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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사막
붉은사막
[리뷰] 인내의 끝에서 마주한 묵직한 카타르시스, '붉은사막'

2026.03.19 07:04

참 오래 걸렸다. 무려 7년. 7년을 깎고 다듬은 끝에 펄어비스의 야심작 <붉은사막>이 세상에 나올 채비를 마쳤다.

전 세계 게이머들의 기대가 엄청나다. 스팀에서는 쟁쟁한 작품들을 모두 제치고 예약 구매만으로 전세계 판매 순위 2위를 차지했다. 그도 그럴 것이 트레일러를 통해 공개되는 게임 속 장면들이 게이머들, 특히 오픈 월드 어드벤처 게임 팬들의 가슴을 떨리게 만들기에 충분치 않았던가.

출시를 앞두고 미리 수십 시간 동안 파이웰 대륙을 직접 누비며 확인한 <붉은사막>은 그동안 쌓여온 엄청난 기대감에 충분히 상응할 만한 결과물이었다. 한국 게임 역사상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압도적인 스케일과 편의성과 타협하지 않고 깎아낸 치밀한 현실감은 7년이라는 기나긴 개발 기간을 스스로 증명해 내고 있었다.

과연 소문 무성한 <붉은사막>은 유저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경험을 선사하는 게임일까. 정식 출시를 고대하며 이 거대한 세계로의 첫발을 준비하고 있을 게이머들을 위해, 호평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이 낯설고도 경이로운 대륙에 직접 부딪히며 체감한 솔직한 소감을 전하고자 한다.






붉은사막 (Crimson Desert)




출시일: 2026-03-20

개발사: 펄어비스

유통사: 펄어비스

출시 플랫폼: PC, PlayStation, Xbox

장르: 오픈 월드 액션 어드벤처

리뷰 플랫폼: PC

리뷰 버전: 사전 리뷰 버전





# 파이웰, 길고 멀리 봐야 비로소 마주하는 세계



오픈 월드의 규모와 디테일에 있어서 <붉은사막>은 그동안 전 세계 게이머들이 기대했던 바를 충분히 충족시키고도 남는다.

게임의 무대가 되는 '파이웰' 대륙은 그저 물리적으로 넓기만 한 것이 아니다. 에르난드, 데메니스, 페일룬, 델레시아 등 여러 개의 거대한 지역으로 쪼개져 있으며, 각 지역은 저마다 완전히 다른 기후와 풍경, 그리고 고유한 분위기를 품고 있다.

대륙의 규모가 기존에 우리가 즐겨왔던 오픈 월드 게임들의 몇 배에 달한다는 사실은 이미 출시 전부터 충분히 알려진 바 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한 파이웰 대륙은 수치적인 크기를 넘어선다. 시야에 닿는 모든 거대한 땅과 산맥이 플레이어가 직접 발을 디디고 탐험할 수 있는 유의미한 공간이며, 이 드넓은 세계는 그저 빈 공간으로 방치되지 않고 수백 개의 영지와 세력, 그리고 각양각색의 생명체들로 빽빽하게 채워져 있다.


▶ 눈 덮인 설산부터


▶ 광활한 갈대밭


▶ 대나무 숲에 자리잡은 서낭당 등 발 딛는 곳마다 풍경과 분위기가 다르다.

이처럼 방대한 오픈 월드를 구현하면서도 최적화 수준은 기대 이상이다. 리뷰 테스트 환경인 RTX 3060ti 기반의 PC에서 그래픽 옵션을 '높음' 등급으로 설정했을 때, 프레임 드랍 없이 안정적인 60프레임을 유지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깊었던 부분은 세계를 구성하는 인물들의 묘사다. 트롤이나 고블린 같은 판타지 세계관 특유의 가공 종족들이 등장한다는 점만 제외하면, 성곽 안팎이나 영지 거리에서 마주치는 평범한 사람들의 복장과 행동 양식은 실제 중세 유럽의 한복판을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정교하다. 여기에 게임 내에서 오가는 모든 대화에 풀 더빙까지 더해져 있어, 지나가는 NPC들의 대화만 듣고 있어도 이 세계가 생동감 있게 살아 숨 쉬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 게임 속 인물들의 복장이나 행동 양식은 중세 유럽의 느낌을 정말 잘 살린 편.

