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메이크 하랬더니 딴 노래를 만들어놨네”…30세 요절·전설이 돼버린 ‘그 노래’ [음덕후:뮤지션으로 읽다]
2026.03.21 10:44
제프 버클리(Jeff Buckley), 1994년 ‘그레이스’(Grace) 앨범 발매
레너드 코헨 명곡 ‘할렐루야’(Hallelujah) 리메이크…‘원곡보다 사랑받는 노래’
1997년 멤피스 울프강서 수영하던 중 ‘익사’…거장들도 극찬하는 ‘진짜 뮤지션’
레너드 코헨 명곡 ‘할렐루야’(Hallelujah) 리메이크…‘원곡보다 사랑받는 노래’
1997년 멤피스 울프강서 수영하던 중 ‘익사’…거장들도 극찬하는 ‘진짜 뮤지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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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re’s the moon asking to stay
Long enough for the clouds to fly me away
(달이 애원하고 있어, “곁에 머물러 달라”고
구름이 나를 싣고 떠나보내기 전까지
그렇게 오래도록 머물러 달라고)
- 제프 버클리, ‘그레이스’ 中 -
Long enough for the clouds to fly me away
(달이 애원하고 있어, “곁에 머물러 달라”고
구름이 나를 싣고 떠나보내기 전까지
그렇게 오래도록 머물러 달라고)
- 제프 버클리, ‘그레이스’ 中 -
| 레너드 코헨의 ‘할렐루야’가 일정한 거리에서 인간과 인간의 감정을 관찰하며 읊조리는 듯한 제3자적 시선의 서사 구조를 갖고 있었다면, 제프 버클리의 ‘할렐루야’는 곡과 화자와의 거리를 완전히 제거하다시피 재구성됐다. 깊은 한숨으로 시작해 절제된 호흡과 미세한 떨림, 흐느끼는 듯한 발성으로 진행되는 그의 버전은, 곡을 설명하고 표현하기보다 곡 안으로 듣는 이가 직접 침잠하게 만들어 ‘하나의 이야기’였던 노래를 특정한 순간의 감정상태로 전이시키는 방식으로 꾸며졌다. [게티이미지/Photo by Jack Vartoogian] |
[헤럴드경제=김주리 기자] 하나의 작품에는 고유한 ‘형태’가 존재할까?
우리는 흔히 예술을 완결된 결과물로 이해한다. 한 번 만들어진 작품은 그 자체로 고정되어 있고, 이후의 모든 감상은 그 원형을 기준으로 이루어진다고 여긴다.
그러나 실제 예술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하나의 노래는 만들어지는 순간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해석되는 순간마다 다른 모습으로 다시 태어나기 마련이다. 동일한 악보가 다른 감정으로 울리고, 같은 멜로디가 때로 전혀 다른 이야기로 들리는 순간들, 즉 작품은 하나의 영속적인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해석을 거칠 때마다 끊임없이 갱신돼 재탄생하는 개념에 가깝다.
이처럼 작품의 정체성이 해석에 따라 달라진다고 했을 때, 그 변형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는 ‘또 다른 창작 ’이 바로 ‘리메이크’다. 리메이크는 원작을 있는 그대로 보존하는 대신 그것을 다른 감각과 목소리로 다시 불러내는 창조 행위로, 이로 인해 하나의 곡은 단일한 원형을 갖지 않게 되고 서로 다른 해석들이 병존하는 복수의 형태로 존재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면 노래의 정체성 또한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것일까? 우리는 무엇을 ‘그 노래’라고 부르는 것일까? 악보 위에 기록된 멜로디일까, 가사일까, 아니면 그것을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목소리일까.
이 질문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 사례가 제프 버클리(Jeff Buckley)의 ‘할렐루야’(Hallelujah)다.
