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눈도, 낯선 종목도…김윤지의 ‘함박웃음’ 막지 못했다
2026.03.15 19:50
고등학교 시절, 수능을 막 마치고 한국체대 입학을 앞두고 있던 김윤지(20·BDH파라스)는 노르딕스키의 매력을 이렇게 설명했었다. 그로부터 2년 뒤, 그는 전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이탈리아 테세로의 거친 눈밭 위에서 한국 스포츠의 살아있는 전설이 됐다.
김윤지는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겨울패럴림픽에서 온갖 기록을 쏟아냈다. 여자 선수 겨울패럴림픽 첫 금메달의 주인공이 됐고, 단일 대회 첫 2관왕의 주인공도 됐다. 시상대에는 5차례 올랐다. 올림픽, 패럴림픽 통틀어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일이다. 첫 출전 종목(7일)에서만 사격 실수로 메달을 따지 못했고 이후 금, 은, 은, 은, 금을 차례대로 목에 걸었다. 김윤지가 패럴림픽에 처음 출전해 일군 수확이다.
선천적 이분척추증 척수수막류를 안고 태어난 김윤지에게 스포츠는 ‘또 다른 세상’을 만나는 통로였다. 재활을 위해 찾았던 푸르메재단 넥슨어린이재활병원에서 수영을 처음 접한 그는 곧장 두각을 나타냈다. 2024년 전국장애인체전 수영 5관왕에 오르며 최우수선수(MVP)가 됐던 그는 당시 받은 상금 300만원을 자신이 처음 운동을 배웠던 재활병원에 기부하며 ‘깜짝 나눔’을 실천하기도 했다.
“받은 기쁨을 남에게 나눠주고 싶다”던 따뜻한 마음씨를 가진 소녀는 설원 위에 서면 무서운 기세의 사자로 변했다. 수영과 노르딕스키, 여름과 겨울 종목을 오가며 국내 최초로 여름, 겨울 전국장애인체전 신인왕과 MVP를 휩쓴 괴물 같은 재능은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패럴림픽에서 만개했다.
이번 대회 마지막 경기였던 20㎞ 인터벌 스타트는 체력의 한계를 시험하는 무대였다. 김윤지로서도 처음 출전한 종목이었다. 새벽부터 내린 눈비로 설질은 엉망이었지만, 김윤지는 거침없었다. 6㎞ 지점에서 이번 대회 4관왕이자 노르딕스키의 전설로 불리는 옥사나 마스터스(미국)에게 잠시 역전을 허용하기도 했지만, 그는 특유의 ‘질주본능’을 일깨웠다. 9㎞ 지점에서 다시 선두를 탈환한 뒤 마스터스를 1분11초 차로 따돌리며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노래방에서 친구들과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즐겨 부르던 김윤지는 이제 자신이 노래하던 가사처럼 새로운 세상을 직접 일궈냈다. 첫 월급으로 아빠의 휴대폰을 바꿔드리고 엄마에게 옷 선물을 약속했던 속 깊은 딸은, 이제 대한민국 겨울패럴림픽 역대 최고 성적(금 2·은 4·동 1)을 견인한 영웅이 되어 귀국길에 오르게 됐다.
김윤지에게 노르딕스키는 가야 할 길을 알려주는 ‘나침반’이었다. 넘어지면 누구보다 빨리 일어섰고, 내리막의 공포는 아드레날린으로 이겨냈다. 휠체어의 두 바퀴에서 벗어나 설원 위를 활보하는 그의 시선 끝에는 그가 가장 좋아하는 ‘시리도록 파란 하늘’이 있다. 그 파란 하늘을 향해 힘차게 스키 폴을 휘저었고 김윤지는 그 끝에서 누구보다 환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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