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패키지로 부상한 'AI 토큰' 뭐길래…실리콘밸리서 논쟁 가열
2026.03.23 13:59
[디지털투데이 이윤서 기자] 급여와 스톡옵션, 보너스에 이어 이제는 인공지능(AI) 토큰까지 연봉 패키지에 넣자는 논의가 실리콘밸리에서 확산되고 있다. 엔지니어 생산성을 높이는 새로운 보상 수단이라는 기대가 나오지만, 일각에서는 기업이 현금 보상 대신 연산 자원을 앞세우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된다.
22일(현지시간) IT매체 테크크런치에 따르면, 최근 실리콘밸리에서는 'AI 토큰을 보상으로 지급하자'는 논의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AI 토큰은 챗GPT, 클로드(Claude), 제미나이(Gemini) 등 생성형 AI와 AI 에이전트를 구동할 때 쓰이는 연산 단위 또는 사용량 예산을 뜻한다. 엔지니어들이 이를 활용해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고 코드를 생성·수정하면 생산성이 높아지고, 결과적으로 더 높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는 것이 이 같은 구상의 핵심 논리다.
이 논의에 불을 지핀 인물은 엔비디아의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다. 그는 최근 연례 개발자 행사 GTC에서 엔지니어들이 기본급의 절반 수준에 해당하는 AI 토큰을 추가로 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내놨다. 젠슨 황은 우수 인재의 경우 연간 25만달러(약 3억7700만원) 규모의 AI 연산 자원을 활용할 수 있다며, 이를 인재 유치 경쟁력을 높이는 수단으로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흐름의 배경에는 '에이전트형 AI' 확산이 자리하고 있다. 지난 1월 말 공개된 오픈소스 AI 비서 '오픈클로'(OpenClaw)는 사용자가 잠든 사이에도 작업을 계속 수행하고, 하위 에이전트를 생성해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으로 주목받았다. 이처럼 자율적으로 작업을 수행하는 AI가 확산하면서 토큰 소비량도 빠르게 늘고 있다. 에세이 한 편 작성에 수만개의 토큰이 쓰이는 데 그치지 않고, 여러 에이전트를 동시에 구동하는 엔지니어는 하루에 수백만개의 토큰을 소모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와 관련해 뉴욕타임스(NYT)는 최근 메타와 오픈AI 등 일부 기업에서 엔지니어들이 내부 리더보드를 통해 토큰 사용량을 놓고 경쟁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토큰 예산이 새로운 직장 복지로 자리 잡고 있다는 의미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한 에릭슨 엔지니어는 뉴욕타임스에 자신이 사용하는 클로드 비용이 연봉보다 많을 수도 있지만, 해당 비용은 회사가 부담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다만 AI 토큰이 곧바로 엔지니어에게 유리한 보상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지적도 나온다. 토큰이 많아질수록 단기적으로는 더 많은 연산 자원을 활용해 성과를 낼 수 있지만, 그만큼 더 큰 생산성을 요구받을 가능성도 커지기 때문이다. 회사가 사실상 '두 번째 엔지니어'에 해당하는 수준의 연산 자원을 한 사람에게 제공한다면, 그에 상응하는 속도와 결과물을 기대하게 되는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기업의 비용 계산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직원 1인당 토큰 지출이 연봉과 비슷하거나 이를 넘어서는 수준이 되면, 재무 부서 입장에서는 '인간 인력을 얼마나 둬야 하느냐'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연산 자원이 실제 업무의 상당 부분을 대신하게 될 경우, 인간은 이를 조율하는 역할만 맡게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벤처캐피털리스트 출신 자말 글렌도 AI 토큰이 겉으로는 혜택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현금이나 지분 보상 없이 보상 패키지의 외형만 키우는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토큰 예산은 베스팅되지 않고 시간이 지나도 가치가 오르지 않으며, 이직 시 다음 연봉 협상에서도 기본급이나 주식 보상처럼 인정받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기업이 토큰을 보상의 일부로 정착시키는 데 성공할 경우, 현금 보상은 제자리걸음을 하더라도 연산 예산 확대를 근거로 '직원에게 더 투자하고 있다'고 주장하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결국 AI 토큰은 엔지니어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실질적 도구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기업이 보상 구조를 재편하는 새로운 수단이 될 가능성도 안고 있다. 실리콘밸리에서 토큰이 연봉 패키지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 잡을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적어도 이 논쟁은 AI가 노동의 가치와 보상의 기준까지 바꾸기 시작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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