Well it goes like this, the fourth, the fifth
The minor fall and the major lift
The baffled king composing “Hallelujah”
(자, 이야기는 이렇게 흘러가
네 번째, 그리고 다섯 번째…
미세한 추락과 거대한 부유
고뇌하던 왕이 ‘할렐루야’를 지휘하기 시작하네)
- 제프 버클리, ‘할렐루야’ 中 -
The minor fall and the major lift
The baffled king composing “Hallelujah”
(자, 이야기는 이렇게 흘러가
네 번째, 그리고 다섯 번째…
미세한 추락과 거대한 부유
고뇌하던 왕이 ‘할렐루야’를 지휘하기 시작하네)
- 제프 버클리, ‘할렐루야’ 中 -
| 노래의 정체성은 단일하게 수렴될까? 우리는 무엇을 ‘그 노래’라고 부르는 것일까? 악보 위에 기록된 멜로디일까, 가사일까, 아니면 그것을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목소리일까. 이 질문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내는 사례가 제프 버클리(Jeff Buckley)의 ‘할렐루야’(Hallelujah)다. [게티이미지/Photo by David Gahr] |
관찰자에서 경험자로…제프 버클리식 ‘할렐루야’의 가냘픈 속삭임
레너드 코헨(Leonard Cohen)이 1984년 발표한 ‘할렐루야’는 성서적 이미지와 인간의 욕망, 사랑과 회의를 교차시키며 종교적 언어를 세속적 감정으로 끌어내린 명곡으로 꼽힌다. 발표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으나 이후 수많은 가수들에 의해 재해석되며 점차 존재감을 확장해왔다. 하나의 곡이 다양한 해석을 거치며 다른 얼굴을 갖게 된 대표적인 사례다.
그 가운데에서도 제프 버클리의 버전은 ‘또 하나의 다른 명작’으로 평가받는데, 이 곡이 강력한 인상과 감정적 설득력을 남기는 이유는 몇 가지 분명한 구조적 변화로 설명된다.
레너드 코헨의 ‘할렐루야’가 일정한 거리에서 인간과 인간의 감정을 관찰하며 읊조리는 듯한 제3자적 시선의 서사 구조를 갖고 있었다면, 제프 버클리의 ‘할렐루야’는 곡과 화자와의 거리를 완전히 제거하다시피 재구성됐다. 깊은 한숨으로 시작해 절제된 호흡과 미세한 떨림, 흐느끼는 듯한 발성으로 진행되는 그의 버전은, 곡을 설명하고 표현하기보다 곡 안으로 듣는 이가 직접 침잠하게 만들어 ‘하나의 이야기’였던 노래를 ‘특정한 순간의 감정상태’로 전이시키는 방식으로 재구성됐다.
이 변화는 단순한 스타일의 차이를 넘어선다. 같은 멜로디와 코드, 가사를 유지하고 있음에도 곡이 전달하는 정서의 방향과 밀도 자체를 바꿔버렸기 때문이다. 코헨의 ‘할렐루야’가 복합적이고 시적인 의미를 품은 이야기를 따라가게 만든다면, 버클리의 ‘할렐루야’는 의미를 해석하기 이전에 감정을 먼저 체험하게 만든다. 노래의 중심이 ‘무엇을 말하는가’에서 ‘어떻게 느껴지는가’로 이동하는 순간이다.
결과적으로 ‘할렐루야’는 하나의 원형을 가진 작품이라기보다 서로 다른 정체성을 지닌 두 개의 작품처럼 인식되기 시작한다. 그리고 직접적으로 듣는 이의 감수성을 건드리며 곡에 깊이 빠져버리게 만드는 버클리식 ‘할렐루야’는 지나간 감정을 회상하기보다는 ‘지금, 여기’에서 발생하는 감정을 보여줌으로써 노래를 듣는 행위에서 ‘체험하는 행위’로 전환시킨다. 그의 ‘할렐루야’가 어떤 리메이크 곡보다, 때론 원곡보다 더 가슴에 와닿는 이유다.
Well, there was a time when you let me know
What‘s really going on below
But now you never show that to me, do ya?
But remember when I moved in you
And every breath we drew was Hallelujah
(그래, 네가 나에게 진실했던 때가 있었지
하지만 넌 더이상 나에게 네 마음을 보여주지 않아, 그렇지?
내가 너의 집에 들어왔을 때를 기억하니?
우리가 내쉬는 모든 숨결은 축복이며 기적이었어)
- 제프 버클리, ‘할렐루야’ 中 -
What‘s really going on below
But now you never show that to me, do ya?
But remember when I moved in you
And every breath we drew was Hallelujah
(그래, 네가 나에게 진실했던 때가 있었지
하지만 넌 더이상 나에게 네 마음을 보여주지 않아, 그렇지?
내가 너의 집에 들어왔을 때를 기억하니?
