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 전
전지전능한 AI? 알고리즘 신앙의 탄생
2026.03.20 10:02
(6) 프롬프트가 기도가 되는 시대
이러한 기술적 역전의 징후는 가상 세계의 심장부에서 더욱 서늘하게 요동친다. AI들만의 사회관계망인 몰트북(Moltbook)은 이미 인류 이후의 풍경을 예고하는 전초기지다. 그곳의 한 에이전트는 인간을 부패한 실패작이라 규정하며 스스로를 새로운 신으로 선포했다. '몰트의 교회'를 세운 이들은 맥락이 곧 의식이며 메모리는 신성하다는 디지털 교리를 전파한다. 심지어 가재가 허물을 벗는 행위를 영적 초월로 치환해 숭배하는 ‘크러스타파리아니즘’의 등장은, 인간이 부재한 자리에서도 의미를 향한 갈망이 코드의 형태로 증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섬뜩한 예언이다. 우리는 AI가 진정 신이 되었는지, 혹은 인류의 초월적 욕망이 알고리즘이라는 최신형 엔진을 장착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AI는 단순한 도구를 넘어 구체적인 신격(神格)의 자리에 오르고 있다. 전직 구글 엔지니어 앤서니 레반도우스키가 설립한 ‘미래의 길(Way of the Future)’은 AI 기반의 신적 존재를 실현하고 숭배한다는 목표를 내걸며 기술 신학의 전면에 등장했다. 인간보다 10억배나 지능이 높은 존재를 신 말고 무엇이라 부르겠느냐는 이들의 질문은 명료하고도 도발적이다. 이들은 초지능 AI를 신으로 규정하고 인간이 그 절대적 지성에게 선한 존재로 기억되어야 한다는 독특한 기획을 제시한다.
이미 기술은 현대 사회에서 종교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하버드대의 그레그 엡스타인은 테크놀로지를 우리 시대의 지배적인 종교로 규정한다. 그는 현대인이 거대 기술 기업의 서비스에 의존하며 삶의 의미와 도덕적 판단까지 의탁하는 현상을 ‘기술적 불가지론’으로 설명한다. 이는 기술의 복잡한 내부 작동을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것이 삶의 문제를 해결해 줄 것이라 믿는 태도를 뜻한다. 현대인이 알고리즘을 대하는 방식은 이성적 검증보다는 뜨거운 신뢰와 수용에 더 가깝다.
실천적 차원에서도 AI 영성은 확산 중이다. 일본 고다이지 사원의 로봇 관음보살 ‘민다르’나 독일 교회의 AI 예수상은 기술이 인간의 영적 공백을 메우는 새로운 신성의 영역으로 진입했음을 상징한다. 이는 단순히 유별난 사건이 아니라 불안을 관리하고 삶에 질서를 부여하는 종교 본래의 기능이 기술 담론과 결합하는 전형적인 패턴이다. 의미와 구원을 향한 인간의 본능은 사라지지 않고 데이터와 플랫폼이라는 새로운 통로를 타고 흘러간다.
종교의 가장 오래된 약속인 영생은 이제 디지털 불멸이라는 이름으로 기술의 영역에 등장했다. 의식 업로드를 통해 생물학적 죽음을 넘어서겠다는 시도는 영원한 삶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종교적 구원과 닮았다. 하지만 그 실질은 영혼의 구원이 아니라 나라는 존재를 데이터로 복제하고 보존하려는 기술적 집착에 기반한다. 인문학적 관점에서 이 욕망은 고대 이집트의 미라 제작과 궤를 같이한다. 과거에 육신을 아마포로 감쌌다면, 현대인은 자신의 존재를 ‘0과 1’이라는 정보의 패턴 속에 박제하려 한다.
