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쿠르드 지상전 투입설, 당사자들 반응은?
2026.03.24 06:58
쿠르드는 자신의 국가를 갖지 못한 세계 최대 규모의 민족 집단 가운데 하나다. 3000만~4000만명이 튀르키예·시리아·이라크·이란의 쿠르드 지역에 거주한다.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 쿠르드인을 무장시켜 지상전에 투입한다는 보도가 잇따르면서, 그동안 누구도 관심 두지 않던 쿠르드인들과 그 정치·무장 조직들이 적극 소환되고 있다. 이에 당사자인 이란 쿠르드 정당들의 지상전 투입에 대한 입장과 최근 결속 움직임을 알아봤다. 이란 반정부·반체제 진영의 지형도 같이 살폈다.
3월6일 〈폭스뉴스〉를 비롯한 일부 언론은 “쿠르드 지상군 투입됐다”라고 단정적으로 보도했다. 쿠르드 정당들의 전면 부인, 그리고 이들의 군대가 거점을 둔 이라크 쿠르드 자치 지역의 반발로 볼 때 이는 성급한 오보로 보인다. 그러나 ‘지상군 작전 시’라는 가정하에 쿠르드 세력을 현지 파트너로 삼거나 외주 형식으로라도 활용하겠다는 구상 자체가 사라진 건 아닌 듯하다. 이에 대한 이란 쿠르드 정당들의 반응은 다양한 뉘앙스를 담고 있다.
이를테면 쿠르디스탄 자유생명당(PJAK) 지도위원인 푸아드 베리탄은 “우리 군대는 이란 쿠르디스탄 깊숙한 곳에 이미 포진해 있다. 따라서 어떠한 군사적 행동도 아주 높은 수준의 감성과 판단력에 기반해야 한다”라고 반응했다. 이란 쿠르디스탄 민주당(PDKI) 대외관계부장 히와 바흐라미는 “우리는 전쟁에 초대받길 기다리는 조직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 스스로 전략적으로 판단하고 쿠르드 민중을 보호한다는 관점으로 독자적으로 결정할 것”이라며 일각에서 반복하는 ‘쿠르드 대리전’ 담론에 거부감을 드러냈다. 한편 이란 공산당 쿠르디스탄 기구(Komala–Kurdistan Organization of the Communist Party of Iran-led by Ebrahim Alizadeh, 코말라-CPI)는 3월7일 성명에서 “미국과 이스라엘이 쿠르드 정당들의 군사국(military wing)들을 대이란 전쟁의 지상군으로 이용한다는 보도가 잇따르고 있다”라고 전제한 뒤 “이 아이디어는 이스라엘 정부와 모사드가 우선 제안하고 미국 CIA가 이에 동조한 걸로 알고 있다”라고 적었다. 미국과 이스라엘 두 나라의 정보국이 이란 쿠르드를 상대로 벌이는 ‘작업’에 불편함을 드러낸 것이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공습 개시 불과 엿새 전인 지난 2월22일, 이란 내 반정부 시위가 소강 국면에 접어들었을 즈음, 이란 쿠르드 정당들은 ‘쿠르디스탄 정치군사동맹(Coalition of Political Forces in Iranian Kurdistan, 쿠르드 동맹)’을 출범시켰다. 3월4일 이란 쿠르디스탄 코말라당(Komala Party of Iranian Kurdistan, KPIK)까지 쿠르드 동맹에 가입하며 이란 쿠르드 지역의 7개 정당 중 6개 정당이 뭉쳤다. 유일하게 참여하지 않은 당은 앞서 쿠르드 지상군 투입 논의를 이스라엘과 미국의 제안이라고 비판했던 코말라-CPI뿐이다. 발족문에서 쿠르드 동맹은 “이슬람공화국 체제 전복”을 주요하고 공통된 목표로 제시했다.
푸아드 베리탄 PJAK 지도위원은 이번 동맹이 “6개월간 지속된 쿠르드 정당들 간 대화의 산물이다. 거의 모든 쿠르드 정당과 운동 세력들이 하나의 협력 체계를 건설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그는 살해된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후계자로 모즈타바 하메네이가 선출된 것과 관련해 “이란 정권이 현재 그들의 정책을 고집하겠다는 걸 보여준다. 모즈타바는 궁극적으로 그 아버지와 같은 운명에 처할 거라 본다”라고 말했다. 히와 바흐라미 PDKI 지도위원은 쿠르드 동맹의 궁극적 목표가 무엇인지 묻자 “재건된 민주 연방국가 이란에서 쿠르디스탄이 의미 있는 자치를 누리는 것이다. 이게 실현되려면 현 정권은 타도돼야 한다. 쿠르드인들의 진정한 권리와 현 이란 정권의 지속은 양립할 수 없다”라고 답했다.
‘이슬람공화국 전복’ 목표로 한 쿠르드 동맹
이란 쿠르드 공동체는 이란의 또 다른 소수민족(아랍계, 발루치, 그리고 튀르키예계로 알려진 아제리 등)과 마찬가지로 팔레비 왕조 시기(1925~1979년)부터 이슬람공화국(1979년~)으로 이어진 역대 정권하에서 억압과 차별에 직면해왔다. 반정부 시위 때마다 초기 시위 점화는 어김없이 이들 지역에서 벌어졌다. 예컨대 2022년 ‘히잡 시위’의 기폭제가 됐던 쿠르드 여성 지나 마흐사 아미니의 죽음은 그의 고향인 쿠르디스탄주 사케즈에서의 시위를 촉발했고, 이는 이란 시민사회 전역의 묵힌 분노를 자극하며 전국으로 확산됐다. 쿠르드를 비롯한 이란 소수민족 지역의 뿌리 깊은 반체제 정서와 준비된 분노, 그리고 그들의 조직력을 방증하는 대목이다.