이 생동감 넘치는 세계 안에서 플레이어가 누릴 수 있는 높은 자유도 역시 놀랍다. "이게 되네?" 싶은 상호작용이 곳곳에 구현되어 있어, 플레이어는 선인과 악인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다. 예컨대 복면을 쓰고 영지 주민들의 물건을 훔치거나, 심지어 NPC를 살해하는 극단적인 악행도 가능하다. 훔친 물건을 비싼 값에 매입하는 장물아비가 버젓이 존재할 정도로 관련 시스템이 구체적이다.

물론 악행에는 그에 상응하는 대가가 따른다. 범죄가 발각되면 벌금이 누적되고 현상수배가 내려져 해당 지역의 경비병들과 쫓고 쫓기는 전투를 치러야 하는 등, 행동에 따른 인과관계도 명확하게 구현되어 있다.


▶ 도적을 처치해 복면을 얻으면 물건을 훔친다거나, 마을 사람을 살해하는 등의 범죄가 가능해진다.


▶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 빨리 그 곳을 벗어나지 않으면 범죄가 발각되어 벌금을 문다. 악행이 쌓이면 체포 대상이 된다.

본격적으로 콘텐츠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게임 전체를 이끌어가는 메인 스토리 라인을 제외하더라도, 대륙 구석구석에는 플레이어를 기다리고 있는 수많은 즐길 거리가 숨겨져 있다. 쉽게 찾을 수 있는 투전이나 가위바위보 같은 가벼운 미니 게임의 종류만 무려 15가지에 달한다.

필드의 생태계 역시 치밀하게 구현되어 있어, 지역의 식생에 따라 각기 다른 생명체들을 사냥하거나 채집할 수 있다. 벌목 도끼나 곡괭이를 들고 직접 나무를 자르고 광석을 채굴하는 것도 당연히 가능하다. 이렇게 땀 흘려 얻은 다양한 재료들은 요리와 연금술 같은 생활 콘텐츠에 활용된다.

이 같은 생활 콘텐츠는 단순히 구색만 맞춘 것이 아니라, 채집한 재료들을 이리저리 조합해 음식, 비약, 염색약 등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대단히 사실적으로 구현되어 있다. 심지어 이런 생활 콘텐츠에 필요한 레시피들은 필드 전역에 꽁꽁 숨겨져 있으며, 그 종류도 놀라울 만큼 다양해 온갖 레시피를 직접 실험해 보고 만들어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 게임 내 도박인 투전 중 속임수를 쓰다 걸리면 손목이 날아간다.


▶ 요리나 연금술 같은 생활 콘텐츠의 레시피와 이를 위한 재료도 굉장히 사실적으로 구현되어 있다.

성장을 위한 탐험과 퍼즐 요소 역시 방대하다. 지도를 열어 물음표로 표시된 미지의 구역을 찾아가면, 순간이동이 가능한 '어비스 흔적'과 온갖 퍼즐 기믹들이 플레이어를 기다린다. 특히 퍼즐의 경우, 캐릭터의 스킬 레벨을 올리는 데 사용되는 '어비스 아티팩트'를 얻을 수 있어 꾸준히 챙겨야 하는 핵심 요소다.

탐험의 무대는 땅 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시선을 위로 돌려 하늘 위에 떠 있는 '어비스' 구역에 진입해도 다채로운 퍼즐들이 숨겨져 있으며, 이 역시 게임을 진행하기 위해서 필수적으로 클리어해야 한다. 이 외에도 각 지역의 NPC나 세력들이 끊임없이 맡기는 의뢰들, 그리고 나만의 공간을 입맛대로 자유롭게 꾸밀 수 있는 하우징 시스템까지 존재해 경험할 수 있는 콘텐츠는 무궁무진하다고 말할 수 있겠다.


▶ 모험 도중 찾을 수 있는 퍼즐


▶ 몇 번을 재도전하고 고민해봤지만 풀지 못한 퍼즐도 있다.

