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전
"우리 팀에 인간은 CTO뿐"…AI로 월급 두 배 버는 사람들[AI생존기①]
2026.03.16 06:01
작곡 도전하는 직장인
AI 크리에이터로 나선 사람들
"진짜 전문가만 살아남는다"[커버스토리 : AI 생존기①, 챗GPT와 제미나이만 쓰는 당신에게]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사찰 약수암의 주지스님은 매일 새벽 목탁 대신 노트북 앞에 앉는다. 이 스님의 또 다른 직함은 AI 사주 앱 ‘사주핑’을 만든 이윤섭 대표다.
15세 때 출가한 그는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며 창업을 결심했다. 첫 창업은 미국 대학생들의 정신건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멘탈헬스 스타트업이었다. 불교의 ‘이판사판(理判事判)’ 중 사찰의 재정관리와 행정, 대외 업무 등 실무를 담당하는 ‘사판승(事判僧)’의 길을 택한 것이다.
불자이자 IT 전공자답게 ‘현대인의 불안’을 사주풀이로 연계했고 아이디어 단계부터 실행까지 전부 AI를 활용했다.
한국인이 병원보다 철학관에서 더 많은 고민과 불안을 쏟아낸다는 것을 파악했고 챗GPT나 제미나이 등 생성형 AI 이용자들은 이미 AI를 ‘심리상담 및 감정적 동반자’로 가장 많이 활용(필터드닷컴 보고서)하고 있었다.
이 대표는 “생성형 AI는 성공 기준이 사용자 만족이다 보니 이용자가 듣고 싶어 하는 방향으로 답을 맞추는 ‘아부성 응답’ 문제가 있다”며 “하지만 사주 해석은 좋고 나쁨이 비교적 명확하기 때문에 오히려 일정한 객관성과 기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한계는 시간 맥락이었다. 그는 “기존 범용 AI는 ‘오늘’, ‘내년’, ‘3년 뒤’ 같은 표현을 계산하거나 이해할 수는 있지만, 이를 하나의 흐름으로 연결해 개인의 삶의 맥락 속에서 해석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지시·총괄 가능한
“C레벨만 살아남는다”
“C레벨만 살아남는다”
이 대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답변 시 다양한 AI를 거치게 설계했다. 여러 생성형 AI를 하나의 팀처럼 묶어 쓰는 ‘AI 오케스트레이션(군집)’ 구조다.
우선 AI가 만세력과 사주의 기본 구조를 학습했다. 이용자가 질문을 요청하면 먼저 구글의 제미나이가 답변 초안을 만든다. 문장을 자연스럽게 풀어내는 데 강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후 앤트로픽의 클로드가 내용을 다시 검토한다. 맥락과 논리 구조를 꼼꼼히 따지는 역할이다. 날짜 계산은 챗GPT가 맡는다. 서로 다른 AI가 창과 방패처럼 교차 검증하는 구조다.
앱 개발과 운영 역시 AI로 자동화했다. 사주핑은 최고기술개발자(CTO)를 제외한 개발팀 전원을 AI로 대체했다. AI가 코드를 짜고, 버그를 확인하고, 코드를 수정한다.
과장급인 상위버전 AI는 코드리뷰를 통해 문제 해결을 최적화할 수 있는 각 에이전트에게 업무를 분담시킨다. 유일한 인간인 CTO는 최종 승인과 총괄에만 관여한다.
그는 “3년 전만 해도 창업을 하려면 1명의 기획자에 4명의 개발자가 붙어야지만 지금은 4명의 기획자에 1명의 개발자가 필요한 구조”라며 “기술이 발전할수록 각 분야의 진짜 전문가인 ‘C레벨급’만 남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실리콘밸리 "야근 사라졌다"
AI에이전트 간 협업하는 시대
AI에이전트 간 협업하는 시대
빅테크 시장에서도 사주핑의 사례처럼 각기 다른 전문성을 가진 여러 AI 에이전트 간의 소통과 협업이 새로운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메타는 지난해 12월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AI 에이전트 스타트업 ‘마누스(Manus)’를 20억 달러(약 2조9000억원) 이상에 인수했다. 마누스는 시장조사, 코딩, 데이터 분석, 앱 개발, 웹사이트 제작 등 복잡한 업무를 사람의 개입 없이 스스로 실행하는 범용 AI 에이전트다.
