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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광장] 공직자의 무사유와 악의 평범성

2026.03.24 07:00

윤상오 단국대 교수. 대전일보DB


2024년 12월 발생한 비상계엄이 특검 수사와 기소, 재판을 통해서 서서히 그 전모가 밝혀지고 있다. 가담했거나 관련됐던 인사들이 하나둘씩 법의 처벌을 받는 것을 볼 때마다 씁쓸함을 느낀다. 정치 경험은 물론이고 민주주의에 대한 이해도 없이 벼락출세로 대통령이 된 사람이나 권력과 출세에 눈이 먼 핵심 측근들은 차치하더라도, 명석함을 기반으로 엘리트의 길을 걷던 고위공직자, 경찰 간부, 군 장성들은 왜 계엄에 가담하게 되었을까? 평생 국무에 헌신하던 이들이 왜 국가와 국민을 위태롭게 하고 자신의 평생을 망치는 선택을 했을까? 군의 하급 장병들이나 일선 공무원들조차 인지하고 있는 법적 선을 그들이 몰랐을 리 없다. 계엄이 정당하다는 개인적 신념 하에 내린 판단인지 단순히 상부의 명령에 따랐을 뿐인지는 당사자가 아닌 이상 알 길이 없지만, 결과적으로 모두가 응분의 처벌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현시점에서의 초점은 비단 단죄뿐만 아니라, 이런 사태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어떤 사회적 사유가 필요한가이다.

공무원은 상관의 지휘·감독에 따를 의무가 있고, 군인도 상관의 직무상 명령에 복종할 의무가 있다. 부당하거나 위법한 명령은 거부할 수 있다지만, 대부분의 명령이나 지휘·감독은 정당한 것으로서 복종하고 따르는 것이 당연하다. 가장 큰 문제는 상관의 명령이나 지휘·감독을 무조건 따를 때 발생한다.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이를 '악의 평범성(Banality of Evil)'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악(惡)은 악한 사람의 악한 의도와 행동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보통 사람의 무사유(無思惟)에 의해서도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계 정치철학자로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아렌트는 1960년 예루살렘에서 열린 뉘른베르크 전범 재판을 참관하고 악의 평범성 개념을 제시하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 친위대 간부였던 아돌프 아이히만(Otto Adolf Eichmann)은 독일을 비롯한 유럽 주요국에서 유대인을 색출하여 수용소로 압송하는 총괄 책임자였다. 유대인 600만 명이 희생된 홀로코스트의 핵심에 아이히만이 있었다.

아이히만은 종전 후 미군에 체포되었다가 탈출하여 아르헨티나로까지 도망갔지만, 1960년 이스라엘 첩보기관에 체포되어 전범 재판을 받고 사형에 처해졌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어떤 사람인지, 왜 유대인 대학살에 깊이 관여했는지를 파악하기 위하여 아이히만의 전범 재판 전 과정을 직접 참관하였다. 거기에서 발견한 가장 놀라운 사실은 아이히만은 악으로 똘똘 뭉친 희대의 악마가 아니라 이웃에 친절하고 자녀들을 사랑하는 지극히 평범한 공무원이자 가장이었다는 점이다. 또한 그는 재판 전 과정에서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도 뉘우치지도 않았다. 오히려 자신은 국가가 자신에게 부여한 임무에 최선을 다한 충실하고 헌신적인 공무원으로서 상을 받아 마땅하다고까지 하였다.

이를 본 아렌트는 평범한 사람, 보통 사람, 착한 사람도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깊이 성찰하지 않고, 명령에 무조건 복종할 때 얼마든지 악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생각 없는 공직자, 무조건 복종하는 공직자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를 간파한 것이다.

우리의 공직사회에는 아직도 상명하복이 절대 미덕이라는 문화가 남아 있다. '군인은 명령에 살고 명령에 죽는다',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이 공무원이다', '생각을 하지 말고 일을 하라'라는 인식도 여전하다. 상부의 명령이나 자신의 임무에 대하여 사유하고 성찰하라는 얘기는 듣기 어렵다. 이러한 문화와 인식이 바뀌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부당한 권력에 부역하고, 국민에 반역하며,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는 공무원·경찰·군인이 또 나올 수 있다. 인공지능도 사유하는 시대이다. 공직자가 기계보다도 사유하지 않을 수는 없지 않은가. 윤상오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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