다만, 이 거대한 볼륨을 소화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이 있다. 바로 이 게임이 요구하는 '호흡'이다. <붉은사막>에 준비된 각각의 콘텐츠는 결코 빠르고 가볍게 소비되지 않으며, 하나하나 제법 긴 시간을 요구한다.

단순히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데만 해도 적지 않은 시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앞서 언급한 채집이나 생활 콘텐츠 역시 과정을 생략하지 않고 굉장히 느릿느릿하고 사실적인 템포로 진행된다. 맵 곳곳에 배치된 퍼즐을 푸는 과정 역시 마찬가지다. 때문에 게임 전반의 호흡이 대단히 길고 느린 편이며, 이 방대한 세계가 제공하는 생활과 탐험을 온전히 누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플레이 타임은 길어질 수밖에 없다.

특유의 무거운 템포 탓에 게임을 시작하고 첫 4~5시간은 사실상 시스템을 학습하는 튜토리얼에 가깝게 느껴지며, 이 짧은 시간만으로는 게임이 지닌 진정한 깊이를 파악하기에 턱없이 부족하다. 나아가 워낙 방대한 콘텐츠 분량과 긴 호흡이 맞물리다 보니, 1회차 플레이만으로는 파이웰 대륙이 품은 즐길 거리의 극히 일부분밖에 경험하지 못할 정도다.


▶ 게임을 몇 십시간을 했는데 전체 도감 중 겨우 이 정도밖에 채우지 못했다. 그 정도로 콘텐츠의 분량이 엄청나다.

# 경이로운 세계, 아쉬운 주인공 서사의 여백



이처럼 기나긴 호흡을 기꺼이 내어줄 만큼, 파이웰 대륙은 분명 경이롭다. 하지만 이토록 훌륭하고 압도적인 무대를 마련해 두고도, 정작 그 기나긴 여정을 이끌어갈 내러티브의 전달 방식이 다소 불친절하다는 점은 못내 아쉬움을 남긴다.

<붉은사막>의 막이 오르면, 무수한 복셀(Voxel) 틈으로 보이는 빛을 뚫고 나온 시선은 한 남자의 묵묵한 걸음 뒤에 내려앉는다. 울창한 숲속 오두막에서 걸음을 멈춘 주인공, '클리프'다.

그는 '회색갈기' 용병단의 일원으로, '술 취한 검은곰' 세력과의 기나긴 혈투 끝에 수장 '묘르딘'에게 깊은 상처를 입고 심연으로 추락한다. 죽음의 문턱에서 기계와 구조물이 얽힌 미지의 세계 '어비스'를 통과해, 에르난드 영지의 이름 모를 물가에서 간신히 숨을 틔운다. 자신을 구해준 지도장이를 따라 에르난드 성으로 향하며, 클리프의 기나긴 여정은 비로소 시작된다.

이후 클리프는 에르난드 주민들의 크고 작은 부탁을 묵묵히 들어준다. 하지만 플레이어 입장에서 그 선행의 동기가 초반부터 명확하게 와닿지는 않는다. 정작 이 거대한 세계에 발을 내디딘 클리프가 어떤 내면을 가진 인물인지, 왜 낯선 이들을 위해 묵묵히 검을 쥐는지 게임은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훗날 그가 위대한 선군 '지안'의 뜻을 따른다는 사실이 드러나긴 하나, 방대한 초반부 탐험을 이끌어갈 강력한 동기 부여로는 다소 늦고 헐거운 편이다.


▶ 게임이 시작되면 플레이어는 클리프의 시선을 따라 이야기를 진행하게 된다.


▶ 묵묵히 사람들을 돕는 클리프. 그런데 정작, 그가 왜 사람을 돕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어서 아쉽다.

물론 플레이어 스스로 넓은 세계를 부딪치며 파악하라는 개발진의 의도로 읽히지만, 서사의 중심을 잡아야 할 주인공의 감정선이 가려져 있다 보니 초반부 몰입감을 다소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고 만다.

