도 온라인에서 품절 사태를 빚으며 구매 대란이 이어지고 있다.
화장품 업계 관계자는 “전쟁이 길어지면 나프타를 비롯한 원재료 수급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며 “재고 비축과 공급처 다변화 등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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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어가는 원료 창고 24일 경기 안산시의 한 플라스틱 필름 제조 공장 내 원료창고가 듬성듬성 비어 있다. 중동 정세 불안으로 나프타(납사) 수급에 차질이 생기자 국내 석유화학 업체들이 플라스틱과 합성섬유 등에 쓰이는 에틸렌을 감산했고, 플라스틱 가공업체들이 어려움에 부닥쳤다. 안산=연합뉴스 |
정부는 나프타 수출 제한 카드까지 만지작거리고 있다. 양기욱 산업통상부 산업자원안보실장은 일일 브리핑에서 “나프타의 생산·도입 물량을 의무적으로 보고받는 한편, 매점매석 금지와 수출을 제한하는 조치 등을 검토하고 있다”며 “나프타의 수출 물량이 많지는 않지만 수출 물량을 제한해서 석유화학 기업 중심으로 돌리면 가동률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이번 주 안에 관련 조치를 시행하는 것을 목표로 관계 부처와 협의하고 있다. 나프타 대체 수입 시 발생하는 추가 비용을 이번 ‘전쟁 추경’ 예산에 반영해 기업들을 지원할 방침이다. 국내 유가 급등을 막기 위한 ‘제2차 석유 최고가격’ 고시도 이번 주 안에 발표할 예정이다.
양 실장은 “조선업계의 에틸렌가스 수급 문제에 이어 세탁기 등 대형 가전의 내·외장재를 구성하는 석유화학 기반 소재도 영향을 받을 것으로 우려된다”면서도 “기업들이 끊임없이 대체 물량을 찾고 있어 (나프타분해시설의) 가동 중단 우려 시기가 4월 말에서 5월 초로 밀리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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