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통해 영화의 역할을 말하는 방법, '센티멘탈 밸류'
2026.03.14 07:00
"누구에게인진 모르겠지만 소리를 내서 말했어요. 도와주세요. 더 이상 못 하겠어요. 혼자서는 못해요. 나에겐 집이 필요해요." 영화감독인 아빠 구스타프(스텔란 스카스가드)가 쓴 이 대사는 딸 노라(레나테 레인스베)의 마음을 처음으로 관통한다. 계속해 엇나가기만 하던 둘 사이에 소통이 이뤄진 순간이자, 주인공이 되어달라는 아빠의 출연 제안을 한사코 거절하던 노라가 영화에 함께하기로 마음 먹은 순간이다.
사실 구스타프는 처음부터 연극배우인 노라를 위해 이 시나리오를 썼다. 오래 전 이혼 후 집을 떠났던 구스타프는 아내가 죽은 후 추모식에 등장한다. 어린 시절 갑자기 떠나버린 아빠에 대한 상처가 컸던 노라에게 구스타프는 대뜸 "널 위해 쓴 거야"라며 영화 대본을 건넨다. '아빠와 같이 일할 수 없다'며 대본을 읽지도 않고 떠나지만, 동생 아그네스(잉가 입스도테르 릴레오스)의 노력으로 시나리오를 읽게 된 노라는 결국 눈물을 보인다.
이렇듯 영화 '센티멘탈 밸류'는 영화, 즉 예술이라는 매개체로 흘러간다. 50주년 회고전을 열 만큼 거장 감독인 구스타프는 정작 가족과의 소통에 있어서는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 그에게 영화란 삶의 전부이자 소통의 도구다. 어린 아그네스를 본인 영화에 출연시킨 경험은 '최고의 순간'이었고, 아그네스의 아들인 손자 에리크 또한 노라와 함께 영화에 출연시킨다. 에리크에겐 옛날 DVD를 선물하며 세상을 이해하게 될 거라 말한다.
노라가 연극만을 고집해 온 점도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회피하고자 하는 내면을 보여준다. 노라는 "다른 사람이 돼 감정을 느끼면 내 감정도 느낄 수 있다"며 연극이 좋다고 말하지만, 막상 무대에 서기 직전엔 과도한 불안에 휩싸인다. 꽉 쪼인 의상을 제 손으로 찢기도 하고, 귀 옆에 걸린 마이크를 느슨하게 해달라고 반복해 요청한다. 본래 직접 쓴 에세이로 배우 오디션을 보려고 했던 노라가 흔하고도 유명한 작품 '갈매기'를 고르며 타인의 이야기로 배우 생활을 시작한 것도 이와 맞닿아있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아빠의 영화에 출연하며 비로소 '내 이야기'로 돌아오게 된 노라의 얼굴은 훨씬 편안해 보인다.
영화 속 인물들의 삶은 서로 중첩돼 있다. 영화 중반부 구스타프, 노라, 아그네스의 얼굴을 번갈아서 보여주는 초현실적인 장면은 감독이 이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인물에 이입한 관객들이 영화를 통해 타인의 삶, 곧 자신의 삶을 경험해 볼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하기도 한다. 영화라는 도구로 영화의 역할을 말하고 실현하는 작품. '센티멘탈 밸류'을 통해 누구든 스스로 삶의 '센티멘탈 밸류'(Sentimental Value, 감정적 가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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