이러한 전개 방식은 적대 세력과의 갈등 구조에서도 아쉬움을 남긴다. 영지를 빼앗고 지안을 죽인 검은 곰과의 대립은 복수라는 명백한 동기가 있지만, 그 외의 적들과는 왜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지 맥락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는다.

5장의 대미를 장식하는 보스 '까마귀를 부르는 자'가 대표적이다. 그는 클리프가 어머니의 관심을 빼앗았다는 이유로 맹렬한 적개심을 드러내지만, 정작 플레이어와 칼을 맞대는 시점에서는 그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클리프가 왜 총애를 받았는지 구체적인 이야기가 드러나지 않는다. 서사의 퍼즐 조각이 너무 늦게 맞춰지다 보니, 적들의 분노에 온전히 공감하기가 어려워진다.


▶ 자신의 어머니가 그를 총애한다는 이유로 클리프를 공격하는 '까마귀를 부르는 자'. 이때까지 그의 어머니가 누군지, 왜 클리프를 총애하는지 알지 못한다.

흥미로운 점은, 다소 여백이 많은 메인 스토리의 빈자리를 훌륭하게 채워주는 것이 주변 조연들이라는 것이다. 여정 도중 마을에서 마주치는 상인들부터 '얀', '나이라', '드웨인', '앤드류' 같은 회색갈기 동료들까지, 이들이 품고 있는 소소한 이야기들은 제법 생동감이 넘친다.

다소 전형적일지라도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이들과 교류하다 보면 자연스레 유대감이 싹튼다. 특히 회색갈기단이 힘을 합쳐 적과 맞서는 장면에선 절로 이들을 응원하게 될 만큼 깊은 감정적 동화를 선사한다.

파이웰 대륙의 조연들은 이토록 살아 숨 쉬는 이야기들로 가득한데, 정작 세계를 짊어진 주인공의 서사가 다소 평면적이고 은유적으로 전개된다는 점은 못내 아쉽다. 방대한 세계를 훌륭하게 구현해 낸 만큼, 플레이어가 클리프라는 인물에 처음부터 더 깊이 공감하며 여정을 시작할 수 있도록 서사의 친절함을 조금만 더 더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진한 여운이 맴도는 대목이다.


▶ 동료들을 위해 야심차게 마차를 훔쳐온 얀.


▶ 그런데 술김에 들었던 정보가 틀렸는지 순 허탕이다. 이런 일화들 덕분에 클리프 주변 인물들의 성격이 드러나고, 자연스럽게 유대감이 쌓인다.

# 낯설다, 그래서 더 신선하다



<붉은사막>의 조작법은 빠르고 가벼운 캐주얼 액션의 문법을 과감히 탈피해, 묵직한 리얼리즘을 지향한다. 달리기와 막기, 앉기 같은 기본 동작 위에 맨손 격투, '집중타', '섭리의 힘' 등 고유의 시스템이 더해져 플레이어가 활용할 수 있는 액션의 선택지가 대단히 넓다.

특히 캐릭터의 모든 움직임에는 현실적인 관성과 무게감이 생생하게 실려있다. 버튼을 누르는 즉시 종잇장처럼 반응하는 가벼움 대신, 동작 하나하나에 무게감이 실려있다. 덕분에 처음에는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듯한 낯섦을 느낄 수 있지만, 이 묵직함은 곧 <붉은사막> 특유의 사실적인 타격감을 완성하는 훌륭한 뼈대가 된다.

편의성과 UI 디자인 역시 '게임적 허용'보다는 리얼리즘을 극대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여타 게임들처럼 키보드 단축키 하나로 인벤토리를 열어젖히고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모든 장비 세팅이 끝나는 마법 같은 편의성은 제공하지 않는다. 장비를 교체할 때도 퀵슬롯을 열어 양손을 지정해야 하고, '비지오네' 같은 도구도 직접 손에 쥐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심지어 다 읽은 문서는 직접 버려야 하고, 적에게서 얻은 은화 주머니는 일일이 끈을 풀어야 내용물을 확인할 수 있다.


▶ 이를테면 지식의 투구를 장착할 때는 F3을 눌러 퀵슬롯을 연 뒤, 장비 슬롯에서 지식의 투구를 선택해 직접 장착시켜야 한다.