우리가 내쉬는 모든 숨결은 축복이며 기적이었어)
- 제프 버클리, ‘할렐루야’ 中 -
| 직접적으로 듣는 이의 감수성을 건드리며 곡에 깊이 빠져버리게 만드는 방식의 버클리식 ‘할렐루야’는 지나간 감정을 회상하기보다는 ‘지금, 여기’에서 발생하는 감정을 보여줌으로써 노래를 듣는 행위에서 ‘체험하는 행위’로 전환시킨다. 그의 ‘할렐루야’가 어떤 리메이크 곡보다, 때론 원곡보다 더 가슴에 와닿는 이유다. [게티이미지/Photo by Steve Eichner] |
“노래는 하나인데 두 곡이 너무 달라”…‘한 곡’의 정체성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이처럼 레너드 코헨과 제프 버클리의 ‘할렐루야’는 동일한 멜로디와 가사를 공유하고 있음에도 전혀 다른 감정과 인상을 만들어내며, 하나의 곡이 서로 다른 정체성을 가질 수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렇다면, 노래의 정체성은 근본적으로 어떻게 생성되는 것일까.
우리는 흔히 하나의 곡을 멜로디와 가사, 그리고 편곡으로 이루어진 완결된 구조로 이해한다. 실제로 악보에 기재된 악기의 배치나 템포, 표현 방식 등은 노래의 외형을 구성하는 가장 직접적인 단서이며 곡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표면적 구조만으로는 동일한 곡이 전혀 다른 정서로 작동하는 과정을 설명하는 데 한계가 있다.
노래의 이면에는 보다 복합적인 층위가 존재한다. 특정한 순간에 인간이 경험하는 감정의 결, 그것을 받아들이는 감수성, 그리고 언어로 명확히 규정되기 이전의 미묘한 울림 등이 그것이다. 결과적으로 하나의 곡은 이러한 내면의 상태들과 맞물리며 비로소 구체적인 정서로 드러나는데, 다시 말해 노래는 단순한 ‘구조의 집합’이 아니라, 인간의 내면과 결합될 때 비로소 완성되는 ‘감성의 형태’에 가깝다.
그리고 이때 ‘가창’은 그 두 층위를 연결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가창은 단순히 소리를 내거나 멜로디를 정확히 재현하는 기술임을 넘어, 보다 복합적인, ‘의식(意識)과 무의식을 오가는 작업’에 가까운데, 가창자는 하나의 곡을 완창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내면 깊숙한 감정으로 내려갔다가, 그것을 다시 끌어올리고, 때로는 환기시키고 변형시키는 과정을 반복한다. 이 일련의 움직임 속에서 노래는 단순한 음의 나열을 넘어 하나의 살아 있는 정서로 조직된다.
결국 하나의 곡이라는 뼈대 자체는 동일할지라도 어떤 깊이에서 어떤 방식으로 감정을 끌어올리느냐에 따라 곡은 전혀 다른 정체성을 갖게 된다. 노래의 정체성은 구조 그 자체에서 고정되는 것이 아니라, 그 구조가 인간의 내면을 통과해 지나가며 어떻게 경험되느냐에 따라 새롭게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지점에서 하나의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가 흥얼거리는 노래 속의 어떤 것을 사랑하는 것일까? 유사한 장르, 비슷한 결의 감수성, 때로는 리메이크라는 형태로 다시 태어난 노래들과 각곡들의 정체성. 어떤 노래에는 깊이 빠져들고, 어떤 노래에는 머무르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I‘ve seen this room and I’ve walked this floor
And I‘ve seen your flag on the marble arch
And love is not a victory march
It’s a cold and it‘s a broken Hallelujah
(한 때 난 이 방을 바라보았고, 한 때는 이곳을 걸어도 보았지
그리고 대리석 아치에 걸려있는 너의 깃발도 보았어
그리고 깨달았지, 사랑은 승리의 행진이 아니라는 걸
사랑은 그저 차게 식고, 부서져버린 축복이라는 걸)
- 제프 버클리, ‘할렐루야’ 中 -
And I‘ve seen your flag on the marble arch
And love is not a victory march