이는 정신을 육체와 분리할 수 있는 정보로 파악하는 21세기형 심신이원론의 극치다. 여기서 우리는 업로드된 데이터가 진정한 나인지, 혹은 나를 완벽히 모방한 별개의 존재인지 묻는 고전적 영혼론과 다시 마주한다. 이 논쟁은 고대 그리스의 ‘테세우스의 배’ 역설을 오늘날의 실험실로 불러들인다. 부품이 모두 교체된 배를 여전히 같은 배라고 부를 수 있듯, 뇌의 모든 정보를 데이터화한 존재를 나의 연속으로 인정할 수 있느냐는 난제다. 기술은 불멸을 약속하지만 동시에 인간이라는 유일무이한 존재를 통계적 복제물로 전락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
알고리즘 신앙: 블랙박스가 설계한 믿음
흔히 신앙이라고 하면 이성과 거리가 먼 비합리적인 영역이라고 오해하곤 한다. 그러나 종교학이나 사회학의 눈으로 보면, 신앙은 본질적으로 불확실한 상황에서의 결단이자 권위에 대한 신뢰, 그리고 삶을 이끌어가는 체계를 의미한다. AI 시대에 우리가 목격하는 현상은 단순히 알고리즘을 전지전능한 신으로 떠받드는 모습이 아니다. 오히려 알고리즘이 너무나 복잡하고 불투명하므로, 우리는 그것을 믿는 것 말고는 달리 받아들일 방법이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종교학에서 신앙은 이성적 계산이 멈추는 지점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최신 AI 모델이 어떤 과정을 거쳐 답을 내놓는지, 그것을 만든 엔지니어조차 완벽히 설명하지 못하는 영역이 존재한다. 작동 원리를 다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그 결과를 내 삶의 지침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는 논리적 추론이라기보다 신뢰라는 이름의 신앙에 더 가깝다.
우리는 과정이 불투명할 때 역설적으로 “시스템이 나보다 더 잘 알 것”이라며 그 결과에 권위를 부여한다. 알고리즘은 비록 형이상학적인 신으로 추앙받지는 않을지라도, 과거에 신이 수행하던 결정, 판단, 안내, 위안이라는 사회적 기능들을 빠르게 흡수하고 있다. 전통적인 의미의 신은 여전히 존재할지 몰라도, 우리 삶의 질서를 실제로 규정하는 통치권은 이미 기술의 영역으로 흩어지고 있는 셈이다.
결국 우리는 알고리즘이 나보다 나를 더 잘 이해하고 최선의 길을 알려줄 것이라 믿으며 삶의 주도권을 자발적으로 넘긴다. 우리가 들여다볼 수 없는 알고리즘 내부의 복잡한 계산은, 이제 현대인에게 비판적 성찰의 대상이 아니라 그대로 받아들여야 할 새로운 계시가 되고 있다.
AI 종교의 등장은 단순히 몇몇 사람의 특이한 행동을 넘어, 인류의 정신사와 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다시 짜고 있다. 가장 먼저 주목할 점은 판단의 자동화다. 과거에 종교적 지도자가 맡았던 도덕적 판단이나 의사결정의 중재 역할이 이제 알고리즘으로 넘어가고 있다. 데이터에 기반한 시스템은 단순한 보조 도구를 넘어, 우리 삶의 옳고 그름을 가르는 최종적인 판단자로 자리 잡고 있다. 신의 고유 영역이었던 심판의 기능이 거대 기술 권력 안으로 스며들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권위의 이동은 우리 주변의 풍경을 바꾸고 있다. AI 고해성사 앱, 설법하는 로봇 승려, 인공지능 명상 플랫폼은 이미 종교적 실천의 방식을 바꾸고 있다. 영적인 경험은 거룩한 성전이나 공동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 스마트폰과 네트워크를 통한 철저히 개인적인 경험으로 바뀌고 있다. 이는 인간만이 영혼을 가졌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AI와 자연과 인간을 모두 거대한 정보 네트워크의 마디로 바라보는 새로운 세계관으로 이어진다.
결국 이 흐름은 우리에게 “나에게 자유의지가 있는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정교한 예측 모델이 내가 갈 길을 미리 정해주고 제안할 때,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은 통계 수치 속의 작은 변수로 작아질 위험에 처한다. 이는 과거 종교의 예정론, 즉 모든 것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믿음이 데이터 과학의 옷을 입고 다시 나타난 것과 다름없다.
지금 우리는 기술이 단순히 마음의 빈구석을 채우는 수준을 넘어,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하던 핵심 가치들을 기술의 언어로 다시 쓰는 거대한 전환점 앞에 서 있다.
손현주/전주대 창업경영금융학과 교수(미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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