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봉투가 사라졌다"…사재기 공포 현실화
2026.03.24 16:17
중동전쟁 여파 나프타 수급 어려움 전망
사재기 확산에 구매량 제한 매장도
지자체 "재고 부족 아니다" 적극 해명
전문가 "과거 '물자대란' 경험 탓에 사재기 나타나"[이데일리 이유림 기자] 서울 성북구 종암동에 사는 40대 주부 임모씨는 최근 집 근처 마트에 종량제 봉투를 구매하러 갔다가 헛걸음을 했다. 평소 쓰던 20ℓ 크기의 종량제 봉투를 사려고 갔지만 매장에선 “품절됐다”는 답변이 들었다. 임씨는 “중동 전쟁 때문에 비닐 원료가 부족하다는 뉴스는 봤지만 봉투 한 장 못 살 정도로 상황이 급박할 줄은 몰랐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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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상가와 재래시장이 밀집한 지역일수록 품절 속도는 빨랐다. 실제로 임씨가 방문한 종암동의 한 마트는 5·10·20ℓ 규격 봉투가 모두 동난 상태였다. 마트 관계자는 “주말 사이에 물량이 전부 빠졌다”며 “사재기가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간 이후 봉투를 찾는 사람들이 훨씬 늘었다”고 전했다.
인근 편의점도 사정은 비슷했다. 매대에는 30ℓ 대형 봉투 몇 장만 남았을 뿐이었다. 편의점 점주 A씨는 “어제 급하게 발주를 했지만 당장 공급은 어렵고 모레쯤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며 “발주 다음 날이면 입고되던 물량이 지연되고 있다”고 귀띔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봉투 사러 옆 동네까지 원정 쇼핑을 갔다”는 후기까지 이어지고 있다. 일부 매장은 사재기를 막기 위해 자체적으로 1인당 구매 개수도 제한하고 있다.
최근 품절 사태의 근본 원인은 종량제 봉투의 원료 수급에 있다. 종량제 봉투는 폴리에틸렌으로 만들어지는데 이는 원유 정제 과정의 부산물인 ‘나프타’를 기반으로 한다. 현재 국내 수입 나프타의 54%가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이 이란에 의해 봉쇄될 위기에 처하며 원료 확보에 경고등이 켜진 상태다.
한국플라스틱공업협동조합연합회 관계자는 “최근 원료 가격이 안정적인 ‘약보합’ 상태였기에 중소 업체들이 재고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했다”며 “이런 급박한 상황을 미리 알았다면 대비했겠지만 갑자기 닥친 일이라 당장 4~5월 생산을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하지만 관리 당국은 당장 재고가 부족한 상황은 아니라고 일축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자치구마다 비축량은 다르지만 통상 분기나 반기 단위로 물량을 주문하고 있어 4월까지 큰 불편은 없을 것”이라고 관측했다. 노원구 등 자치구 역시 “가격 변동이 없고 수급도 괜찮으니 사재기를 자제해달라”고 공지했다.
지자체 측은 일부 언론 보도로 인해 시민들이 필요 이상으로 구매하는 경향이 생겨나고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
마트 관계자는 “언론 보도 이후 4~5묶음씩 대량으로 사가는 사람들이 늘면서 물량이 순식간에 소진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일반 마트나 편의점이 지자체 지정 판매대행업체에 발주를 넣어도 사재기 수요로 인해 물류가 밀리면서 제때 받지 못하는 ‘병목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시민들의 사재기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로 과거 ‘물자 대란’의 학습 효과를 꼽았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코로나19 당시의 마스크 대란이나 2021년 요소수 사태를 겪으며 형성된 불안감이 ‘미리 안 사두면 고생한다’는 인식으로 이어진 것”이라며 “시민들에게 일종의 심리적 방어 기제가 작동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국제 정세 역시 여전히 불안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란과 협상 중이라고 밝혔으나 이란 측이 이를 ‘가짜뉴스’라고 반박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을 둘러싼 긴장감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동전쟁이 장기화할 경우 종량제 봉투를 포함해 나프타를 활용한 모든 산업군 제품의 가격인상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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