현대 게임의 빠르고 직관적인 편의성과 비교하면, <붉은사막>의 조작과 UI는 분명 가파른 진입 장벽이다. 하지만 이는 단순한 편의성 부족이라기보다, 세계의 현실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편의성을 일부 덜어낸 개발진의 의도적인 선택으로 읽힌다.

다행히 게임은 이 방대한 정보량과 낯선 조작감을 초반부터 무리하게 강요하지 않는다. 시스템이 단계별로 천천히 해금되는 구조를 취하고 있어, 플레이어가 이 무거운 문법에 자연스럽게 적응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제공한다.

그리고 마침내 조작이 온전히 손에 익고 나면, 앞서 느꼈던 낯섦은 이내 전에 없던 강력한 몰입감으로 거듭난다. 마을 게시판에 붙은 벽보를 직접 뜯어내어 의뢰인을 찾아 나서는 과정, 도구를 꽉 쥐고 땀 흘려 광석을 내리치는 행위 하나하나가 단순한 버튼 '딸깍' 누르기가 아닌 파이웰 대륙에 실재하는 듯한 생동감으로 다가온다. 비록 그 궤도에 오르기까지 약간의 적응 시간은 필요하겠지만, 그 인내의 끝에서 맛볼 수 있는 <붉은사막>만의 기분 좋은 신선함은 충분히 매력적인 보상이다.




▶ 의뢰를 받기 위해선 일일이 마을 게시판에서 벽보를 찾고 직접 읽어야 한다.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지지만, 이런 디테일들이 사실감과 생동감을 느끼게 한다.

# '액션 명가'의 고집으로 녹여낸 사실적인 전투



낯설고 묵직한 조작감에 적응한 플레이어를 기다리는 것은 <붉은사막>의 진면목, 바로 '전투'다. '액션 명가' 펄어비스가 긴 시간 벼려낸 전투의 근간 자체는 의심할 여지 없이 날카롭고 매력적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게임 내 양손검 공격 모션이다. 기존 게임, 특히 판타지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크고 화려한 동작 대신, 중세 검술을 고증한 듯 절도 있고 매끄러운 양손검 모션이 사실적으로 구현됐다. 특히 맨손 격투 동작에선 마샬 아츠에 대한 개발진의 고집이 느껴질 정도다. 원투 펀치에 플라잉 니킥은 물론, 드롭킥이나 RKO 같은 프로레슬링 기술까지 리얼하게 구현되어 있다.

이 같은 정교하면서도 강렬한 액션이 빛을 발하는 구간은 다름 아닌 필드에서의 일대다 전투다. 약공격과 강공격, 원거리 공격, 맨손 격투, 집중타 등 다채로운 기술을 한데 엮어 만드는 콤보의 손맛이 훌륭하다. 무엇보다 들고 있는 무기에 따라 달라지는 다양한 처형 액션이 주는 쾌감이 무척이나 강렬하게 다가왔다.

특정 세력의 거점을 점령할 때는 미니맵을 빽빽하게 채운 수백 명의 적과 맞붙는 대규모 전투가 펼쳐진다. 조금의 과장 없이, 수 백명 가까이 되는 적들을 상대로 혈혈단신으로 맞서는 육탄전이 주는 느낌은 무쌍류 게임과 비슷해 보이지만 사실 전혀 다르다. 잘 막고 잘 때리는, 심지어 강력한 필살기까지 숨기고 있는 적들과의 전투가 집요하게 이어진다.


▶ 화면이 잠깐 흑백으로 전환되는 연출로 표현된 처형 액션. 무기별로 모션이 제각각이다.


▶ 미니맵을 빽빽하게 채운 적들과 혈혈단신으로 맞서야 하는 상황.

다만, 개인적으로 게임 곳곳에서 진행되는 보스와의 전투는 상당히 까다롭게 느껴졌다. 기존 게임과는 사뭇 다른 락온 시스템 때문에 시점이 계속 움직여 보스를 쫓아가기가 힘들었다. 보스들의 패턴도 딜타임이 여유롭지 않아 인내심을 갖고 전투에 임해야 했다.

