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기술이 할리우드 여배우로부터? 정부가 40년간 묻어둔 이유는
2026.03.23 14:01
퀄컴의 전쟁<1>
이동통신의 역사를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기업이 퀄컴이다. 퀄컴은 우리가 사용하는 코드분할 다중접속(CDMA) 방식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한 기업이다.
특히 퀄컴은 우리나라와 인연이 깊다. 우리나라의 전자통신연구원(ETRI)과 손잡고 CDMA 기술을 상용화했다. 이 기술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로 확산되면서 이동통신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렇게 발전하기까지 이동통신 역사는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군사 기술에 기반한 이동통신은 전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여기에 여러 기술이 충돌하며 통신시장에서 주도권 다툼을 벌였다. 그 중심에 퀄컴이 있다. 퀄컴은 CDMA가 세계 표준으로 인정받을 때까지 치열한 기술 전쟁을 치렀다. 이들이 겪은 기술 전쟁이 곧 이동통신의 역사다.
괴짜 천재가 일으킨 전쟁의 서막
이동통신의 기본이 된 무선통신은 무려 133년 전 어느 천재과학자가 처음 제시했다. 주인공은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교류 전류 시스템을 만든 크로아티아의 과학자 니콜라 테슬라다. 그는 최초로 교류 시스템을 만들었고, 직류를 고집한 미국의 발명왕 토머스 에디슨과 치열한 전기 전쟁을 치른 끝에 승리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테슬라는 괴짜 천재였다. 그는 가정에 전화기도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던 19세기 말에 지구와 다른 행성간 통신이 이뤄질 것으로 생각해 필요한 기술을 연구했다. 이를 위해 그는 1893년 송신기와 수신기로 구성된 세트를 만들어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처음으로 대중들에게 유선 연결을 하지 않아도 신호를 보낼 수 있는 무선통신 개념을 제안하고 시연했다.
1895년 무선통신 기술의 발명자로 알려지며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이탈리아의 굴리엘모 마르코니보다 테슬라가 2년이나 앞섰다. 공교롭게 마르코니가 이탈리아의 볼로냐에서 시범을 보인 무선통신 장치들은 테슬라가 세인트루이스에서 시연한 장비들과 똑같았다. 하지만 마르코니는 테슬라가 처음 만든 무선통신 시스템을 몰랐다고 강변했다.
결국 테슬라와 마르코니가 죽은 뒤 무선통신 특허를 둘러싼 분쟁이 시작됐다. 미국 특허 법원은 1943년 테슬라 사후 8개월 뒤 특허와 함께 그를 무선통신 발명가로 인정했다. 테슬라가 고안한 무선통신 덕분에 사람들은 무전기와 라디오 등 다양한 기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됐다.
'P77을 아시나요' 어느 여배우의 헌신
누구나 전화기를 들고 다니며 통화할 수 있는 이동통신 기술은 제2차 세계대전 때문에 등장했다. 단초가 된 기술을 개발한 인물은 뜻밖에도 할리우드에서 활동한 영화배우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 오스트리아에서 나치의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여배우 헤디 라머는 '삼손과 데릴라' 등 영화에 출연하면서 넘치는 아이디어로 목욕용 보조의자, 물에 넣으면 거품이 일어나며 녹는 발포 알약, 유선형 비행기 날개 등을 고안한 발명가였다. 그는 첫 번째 남편이었던 무기업체 사장 프리드리히 맨들에게서 무선 신호를 보내 목표를 찾아가도록 조종하는 어뢰 이야기를 듣고 흥미를 느꼈다.
당시 무선 조종 어뢰는 상대가 강력한 방해 전파를 발사해 혼선을 일으키면 목표물을 제대로 맞히지 못했다. 따라서 어뢰의 공격 성공률을 높이려면 주파수 혼선을 해결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라머는 두 번째 남편이었던 작곡가 조지 앤타일의 피아노 연주에서 어뢰의 주파수 혼선 문제를 해결할 영감을 얻었다. 피아노 건반을 옮겨 다니며 누르듯 무선 신호를 이동하며 보내면 어뢰가 방해 전파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것이 오늘날 이동통신 기술의 근간이 된 주파수 도약이다. 훗날 주파수 도약 기술은 CDMA를 비롯해 근거리 무선통신 기술인 와이파이와 블루투스 등 여러 분야에 적용됐다.