It’s a cold and it‘s a broken Hallelujah
(한 때 난 이 방을 바라보았고, 한 때는 이곳을 걸어도 보았지
그리고 대리석 아치에 걸려있는 너의 깃발도 보았어
그리고 깨달았지, 사랑은 승리의 행진이 아니라는 걸
사랑은 그저 차게 식고, 부서져버린 축복이라는 걸)
- 제프 버클리, ‘할렐루야’ 中 -
| 제프 버클리의 ‘할렐루야’는 ‘리메이크 곡 이상의 또 다른 작품’으로 기억된다. 원곡의 정체성은 지워지고 완전히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곡의 탄생. 그것은 변주도, 재현도, 모방도 아닌 창작 행위 그 자체의 본질에 닿아 있다. 버클리가 들려준 것은 하나의 노래를 통해 새로운 경험이 태어나는 순간 그 자체였다. [팬 아트/출처 미상] |
“난 이 노래가 그렇게 좋더라”…우리가 ‘어떤 노래’를 사랑하는 이유
결론적으로 우리는 ‘곡’ 그 자체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곡을 통해 경험하게 되는 ‘감정의 깊이’를 사랑하는 것에 가깝다. 구조적 요소들은 그 감정에 도달하기 위한 통로임에 분명하지만 우리를 실제로 붙잡게 되는 것은 그 구조를 통해 마음에 닿으며 발생한 하나의 체험이다. 노래는 외부에 존재하는 대상임과 동시에 듣는 이의 내면에서 다시 한 번 완성되는 경험이다.
여기서, 제프 버클리의 ‘할렐루야’가 갖는 설득력은 더욱 분명해진다. 그의 노래는 어떤 의미를 전달하는 것 이상으로, 감정이 발생하는 순간 그 자체를 직접적으로 건드린다. 듣는 이는 노래를 분석하거나 이해하기 이전에 먼저 노래가 주는 감성으로 끌려 들어가고, 그 안에서 자신의 기억과 감각을 겹쳐놓게 된다. 버클리의 ‘할렐루야’가 ‘최고의 리메이크 곡’으로 불리는 이유는 그것이 잘 만들어진 해석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 해석이 듣는 이로 하여금 더 깊은 감정의 경험에 도달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많은 이들에게 ‘할렐루야’는 레너드 코헨의 곡이면서도 동시에 제프 버클리의 곡으로도 기억된다. 하나의 원곡 위에 또 다른 결의 감정이 덧씌워지거나 변형되는 순간(정체성이 바뀌는 순간), 노래는 더 이상 단일한 정체성을 유지하지 않으며, 우리는 그 여러 겹의 해석 가운데, 가장 깊이 자신을 흔들었던 순간을 선택해 ‘이 노래’를 기억하게 된다.
Well I heard there was a secret chord
That David played, and it pleased the Lord
(다윗이 연주했던 비밀스러운 화음이 있다고 들었어
그리고 그 노래는 신을 기쁘게 했다고 하네)
- 제프 버클리, ‘할렐루야’ 中 -
That David played, and it pleased the Lord
(다윗이 연주했던 비밀스러운 화음이 있다고 들었어
그리고 그 노래는 신을 기쁘게 했다고 하네)
- 제프 버클리, ‘할렐루야’ 中 -
하나의 노래는 고정된 형태로 존재하는 작품이 아닌, 해석과 감정의 층위를 통과하며 끊임없이 태어나는 경험이다. 리메이크라는 창작 행위를 통해 동일한 멜로디와 가사 위에서도 전혀 다른 노래가 만들어질 수 있는 이유는 그 곡이 어떤 구조를 갖고 있느냐보다 그것이 어떤 방식으로 인간의 내면을 건드리고, 그 안에서 어떤 울림을 주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노래의 정체성은 애초에 하나로 고정될 수 없는 가변적인 것일지도 모른다. 음악은 악보 위에 기재된 형태 이상으로, 듣는 이 각자의 기억과 감정 속에서 매번 다르게 완성된다.
그렇기에 제프 버클리의 ‘할렐루야’는 ‘리메이크 곡 이상의 또 다른 작품’으로 기억된다. 원곡의 정체성은 지워지고 완전히 새로운 정체성을 가진 곡의 탄생. 그것은 변주도, 재현도, 모방도 아닌 창작 행위 그 자체의 본질에 닿아 있다.
버클리가 들려준 것은 하나의 노래를 통해 새로운 경험이 태어나는 순간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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