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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언제나 돌아가고픈 고향 제주

2026.03.19 00:44

오랜만에 고향인 제주에 왔다. 공항을 나오는 순간 풍겨오는 바다 짠내음과 하늘까지 뻗은 야자수. 공기가 맑아 잘 보이는 별들과 집으로 가는 길에 열린 차창으로 흘러들어 오는 소금기 밴 바람. 겨울임에도 건조하지 않은 습도와 아리지 않은 기온까지. 비로소 집에 왔다고 느끼는 순간이다. 서울에 살며 한동안 집이란 물질적인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진정한 집이란 이렇게 여러 겹의 이미지와 감각이 레이어처럼 겹쳐져 만들어지는 하나하나의 장면이다.

제주에 오면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은 학창시절 여름의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이호 해변이다. 예전 친구들과 나는 학교가 끝나면 교복을 입고 약속 없이도 이호 해변에 모였다.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을 피해서 포구 주변으로. 그리고 도착하는 족족 가방을 젖은 바닥에 던져두고 포구 바다로 뛰어든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구명조끼도 없이 멀리 선착장에 묶여 있는 배를 터치하고 돌아오는 사람이 그날의 승자였다.

나는 정식으로 수영을 배운 적 없다. 그렇게 여름마다 포구 수영을 했음에도 사고 한 번 일어나지 않았던 건, 친구들을 보며 나 역시 수영을 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바다로 뛰어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바다에서 태어난 우리는 당연히 바다에서 수영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이제는 물이 탁해진 이호 해변을 보면, 제일 뒤에서 뒤처진 채 아이들의 둥근 수박 같은 뒤통수가 좁혀지지 않는 간격으로 멀어지는 것을 보던 그날의 풍경이 떠오른다. 그래서 그리운 시간은 전부 둥근 뒤통수를 닮았다고 생각한다.

해가 지면 주변에서 낚시하던 아저씨들이 즉석에서 잡어나 한치를 회 떠서 초장에 찍어주시던 걸 받아먹던 게 참 재밌었다. 바다 비린내를 입에 가득 머금고 홀딱 젖은 얼굴로 웃던 친구들의 얼굴. 그런 기억들 속에 여전히 나의 고향이 있어서 언제나 바다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을 갖고 사는 거 아닐까 싶다.

/연우·2026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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