1942년 라머는 주파수 도약 기술의 발명 특허를 냈다. 이와 함께 다양한 주파수를 피아노 건반 숫자와 같은 88개로 나눠서 송수신할 수 있는 장치를 개발했다. 덕분에 그때까지 한 개의 주파수만 사용하던 무선통신에 여러 개 주파수를 함께 사용하는 대역확산 개념이 처음으로 도입됐다. 오늘날 주파수 대역확산은 이동통신에 반드시 필요한 기술이다. 라머는 미국이 나치 독일을 무찌르는데 사용하도록 특허를 정부에 기증했다.
하지만 미국 정부는 이 기술을 전쟁에 활용하지 못했다. 여성에 대한 성차별과 배우라는 직업을 무시한 편협한 사고 때문이다. 그 바람에 라머의 특허는 국가의 일급기밀로 묶인 채 10여년간 빛을 보지 못했다.
라머의 특허가 현실화된 것은 1950년대 중반이다. 그것도 군대 때문이다. 냉전이 치열하던 시기에 미 해군은 구 소련의 잠수함 탐지를 위해 비행기로 투하하는 음파 탐지기에 주파수 도약 기술을 처음 적용했다. 당시 미 해군은 라머의 특허 서류를 호프만 라디오라는 회사에 전달해 음파탐지기용 무선 송수신기를 만들었다. 당시 호프만 라디오의 기술자들은 발명가의 이름을 지운 특허 서류를 보면서 미 해군에 뛰어난 천재 개발자가 있다고 추측했다.
주파수 도약 기술은 역사적 사건인 미국의 쿠바 봉쇄에서도 빛을 발했다. 1962년 존 F 케네디 대통령 시절, 소련은 쿠바에 핵미사일 배치를 시도했다. 이를 막기 위해 케네디 대통령은 군함을 급파해 쿠바를 봉쇄했다. 제3차 세계대전이 벌어질 수 있는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미 해군은 소련의 도청을 방지하려고 라머의 주파수 도약 기술이 적용된 무선통신으로 군함 간 소통을 했다.
이후 미국은 이를 발전시켜 베트남 전쟁에서도 주파수 도약 기술을 사용했다. 밀림 때문에 무전에 어려움을 겪자 여러 개 주파수를 이용해 대역확산이 가능한 주파수 도약 기술을 적용한 무전기를 사용했다. 그것이 우리 군에서도 'P77'로 통하던 무전기 AN/PRC-77이다.
민간에서 라머가 발명한 주파수 도약 기술을 사용하게 된 것은 특허 등록 이후 40년이 지난 1981년이다. 그때서야 미 정부는 라머의 주파수 도약 기술의 일급비밀 분류를 해제해 민간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이 기술을 눈여겨 본 과학자들이 있었다. 퀄컴을 공동창업한 어윈 제이콥스와 앤드루 비터비다. 비터비는 현대 이동통신의 뼈대가 된 '비터비 알고리즘'을 창안한 것으로 유명하다. 비터비 알고리즘은 디지털 신호를 보낼 때 주파수 혼선 등으로 오류가 발생하면 이를 역추적해 바로 잡는 기술로, 오늘날 모든 휴대폰에 들어간다.
창업으로 이어진 두 과학자의 만남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와 남가주대학(USC)에서 전기공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앤드루 비터비는 1957년 미 항공우주국(나사, NASA) 산하의 제트추진연구소(JPL)에서 일했다. 이 곳에서 그는 우주선과 지상간 교신에 필요한 위성통신을 연구했다. 그는 라머의 주파수 도약 기술 등을 바탕으로 디지털 변조 기술을 개발했다. 디지털 변조는 음성 등 다양한 아날로그 신호를 디지털로 압축해 보내고, 이를 받아 다시 음성으로 재현하는 기술이다.
마침 비터비는 안식년 휴가를 받아 NASA의 연구원 자격으로 JPL에 온 MIT 교수 어윈 제이콥스를 만났다. 1933년 미국에서 태어난 제이콥스는 코넬대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MIT에서 석,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MIT와 샌디에이고 소재 캘리포니아 대학(UCSD)에서 전기공학과 교수로 일했다.
제이콥스는 MIT 교수 시절 '디지털의 아버지'로 통하는 과학자 클로드 새넌의 이론에 흠뻑 빠졌다. 새넌은 디지털의 기본 단위인 '비트'라는 용어를 만든 전설적인 수학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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