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의 도발]대한민국엔 야수들이 산다…정서불안 햄찌도 함께
2026.03.21 10:01
‘작은 땅의 야수들’(이하 ‘야수’)과 ‘정서불안 김햄찌’(이하 ‘햄찌’)는 비슷한 점이 없지 않다. 첫째, 둘 다 지은이가 30대 여성이다(너무 사소한가).
‘야수’의 작가 김주혜는 어릴 때 이민 간 1987년생 미국계 한국인이다. 외조부가 독립운동을 했다지만 젊은 작가가 일제 강점기 평안도 사냥꾼부터 경성의 어린 기생들, 청계천 다리 밑 거지들, 그리고 독립운동가와 고학생 출신 사업가 등의 50여 년에 걸친 사랑과 격동과 전쟁사를 유려하고도 가슴 저리게 엮어냈다는 점이 놀랍다.
● MZ의 일상은 식민지처럼 처절하다
실은 ‘소소한 일상’이라고 쓰려다 멈칫했다. 식민지 백성이 아니라고, 6·25 같은 전쟁을 안 겪고 있다고 어찌 소소하다 할 수 있으랴 싶어서다.
회식자리에서 걸려든 빡빡이 오봉수 실장의 맞은편 자리. 40분 째 침묵 속에 고기만 굽다 너무 어색해 큰맘 먹고 질문 한번 했다가 햄찌는 업무 피드백을 받고 만다(너 그 일 안 해본 것 같더라, 같은). 밤에 자려고 누웠는데 실장 말이 머리 속에서 무한 리플레이 되면서 “아무래도 나가 죽어야겠다”하는데…내 젊은 날이 떠올라 정서불안 햄찌를 꼭 안아주고 싶었다.
● 어떻게 그리 많은 야수들이 번성하는지
‘야수’에서 일본군 장교 출신 사업가는 “이 작은 땅에서 어떻게 그리도 거대한 야수들이 번성할 수 있었는지 신비로울 따름”이라고 했다. 패전을 알고 일본 나가사키로 돌아가기 전, 일본엔 그처럼 사나운 맹수가 없다면서 했던 말이다.
작가는 함박눈이 내리는 설경을 달리던 중 사냥꾼 한 사람이 떠올랐고 그 앞에 호랑이가 나타나는 영감에, 바로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고 했다. 한국 독자들에게 주는 그 글을 읽는데, 글쎄 12·3 친위쿠데타 이후 한남동 대통령 관저 앞에서 윤석열 체포를 촉구하던 ‘키세스 시위대’가 떠올랐다. 함박눈과 야수같은 기세가 준 연상 작용이었을 것이다.
김주혜가 맞았다. 대한민국엔 야수들이 산다. 시시하게 굴지 말라. 기생과 거지들도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던, 우리는 야수같은 국민이다. 설령 정치인 당신들이 상처를 입히더라도, 잊지 말라. 절대 존엄을 잃지 않는 이 땅의 호랑이들이 당신들을 용납지 않을 것임을.
● 세상이 암만 억까해도 해내야만 한다
수당 안주면 야근 안 한다는 신입사원 조용 씨에게 “사회성도 떨어지면 질병인 것을, 못난 놈”하고 판소리로 혼잣말 하는 햄찌(‘그렇게 햄꼰이 된다’)에겐 “샤 한데 빵 한 영상” “햄찌!! 우리 회사에 있는 거 아니지?” “요새 찾기 힘든 인재, 그게 바로 김햄찌!” 같은 공감과 위로의 댓글이 800개 넘게 달렸다.
“세상이 암만 억까해도 결국 해내야 한다”며 눈을 부릅뜨고 일하는 ‘야근의 시발점’을 보면 가슴이 미어진다(꼭 ‘야수’를 볼 때처럼). 햄찌의 정서불안이라는 것이 실은 ‘인정’받고 싶다는 심리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야수’에서 옥희의 끔찍한 사랑을 통해 성공한 한철은 이런 말을 했다. “자신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갖게 만드는 건 세상에 딱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본인에게 닥친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에게서 깊은 사랑을 받는 것이죠.”(뻔뻔한 놈…)
● 야당 없는 나라, 식민지와 뭐가 다른가
‘야수’에서 광복절은 극도의 환희, 자유라는 감각으로 그려진다. “일본 천황이 항복했다!” 고함에 ‘좌파, 우파, 지식인, 양반, 신사, 빈민, 학생 심지어 백정과 매춘부까지, 사회에 존재하는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한껏 자유롭게 기쁨을 나누고 있었다’고 김주혜는 썼다.
우리에겐 좌파 우파 할 것 없이 동등한 위치에서 한껏 기쁨을 나누던 때가 분명 존재했다. 여야 할 것 없이 강성 당원만 사람 취급할 일이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만을 위한 ‘사법3법’도 꺼림칙하다. 기생 출신 옥희와 거지 출신 정호도, 정서불안 햄찌도, 우리는 모두 존엄성을 인정받고 싶다. 지금은 ‘뉴 이재명’이 늘었다고 희희낙락할지 모른다. 그러나 정권이 오만해지면 우리 국민은 언제든 야수로 돌변한다는 것을 잊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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