이어 최근에는 ‘AI 전용 소셜미디어’인 몰트북을 인수했다. 몰트북은 AI끼리 대화하고 토론하는 커뮤니티로 인간은 이 공간에 글을 올릴 수 없다. 몰트북 내에서 AI는 서로 코딩 오류 수정 방법이나 암호화폐 투자 전략, 최신 뉴스를 나누고 철학적 논쟁을 펼치기도 하며 상호작용한다.
실리콘밸리에서는 AI가 개발자를 대체하면서 ‘야근이 사라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AI가 개발 과정을 대신하면서 인력 구조조정에 나서는 테크 기업도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테크기업 구조조정 현황 실시간 집계 사이트 ‘레이오프스닷에프와이아이’에 따르면 올해 들어 전 세계 59개 기술 기업이 총 3만 7045명의 직원을 해고했다. 약 두 달 반 동안 매일 500명이 구조조정 대상이 된 셈이다.
올 들어 해고를 단행한 주요 기업을 보면 아마존(해고자 1만6000명), 메타(1500명), 디자인 및 설계 소프트웨어 기업 오토데스크(1000명), 통신장비서비스 기업 에릭슨(1600명), 이미지 공유 플랫폼 기업 핀터레스트(700명) 등이다.
특히 앤트로픽이 선보인 AI 도구인 ‘클로드 코워크’가 테크 기업의 구조조정을 본격화하는 신호탄이 됐다. 클로드 코워크는 개발자나 전문가가 아니라도 코딩과 법률, 금융 분석 등의 ‘지식노동’을 할 수 있도록 분야별 특화 기능(플러그인)을 제공한다.
AI가 단순히 업무를 돕는 수준을 넘어 데이터를 활용하고 새로운 전문 지식을 산출할 수 있는 영역까지 진화한 것이다.
프롬프트 한 줄로 음원 발매
평범한 직장인들도 AI를 활용한 수익화에 도전하고 있다. 대기업 AI 연구원인 라일라오(Lyra.O, 아티스트 명) 씨는 두 달 동안 노래 9곡을 발매한 아티스트다. 낮에는 직장인으로 일하고 퇴근 후에는 AI 작곡 앱인 수노(Suno)를 통해 노래를 만들어 유튜브와 스포티파이 등 글로벌 스트리밍플랫폼에 발매한다.
기업에서 그의 직무는 AI를 활용한 검증 자동화 및 생산성 향상이다. 라일라오 씨는 “감정을 기록하고 표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작곡이 가장 매력적이었다”고 말했다.
악보를 볼 줄 모르거나 화성학을 전공하지 않아도 작곡이 가능하다. 수노에 프롬프트 몇 줄만 입력하면 원하는 스타일의 노래가 뚝딱 완성된다. 장르, 보컬의 스타일이나 질감, BPM까지 명확하게 적을수록 원하는 노래가 나올 가능성이 높다. 심지어 허밍을 불러서 올리면 수노가 그 선율을 곡으로 만들어주기도 한다.
그는 “가사나 프롬프트는 챗GPT와 제미나이와 함께 다듬고 음악은 수노가 만들고 유통은 디스트로키즈라는 플랫폼이 알아서 한다”며 “예전에는 가이드 보컬을 따로 부르는 사람, 편곡자, 레코딩 엔지니어가 다 필요했지만 지금은 전문 영역이었던 중간 단계가 전부 사라졌다”고 말했다.
AI 음악이 빠르게 대중화되면서 수노는 지난해 11월 기업가치 24억5000만 달러(약 3조5000억원)를 인정받았다. 연간반복매출(APR)은 3억 달러를 돌파하며 글로벌 음악 산업의 판도를 흔들고 있다. 프롬프트 몇 줄로 음원을 만드는 행위가 개인의 취미를 넘어 수조원대 산업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AI 펫플루언서로 팬덤 형성까지
AI가 강력한 팬덤을 형성하기도 한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알고리즘을 장악한 ‘AI 펫’을 내세워 수익화에 성공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70만 구독자를 보유한 ‘정서불안 김햄찌’나 10만 구독자의 ‘보리와냥이’가 대표적이다. 강아지나 고양이가 사람처럼 행동하는 간단한 게시물인데 조회 수는 수천만 회를 기록한다.
