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불태운다, 더 사악해진 중동전쟁
2026.03.20 05:00
공격을 받은 이란의 사우스파르스는 이란 가스 생산량의 70%를 담당하는 이란의 핵심 에너지 공급 인프라다.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이번 공격은 상황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통제 불능의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으며 보복에 나선 이유다. 이란 의회 지도부 역시 “새로운 단계의 대결이 시작됐다”고 선언했다.
이란이 보복한 라스라판은 세계 액화천연가스(LNG) 공급의 약 20%를 처리하는 거점이다. 카타르 국영기업 카타르에너지(QE)의 사드 알카비 최고경영자(CEO)는 로이터통신에 “(이번 미사일 피격으로) 한국과 중국, 이탈리아, 벨기에로 향하는 LNG 장기 공급 계약에 대해 최장 5년간의 불가항력을 선언해야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회사 LNG 수출 용량의 17%가 손상됐고, 복구에 3∼5년이 걸릴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한국은 연간 900만∼1000만t의 LNG를 카타르에서 들여온다. 지난달 기준 한국이 수입한 LNG 중 카타르산 비중(15%)은 호주(24%)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이에 QE가 실제 불가항력을 선언해 한국이 5년치의 LNG 물량을 받지 못하면 이를 장기계약보다 가격이 높은 현물시장에서 조달해야 한다. 산업계와 일반 가정의 가스요금이 상승할 가능성이 큰 이유다.
영국 가디언은 전문가를 인용해 “단순한 공급 차질이 아닌 구조적 충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전쟁이 끝나도 에너지 시장 불안은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했다. 이미 가동이 중단된 라스라판 헬륨 생산시설도 복구에 최대 수개월이 걸린다고 한다. 이에 따라 반도체 웨이퍼 냉각에 필수적인 헬륨도 공급 압박이 커지고 있다. 카타르는 전 세계 헬륨 생산의 약 3분의 1을 차지한다.
19일엔 사우디아라비아 정유시설 2곳이 이란의 공격을 받았다. 이날 튀르키예·아랍에미리트(UAE)·요르단 등 이슬람권 12개국 외무장관이 회의를 하던 도중 이란의 탄도미사일이 리야드로 날아들었다. 파이살 빈 파르한 알사우드 사우디 외무장관은 “이란의 침략에 대한 사우디의 인내심은 무한하지 않다”며 필요할 경우 군사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 강력 경고했다. 쿠웨이트의 미나 알아흐마디 정유공장도 이란 드론의 공격을 받았다.
한국 LNG 수입비중, 카타르가 2번째 …가스료 충격파 우려
시장은 바로 반응했다. 양측의 에너지 시설 공격이 알려지며 18일 브렌트유는 8% 가까이 폭등, 한때 배럴당 111달러까지 치솟았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 트레이딩이코노믹스에 따르면 이날 영국 도매 가스 가격도 하루 6% 상승했다.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봉쇄도 장기화하고 있다. 최근 이 일대에서 선박 공격이 잇따르자 수백 척의 배가 걸프해에 닻을 내리고 정박해 있는 상태다. 이런 가운데 심각한 에너지난을 겪고 있는 인도는 오만만과 아라비아해에 군함 6척 이상을 배치해 자국 선박 보호에 나섰다.
미국의 계산도 복잡해지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공격을 사전에 인지하고 호르무즈 봉쇄에 대한 경고 차원에서 지지했지만, 추가 에너지 시설 타격에는 신중한 입장으로 돌아섰다”고 전했다. 에너지 가격 급등으로 전쟁에 대한 미국 내 여론이 급격히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미국은 중동 작전 강화 및 호르무즈 안정을 위해 수천 명 규모의 병력을 추가로 파견할 예정이라고 로이터가 전했다.
이와 관련, 장지향 아산정책연구원 지역연구센터장은 “미국은 애초 에너지 시설 공격을 피하려 했지만, 이스라엘이 레드라인을 넘었다”며 “결과적으로 이란의 걸프 시설 공격 명분을 키우고 내부 민심에도 변수를 만들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명예교수는 “이스라엘은 전쟁을 끝내지 않을 생각이며 에너지 시설 공격은 전쟁을 장기화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라며 “잘못하면 10년 단위 장기전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국면”이라고 경고했다.
한편 호르무즈해협을 거치는 원유·LNG의 약 85%를 수입하는 아시아 국가들은 때아닌 리콜(Re coal·석탄 회귀) 시대로 선회하고 있다. 액화석유가스(LPG)의 90%를 중동에서 수입하는 인도에선 LPG가 부족해 새벽부터 시민들이 가스 충전소 등에 몰려들어 대기 순번을 둘러싸고 충돌하고 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전했다. 연료가 부족해진 각 도시의 식당에선 차(tea) 대신 레몬물, 튀김 대신 밥이나 렌틸콩 등 연료를 적게 써도 조리가 가능한 음식으로 메뉴를 조정하고 있다. 남부 케랄라주 등에선 주민들이 장작을 이용하는 전근대적 취사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다.
대부분 화장(火葬)으로 장례를 치르는 아시아 국가들의 장례식에도 여파가 미쳤다. 타임스오브인디아는 치솟는 LPG 가격 때문에 일부 인도 유가족들이 불가피하게 장작을 사용하는 전통 방식으로 화장을 치르고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팬데믹 때 도입됐던 재택근무도 다시 돌아왔다. 태국 정부는 공공기관에 필수 인력과 공공 서비스를 제외하고는 ‘전면 재택근무’를 지시하는 한편, 에어컨도 26~27도로 맞추도록 했다. 필리핀은 관공서에 주 4일 근무제를 일부 도입했다. 베트남은 민간 기업에도 재택근무 권고를 내렸다.
에너지 배급제도 나타났다. 스리랑카는 3월 중순부터 오토바이는 주 5L, 승용차는 주 15L, 버스는 주 60L 식으로 차종별 연료 배급을 시작했다. 네팔은 13일부터 빈 LPG 용기를 절반만 채워주는 취사용 가스 배급에 들어갔다. 뉴욕타임스(NYT)는 LNG 위기에 한국과 일본, 대만, 태국 등이 석탄 화력발전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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