미국에 기반을 둔 ‘이란 인권운동가 뉴스 에이전시(HRANA)’에 따르면 최근 반정부 시위 사태에서 총 50일간 확인된 사망자만 7007명이다. 이 중 군경 사망자는 207명이다. 부상자의 경우 시위대 2만5846명, 군경 4884명으로 집계됐다. 시위대의 희생이 압도적이라는 사실과 별도로 군경 사상자가 각각 세 자릿수, 네 자릿수를 기록한 건 시위대 일부가 무장 상태였을 개연성을 높여준다. 이란 태생 정치평론가인 트리타 파르시는 무장 쿠르드 조직들이 군경 사상자를 초래했을 것으로 본다.
쿠르드 등 소수민족 외에도 몇몇 세력을 중심으로 이란 반체제 진영의 지형도를 그려볼 수 있다. 예컨대 이란저항국민회의(NCRI)라는 이름을 내걸고 활동하는 망명 조직 인민무자헤딘(Mujahadeen-e-Khalq, MEK)은 미국·이스라엘의 대이란 공습 첫날 아예 ‘임시 과도정부’를 선포했다. 1965년 ‘이슬람주의-마르크시스트’라는 모순된 정체성을 갖고 출범한 MEK는 표면적으로 세속주의와 민주주의를 표방하지만, 실상 정치와 종교가 결합한 컬트 조직에 가깝다.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 이라크 사담 후세인 편에서 싸웠던 탓에 MEK의 이란 내 지지 기반은 약한 편이다. 그러나 이스라엘과 사우디 등 중동 패권국은 물론 이란의 ‘레짐 체인지(regime change·정권 교체)’를 강하게 압박해온 존 볼턴 같은 미국 네오콘 세력과는 밀접히 연결돼 있다. MEK는 이란 내 ‘저항부대(resistance units)’라는 비밀 무장조직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쿠르드 자치나 민주화 열망과 무관한 전쟁
‘레짐 체인지’ 후보로 주목받고 있는 또 다른 인물은 다름 아닌 팔레비 왕조의 전 왕세자 레자 팔레비다. 전 세계에 거주하는 이란 디아스포라 그룹을 중심으로 지지세를 넓혀가는 그는 서구 주류 언론들이 부지런히 마이크를 제공하는 인물이다. 그는 ‘쿠르드 동맹’ 발족 직후 자신의 엑스(X) 계정에 “일부 분리주의자 그룹들이 영토주권과 이란 국가 통합에 반하는 근거 없는 주장을 하고 있다”라며 꾸짖는 듯한 포스팅을 올렸다. 이에 쿠르디스탄 모스크의 한 이맘(종교 지도자)은 팔레비 왕조 시기 처형당한 쿠르드 지도자를 상기시키며 “(레자 팔레비를) 결코 환영하지 않는다”라고 되받았다. 레자 팔레비에 대한 비난에 MEK까지 동참하며 소셜미디어에서 논쟁이 이어지기도 했다.
이 밖에도 이란에는 학생 조직과 노동조합, 이란 작가협회(The Iranian Writers’ Association, IWA) 등 지식인 그룹, 마르크스·레닌주의를 표방한 ‘이란 투데당(Tudeh Party of Iran)’ 등 여러 정당과 시민사회 조직들이 반정부 혹은 반체제 전선에 두루 포진해 있다.
쿠르드, 친팔레비 지지자들과 마찬가지로 이란 정권에 봉기해온 이들은 그러나 미국과 이스라엘의 자국 공격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이란 투데당은 3월5일 독자적 성명에서 “미 제국주의와 범죄자 네타냐후의 음모에 맞서 (···) 이란의 영토주권을 지키자”라고 호소했고, 3월6일에는 미국과 이스라엘 등 전쟁 당사국 공산당들과 연대 성명을 통해 “역내 국가들을 전부 장악하려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계획”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란 노조들은 이미 지난해부터 전쟁 반대 집단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대이란 전쟁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란 전역을 들끓게 하던 시민들의 민주화 열망을 깡그리 짓눌렀다. 미국·이스라엘의 지상전 구상 역시 쿠르드인들의 자치 열망이나 ‘이란 민주화의 기폭제 역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대신 이번 전쟁은, 트럼프의 변덕스러움과 별개로, ‘대(Greater) 이스라엘’ 프로젝트를 추진 중인 이스라엘의 확장주의 노선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란을 포함해 역내 이스라엘 확장주의에 방해되는 요소들을 제거하고, 이를 위해 이란을 과거 발칸반도가 그랬듯 여러 개의 민족국가로 분열(‘발칸화’)시키고, 이슬람공화국 체제를 붕괴시키는 것이 이스라엘의 의도로 풀이된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대이란 전쟁을 개시하며 이란 동맹 세력인 헤즈볼라의 나라 레바논까지 구석구석 폭격하는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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