요컨대 <붉은사막>의 전투는 사실적인 타격감과 하드코어한 난이도가 공존하는 영역이다. 다루기 까다로운 카메라 시점과 난이도 높은 보스전, 높은 피로도의 필드 전투 등은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허들이다. 하지만 이 모든 치열한 과정을 기꺼이 감내한 유저에게 주어지는 성취감만큼은 뚜렷하다. 개발진이 심혈을 기울여 구축한 시스템인 만큼, 출시 이후 지속적인 밸런스 조정과 편의성 개선이 이루어진다면 지금보다 훨씬 정돈된 액션 경험을 선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 딜레이가 큰 패턴이길래 다가가서 공격했더니 무적 판정이었다...

# <붉은사막>이 남긴 유의미한 이정표



결론적으로 <붉은사막>은 시작부터 플레이어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는 친절한 게임은 아니다.

냉정하게 평가하자면, 이 게임은 완벽과는 거리가 있다.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의 서사는 평면적이라 몰입의 턱이 높고, 리얼리즘을 표방한 특유의 조작법은 익숙해지기까지 제법 긴 시간을 요구한다. 여기에 지나치게 길고 무거운 호흡은 때로 플레이어를 지치게 만드는 요소로 작용하기도 한다. 이러한 불친절함과 피로도는 대중적인 재미를 기대한 이들에게는 분명 무시할 수 없는 진입 장벽이다.

하지만 이러한 단점들에도 불구하고 <붉은사막>이 보여준 성취는 독보적이다. 이 거대하고 복잡한 세계를 오롯이 자체 엔진과 기술력만으로 구현해 냈다는 점은 한국 게임 시장에서 전례를 찾아보기 힘든 성과다. 대중적이고 안전한 흥행 공식을 따르기보다, 자신들만의 고집스러운 방향성을 끝까지 밀어붙인 펄어비스의 시도는 그 자체로 유의미한 이정표를 남겼다. 낯설고 거친 도전을 통해 한국형 오픈 월드의 새로운 가능성을 증명해 냈다는 점만으로도 이 게임의 가치는 충분하다.

무엇보다 게임이 현재의 폼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점은 긍정적인 대목이다. 기자가 리뷰를 위해 게임을 플레이하는 동안에도 크고 작은 시스템 업데이트가 이어졌으며, 오는 20일 정식 출시에 맞춰 대규모 데이원 패치 또한 예고되어 있다. 향후 유저들의 피드백이 누적됨에 따라 단점으로 지적된 부분들이 개선될 여지는 충분히 열려 있다.

결국 <붉은사막>은 플레이어의 인내심과 취향을 뚜렷하게 타는 작품이다. 초반의 불친절함과 무거운 호흡을 견뎌낼 수만 있다면, 펄어비스가 정교하게 빚어낸 이 거칠고 낯선 대륙은 충분히 시간을 투자해 탐험해 볼 가치가 있는 흥미로운 무대가 되어줄 것이다.

다만 모두가 같은 재미를 즐기는 무대가 되진 않을 것이다. 굳이 비교하자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도파민 팍팍 터지는 대중적인 오락성보다는 감독의 시각과 철학을 구현하면서 예술적 가치를 표현하는데 집중하는 프랑스 영화에 오락성을 가미한 유로 스타일의 영화의 차이점이다. 즉 <붉은사막>은 <매드맥스>라기 보다는 <레옹>에 가깝다.






붉은사막 (Crimson Desert)






9.0 / 10




한줄평


"'첫맛은 쓰지만 곱씹을수록 깊게 우러나는, 펄어비스의 한상 차림"




Good


+ 디테일이 살아 숨 쉬는 방대한 오픈 월드와 기대 이상의 최적화

+ 원하는 대로 경험할 수 있는 높은 자유도

+ 사실적이고 강렬한 전투 액션





Bad


- 몰입과 동기 부여가 다소 늦고 평면적으로 전개되는 주인공의 서사

- 적응하는 데 긴 시간이 필요한 낯선 조작감

- 불편한 락온 시스템과 딜타임이 빡빡한 까다로운 보스전






메타크리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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