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이야기] 꿀 넣어 지은 밥…소지왕 설화 깃든 ‘원조 K-푸드’ 약밥
2026.03.24 08:16
찰밥·대추·밤 섞어 시루에 쪄
‘고려반’으로 중국인 사로잡아
경주에선 보름날 까마귀 먹이
조선왕실 잔칫상 단골메뉴로
이동중 끼니·간식으로 ‘인기’
고급 식당선 ‘젤라토’로 변신
이 글은 조선시대 최고의 미식 글쟁이 허균(1569∼1618)이 썼다. 음식 이름은 약반(藥飯), 곧 약밥이다. 심지어 당시 중국인이 좋아했다니 약밥은 케이푸드(K-Food·한국식품)의 원조였다. 그런데 허균이 살던 당시 경주 사람은 왜 이런 풍속을 행했을까?
그 사연은 고려 승려 일연(1206∼1289)이 쓴 ‘삼국유사’에 나온다. 신라 21대 소지왕은 488년 음력 1월15일 경주 남산의 한 정자에 올랐다. 이때 까마귀와 쥐가 와서 우는데 쥐가 사람 말로 “이 까마귀가 가는 곳을 찾아가 보시오”라고 했다. 이에 왕이 말 탄 병사에게 까마귀를 쫓으라고 일렀다.
병사는 까마귀가 경주 남산 동쪽 산비탈에 있는 한 마을에 내린 것을 보았다. 그러나 병사는 돼지 두마리가 싸우는 모습을 보다가 까마귀를 놓치고 말았다. 그때 한 노인이 연못 가운데서 나와 봉투 하나를 줬다. 봉투 겉에는 “열어보면 두사람이 죽을 것이요, 열어보지 않으면 한사람이 죽을 것이다”라고 쓰여 있었다.
이 봉투를 받은 소지왕은 “열어보지 않으면 한 사람만 죽으니 그것이 낫다”고 여겼다. 그러자 왕에게 운세를 알려주는 일관이 나서서 “두사람은 백성이요, 한사람은 왕입니다”라고 했다. 이에 소지왕은 봉투를 열었다. 편지에는 “거문고가 든 상자를 쏘라”고 적혀 있었다. 소지왕은 궁으로 돌아가서 거문고 상자를 쐈다. 상자 안에서는 승려와 왕의 첩이 몰래 간통 중이었다. 소지왕은 두사람을 사형시켰다.
이 일 이후 경주 사람은 매년 음력 1월 첫 돼지날·쥐날·말날에 모든 일을 조심히 하고 외출도 하지 않았다. 소지왕에게 첩의 간통을 알려준 돼지와 쥐 그리고 병사를 태우고 간 말을 기려서 생긴 풍속이었다. 특히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해준 까마귀는 가장 감사할 동물이었다. 경주 사람은 매년 음력 1월15일 찰밥을 지어 까마귀에게 제사 지냈다. 이것이 ‘삼국유사’에 나오는 찰밥 설화다.
찰밥은 고려시대 이후 약밥이란 이름으로 정월대보름은 물론이고 조선 왕실 잔치에도 빠지지 않는 음식이 됐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사람은 약밥을 어떻게 만들었을까? 1800년경 쓰인 ‘규합총서’에는 ‘약식’이란 이름의 약밥 요리법이 나온다. 재료는 찹쌀·대추·밤 각 한말씩이다. 대추는 잘게 썰고 밤은 세쪽씩 낸다. 찹쌀은 물에 반나절만 담근다. 쌀알이 막 익으면 솥에서 바로 꺼낸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찰밥에 꿀 한주발, 참기름 한되, 진한 간장 한종지를 치고 밤과 대추도 골고루 섞어 시루에 안친다. 이렇게 다시 쪄낸 다음 그릇에 담으면 맛있는 약밥이 만들어진다.
정약용(1762∼1836)은 ‘목민심서’에서 “약이란 꿀이다”라고 적었다. 밥에 꿀을 넣어 지은 밥이 바로 약밥이다. 더욱이 약밥은 식으면 연하게 굳어 이동 중에도 먹기 좋은 한끼였다. 1920년대 기차를 타는 사람들에게 약밥은 끼니 겸 간식으로 인기를 끌었다. 1960년대까지도 한식 잔치에서 약밥이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1970년대 값싼 설탕이 시장에 나오면서 꿀이 빠진 약밥이 떡집 판매대에 올랐다. 1980년대 이후 압축 성장으로 먹을거리가 풍부해지면서 약밥은 세시 음식으로만 여겨져 오늘에 이른다. 약밥처럼 극적인 설화가 담겨 있는 한국 음식은 많지 않다. 서울의 한 파인다이닝 음식점에서 ‘약밥 젤라토’를 메뉴에 올렸다니 반가운 소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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