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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자율주행 내재화…50년 전 '포니'에 답 있다[김보형의 뷰파인더]

2026.03.22 15:32

“이봐, 해봤어?”
1973년 3월 정주영 현대자동차그룹 창업회장은 독자 모델 개발이 불가능하다는 임원들을 이렇게 꾸짖었다. 1970년 현대차와 합작사를 설립하기로 한 미국 ‘빅3’ 자동차 기업 포드는 기술이전에는 소극적이었고 당초에 없었던 경영 참여까지 요구했다. 정 회장은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에서 “(포드는) 현대차를 자사 부품 공장 가운데 하나로 만들 계산이었다”고 썼다. 하지만 포드서 부품을 들여와 간신히 승용차(코티나)를 조립해 팔던 현대차 처지에 독자 모델 개발은 허황된 꿈처럼 보였다.

그렇다고 정 회장이 ‘맨땅에 헤딩’ 식으로 현대차 독자 모델 개발을 밀어붙인 건 아니다. 그는 친분이 있던 구보 도미오 일본 미쓰비시 회장을 만나 엔진과 플랫폼 기술을 빌렸다. 디자인은 폭스바겐 골프 등을 디자인한 조르제토 주지아로에게 의뢰했다. 양산은 영국의 전문가 조지 턴블에게 맡겼다. 이탈리아에 파견된 이충구 전 현대차 최고기술경영자(CTO·사장) 등 직원들 역시 말도 안 통하는 곳에서 어깨너머로 기술을 보고 배웠다.

1975년 12월 마침내 한국 고유 자동차 1호인 포니가 양산을 시작했다. 한국이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 일본에 이어 8번째 독자 자동차 모델 생산국에 이름을 올린 순간이었다. 포니는 1976년 출시 첫해 1만726대가 팔리며 국내 시장점유율 44%를 차지했다. 포니는 1982년 누적 생산 30만 대를 돌파하며 마이카 시대를 열었고 1976년 에콰도르를 시작으로 세계 60여 개국에 수출됐다.

포니 양산 라인 구축과 함께 430여 개 부품 업체 발굴은 한국 자동차산업 발전의 밑거름이 됐다. 포니는 국내 기술로 제작이 어려운 품목만 수입하는 식으로 90% 이상의 부품을 국내에서 생산했다. 완성차와 함께 자동차 부품사가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다.

현대차에 갑질을 하던 포드는 2010년 현대차그룹에 ‘세계 톱5’ 자동차 메이커 자리를 내줬다. 현대차그룹의 작년 글로벌 판매량은 727만 대로 포드(440만 대)를 멀찌감치 제쳤다.

◆정의선의 AI 내재화 선언

50여 년이 흐른 2026년 1월. 이번엔 정 창업회장의 손자인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이 ‘피지컬 인공지능(AI) 독자 기술 확보’를 목표로 제시했다. 자동차산업의 무게중심이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옮겨가는 가운데 자동차 제조사를 넘어 AI와 로보틱스가 결합된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AI 역량을 내재화하지 못한 기업은 생존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단언했다. 독자 모델 개발 없는 ‘포드의 부품 공장으로 전락한다’던 할아버지의 선언과 닮아 있다. 정 회장은 테슬라 등 빅테크와의 기술 격차를 인정하면서도 “자동차와 로봇 같은 움직이는 실체와 제조 공정에서 축척되는 데이터는 우리만의 강력한 무기”라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정 회장의 공언대로 현대차그룹은 ‘CES 2026’에서 휴머노이드 로봇 ‘아틀라스’를 공개했다. 관절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는 아틀라스를 2028년부터 제조 현장에 투입하는 실용화 계획까지 내놨다. 세계 11곳의 현대차·기아 완성차 공장에서 얻은 데이터로 로봇을 학습시키고 그 로봇을 다시 현장에 투입해 성능을 개선한다는 선순환 계획에 투자자들은 환호했다. 현대차 주가가 올 들어 70% 넘게 오른 이유다.

◆인재 영입으로 반전 발판

정 회장은 현대차그룹의 아킬레스건인 자율주행은 인재 영입으로 승부수를 띄웠다. 지난 1월 14일 테슬라와 엔비디아에서 자율주행 기술을 연구한 박민우 전 엔비디아 부사장을 첨단차플랫폼(AVP)본부장(사장)으로 선임한 것. 박 사장은 2015년 테슬라에 입사해 카메라 센서만을 활용해 자율주행을 구현하는 기술인 ‘테슬라 비전’ 개발을 주도했다. 2017년 엔비디아에 합류한 뒤에도 카레마, 라이다 등 센서 데이터를 분석해 주변 사물과 도로 상황을 파악하는 기술인 ‘인지’ 관련 업무를 맡았다.