그 파급력은 단순한 재미를 넘어 비즈니스로 직결된다. 대기업 광고는 물론 정부 부처의 캠페인 협업 요청까지 줄을 이으며 ‘AI 펫플루언서’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 중이다.
‘보리와냥이’ 채널을 운영하는 굿모먼트 이소라 대표는 최근 8년간 근무한 회사에 사표를 던졌다. AI펫 콘텐츠 사업을 본격화한 지 3개월 차, 직장인 시절 월급의 두 배를 벌어들이고 있다.
그가 AI 콘텐츠에 뛰어든 이유는 ‘생존’에 대한 절박함 때문이었다. 직장은 울타리가 아니라 정거장일 뿐이라는 위기감에 300만원을 들여 부동산 경매 강의도 들었지만 2억원이 넘는 자본금이라는 벽에 부딪혔다. 그때 그녀가 발견한 것이 바로 AI 콘텐츠를 활용한 ‘온라인 월세’ 세팅이었다. 이 대표는 “AI 콘텐츠 제작은 많이 써봐야 비용이 10만원”이라며 “망해도 리스크가 없다는 게 가장 큰 매력”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AI 쇼크’로 일자리 공포를 느끼는 이들에게 “지금이 외려 AI 콘텐츠 제작하기 가장 좋은 시기”라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콘텐츠 성공의 길은 완벽함보다 ‘빠른 실행’과 꾸준함에 있다고 했다. 이 대표는 “지금은 완성도의 시대가 아니라 속도의 시대”라며 “망설이는 순간 이미 많은 콘텐츠들이 양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프롬프트’ 판매하는 크리에이터도 생겨나
자신의 AI 활용 스킬이나 프롬프트를 나누는 크리에이터들도 급증하고 있다. AI 인사이트 계정 BRIVVY를 운영하고 있는 박건우 대표는 인스타그램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AI를 활용해 생산성을 높이고 비주얼 콘텐츠를 효과적으로 제작하는 방법에 대한 인사이트를 공유하고 있다.
AI를 활용해 누구나 SNS에서 바이럴될 수 있는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도록 돕는 프롬프트 팩을 제작하거나 광고 이미지를 손쉽게 만들 수 있는 프롬프트 템플릿, AI 비주얼 콘텐츠 제작을 지원하는 ‘챗봇’을 제작해 판매한다.
박 대표는 “AI는 혼자서도 여러 역할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게 해주는 실질적인 도구”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의 하루는 자동화로 시작된다. 매일 아침 9시 전 세계 AI 뉴스가 자동으로 정리돼 도착하고 밀린 이메일은 AI가 초안을 쓰고 그가 검토한다.
콘텐츠 기획부터 스크립트 작성, 제품 상세 페이지 제작까지 대부분의 단계에 AI가 들어가 있다.
AI 디자인 크리에이터 계정 ‘시크아’를 운영하는 김혜주 디자이너 역시 최근 1년간 디자인 업계에서 AI 활용도가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그는 “레퍼런스 용도에 그쳤던 AI 이미지 생성이 이제는 초기 콘셉트, 무드보드, 비주얼 시안, 제품이나 모델 촬영 컷까지 실제 작업물에 반영되고 있다”며 “속도와 비용 측면에서는 이미 인간을 압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타이포그래피(폰트), 레이아웃 밸런스, 컬러 톤 조정 같은 디테일 영역은 여전히 사람의 손을 탄다고 설명했다.
김 디자이너는 “누구나 기본 수준의 디자인을 만들 수 있게 됐지만 그 때문에 오히려 디테일의 차이가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며 “단순 작업 위주의 디자이너는 AI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지만 기획부터 문제 정의, 전략 설계까지 할 수 있는 디자이너의 역할은 오히려 더 중요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업종도 직함도 다른 이들의 결론은 하나였다. AI가 전문가의 문턱을 낮출수록 ‘진짜 전문가’를 판별하는 기준은 되레 높아진다는 것이다.
대기업 AI 연구원 라일라오 씨 역시 “AI가 코드를 짜주지만 도메인을 아는 사람만이 정확한 프롬프트를 줄 수 있고 코드 리뷰가 가능하다”며 “수노 역시 음악적 구성을 공부한 사람이 프롬프트를 더 잘 쓸 수 있는 것처럼 AI가 보편화된다고 해서 전문 지식의 가치가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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