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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라인’ 넘는 가스전 공격…걸프국 참전 방아쇠 당기나

2026.03.19 19:44

이란·이스라엘 치고받은 가스전
세계 가스 매장량의 30% 묻혀 있어
사우디 등 걸프 왕정국가 참전 경고
2일(현지시각) 카타르 라스라판 석유화학 단지의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개전 3주째인 미국·이스라엘과 이란의 전쟁이 세계 최대 가스전을 공유하는 이란과 카타르의 핵심 가스 생산 시설로 옮겨가면서 ‘에너지 전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이란 최대 가스전 공격에, 이란이 카타르 등 걸프 3개국 에너지 시설 5곳에 대한 공격으로 보복하면서 중동 전역이 불타오를 기세다.

이란 매체들의 보도를 보면, 18일(현지시각) 이란의 해상 가스전인 사우스파르스와 이와 직결된 이란 남서부 해안 아살루예의 천연가스 정제시설 단지가 이스라엘의 폭격을 받았다. 사우스파르스 가스전은 카타르의 노스필드 가스전과 연결된 가스전으로, 이 두 가스전에 세계 최대 규모인 전 세계 천연가스 매장량의 30%가 묻혀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스라엘의 공격으로 사우스파르스 가스전의 3·4·5·6 광구가 불이 나 가동이 중단됐다. 사우스파르스에서 뽑아낸 천연가스를 정제·가공하는 아살루예의 파르스 특별경제에너지단지(PSEEZ)도 공격당했다. 전 세계 천연가스 소비 4위국인 이란은, 이 가스전에서 소비량의 70%를 생산한다. 수십년 동안 진행된 경제 제재로 심각한 상태인 이란의 가스난과 전력난을 더욱 악화시킬 수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진단했다.

개전 뒤 처음으로 에너지 생산 시설의 타격을 받은 이란은 ‘눈에는 눈’ 방식의 보복에 나섰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삼레프 정유 시설과 주베일 석유화학 단지, 아랍에미리트의 알호슨 가스전, 카타르의 라스라판 정제시설단지, 메사이드 석유화학 단지 등 5곳을 공격 대상으로 발표한 뒤 미사일과 무인기 공격에 나선 것이다. 이 가운데 카타르의 라스라판 산업단지가 이란의 공격을 막지 못하고 광범위한 피해를 입었다. 노스필드 가스전과 연결된 라스라판은 글로벌 액화천연가스 공급량의 약 20%를 담당하는 세계 최대 규모의 가스 산업 거점이다. 피해가 장기화할 경우 이곳에서 가스를 받는 아시아와 유럽 등의 에너지 수급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19일 홍해에 있는 사우디아라비아 서부 얀부항의 삼레프 정유시설에도 무인기가 떨어져 한때 항구의 석유 선적이 중단됐다.

이란과 카타르가 공유한 가스전은 양국 경제 모두에 핵심적이지만 생산량 차이는 9배에 이른다. 올해 초 기준 카타르는 하루 약 5억2천만㎥을 생산했다. 이란은 하루 5700만㎥에 그쳤다. 카타르는 엑손·셸 등 국제 에너지 회사들과 공동 개발로 생산 기술이 앞서 있는 반면, 장기간 서방의 제재를 받은 이란은 기술이 낙후되어 있고 시설도 노후한 탓이다. 카타르는 전 세계의 액화천연가스(LNG) 공급량의 20%를 차지할 정도의 막대한 양의 가스를 수출해 한해 정부 수입의 80%를 벌어들인다. 이란은 생산량 대부분을 국내에서 사용하는데도 모자라, 겨울에는 에너지난을 겪을 정도다.

이 때문에 카타르가 이슬람공화국 체제의 붕괴를 막아왔다는 분석도 있다. 미국 싱크탱크 민주주의수호재단(FDD)의 사이드 가세미네자드 이란 전문가는 지난해 10월 “카타르의 눈부신 번영은 가스전에 기반을 두고 있기에, 카타르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슬람 공화국의 붕괴를 막는 것”이라며 “이란이 제재에서 벗어나 서방 자본에 접근할 수 있게 된다면 10년 안에 카타르와 경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핵협상 과정에서 가스와 석유 개발 투자로 미국이 “대박”을 내게 해주겠단 이란 쪽 제안에는 낙후한 이 가스 생산 능력을 끌어올리겠단 계산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한쪽의 가스 추출량이 많아지면 다른 쪽이 줄어드는 ‘제로섬 게임’이기 때문에 이런 불균형은 양국 사이의 긴장 요소가 되어 왔다. 이란이 18일 자국 가스전이 공격받자, 카타르의 노스 필드 가스전에서 생산한 가스를 정제하는 라스라판 단지를 곧바로 공격한 것은 비례적 보복에 더해 이런 누적된 불만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래픽 한겨레

이란 혁명수비대가 이날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의 석유·가스 시설까지 공격하겠다고 경고하자, 사우디 등 주변 왕정 걸프국가들도 참전을 언급하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그동안 서방과 이란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해 왔던 카타르는 “국가 안보에 대한 직접적 위협”이라며 이란 외교관을 추방하는 강수를 뒀다. 사우디 외무장관인 파이살 빈 파르한 왕자는 이날 수도 리야드에서 주요 중동국가 외무장관들과 회의를 마친 뒤 “이전에 조금이라도 남아 있던 신뢰마저 완전히 무너졌다”며 “필요하다고 판단될 경우 우리는 군사 행동을 취할 권리를 분명히 보유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왕정 국가들이 권위주의적 통치를 펼 수 있는 이유는 막대한 에너지 수입에 기반해 국민에게 높은 생활 수준을 제공하는 것인데, 이란의 공격은 이런 국가 시스템을 공격하는 것이라고 가디언은 분석했다.

카타르 라스라판 정제시설 단지의 피해 규모에 따라 수년간 세계 가스 공급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단 전망도 나온다. 2003년 이라크 전쟁 당시 손상된 석유 생산 시설을 복구하는 데 2년 이상이 소요됐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사울 카보닉 에너지 분석가는 “전쟁이 끝나더라도 수리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공급 영향은 수개월 또는 수년간 지속할 수 있다”고 파이낸셜타임스에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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