현대차그룹은 사흘 뒤인 1월 17일엔 테슬라에서 자율주행 시스템 ‘오토파일럿’과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개발을 총괄한 밀란 코박 전 부사장도 자문역으로 영입했다. 코박 자문역 주도로 2019~2022년 개발한 2세대 오토파일럿은 레이더나 라이다 없이 자체 반도체와 카메라로 자율주행을 구현해 글로벌 자동차업계 벤치마크가 됐다. 미쓰비시, 주지아로 등 외부 자원을 활용해 포니 개발에 나선 할아버지와 궤를 같이한다.

리더십 교체 이후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 개발에도 변화의 조짐이 감지된다. 박 사장은 그룹 내 자율주행 조직인 포티투닷과 모셔널의 데이터를 결합하고 엔비디아 기술 생태계를 활용해 테슬라를 추격하겠다는 밑그림을 내놨다. 자율주행 방식을 놓고 벌어진 라이다·카메라 논란부터 중국 등 해외 기술 수입 검토까지 지지부진하던 그동안의 행보와는 확연히 달라졌다.

◆엔비디아와 ‘자율주행 동맹’

정 회장은 인재 영입에 이은 반전의 발판도 마련했다. 3월 17일 엔비디아와 차세대 자율주행 솔루션 공동 개발을 선언하면서다. 현대차그룹은 ‘엔비디아 드라이브 하이페리온’을 도입해 자율주행 레벨2부터 레벨4까지 확장할 수 있는 통합 아키텍처(설계구조)를 구축하기로 했다. 하이페리온은 고성능 중앙처리장치(CPU)와 그래픽처리장치(GPU), 센서, 카메라 등 자율주행에 필수적인 하드웨어를 묶은 표준 설계구조다. 자동차 제조사가 표준 설계구조를 각 사 형편에 맞게 개조하는 방식으로 맞춤형 아키텍처를 개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글로벌 판매 ‘톱3’에 오른 현대차그룹이 제조 역량을 갖춘 만큼 이번 동맹은 자율주행 내재화에 새로운 기회가 될 전망이다.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 내재화 성공 여부를 예단하기는 어렵다. 테슬라는 이미 지난해 11월 운전대에서 손을 떼고 주행할 수 있는 ‘감독형 FSD’를 국내에 출시했다. 샤오펑 등 중국 업체들도 레벨4(비상시에도 시스템이 대응해 운전자 개입이 필요없는) 단계에 진입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2030년 1조8000억 달러(약 260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프리시던스리서치)되는 자율주행차 시장을 손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현대차그룹이 자율주행 내재화에 실패한다면 관련 기술을 사다 써야 한다. 원천 기술을 가진 외부 업체가 ‘락인 효과’를 무기 삼아 가격을 올린다면 완성차 제조 원가 관리가 쉽지 않다. 매년 전 세계에서 700만 대 이상을 판매하는 현대차그룹엔 치명적이다.

자동차는 전후방 연관 산업의 파급효과가 큰 산업이다. 부품회사를 포함한 자동차산업의 직간접 고용 인원은 150만 명으로 철강(41만 명)과 반도체(28만 명)를 합친 것보다 두 배 이상 많다. 자동차 한 대에 3만 개 가까운 부품이 들어가는 만큼 관련 생태계도 그 어느 산업보다 넓고 깊다. 자동차산업이 흔들리면 한국 경제가 온전하게 달릴 수 없는 구조다. 50여 년 전 포니를 개발할 때처럼 자율주행 기술 내재화도 가야만 하는 길이란 얘기다.

포니를 앞세워 한국 자동차산업을 독립시킨 정 창업회장의 25주기 제사가 3월 20일 서울 종로구 청운동 옛 정 창업회장 자택에서 열렸다. 이곳은 정 회장이 고등학교 시절 정 창업회장과 함께 살던 추억이 깃든 장소이기도 하다. 50여 년 전 포니 때처럼 자율주행 내재화를 추진 중인 손자(정의선)에게 할아버지(정주영)는 “이봐! 뭘 망설여, 해봐!”라며 격려해주지 않았을까 싶다.

(표 필요시)

<현대차그룹 글로벌 판매량>

2010년/574만대
2015년/801만대
2020년/635만대
2022년/666만대
2024년/723만대
2025년/727만대

자료:현대차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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