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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사회철학 거장 하버마스 96세로 별세

2026.03.15 05:35

독일 사회철학 거장 위르겐 하버마스./조선일보DB

독일의 사회철학 거장 위르겐 하버마스(96)가 14일 별세했다고 독일 dpa통신 등이 보도했다.

독일 출판사 수어캄프는 하버마스가 이날 독일 남동부 바이에른 주의 슈타른베르크에서 눈을 감았다고 밝혔다. 하버마스는 “19세기에 마르크스가 있었다면 20세기에는 하버마스가 있다”고 일컬어질 만큼 현대 서구 지성사에 큰 획을 그은 지식인으로 평가된다.

하버마스는 1960년대 비판이론의 상속자로 명성을 날렸다. 그 뒤 수많은 학문 논쟁을 주도하면서 영미 자유주의, 실용주의, 언어이론을 수용하고 좌파의 경직성을 과감히 탈피하면서 이념·학파·국경을 넘어 ‘살아 있는 고전(古典)’의 지위를 확보했다.


현대 자본주의 시장경제, 복지국가, 패권적 세계주의의 한계를 예리하게 분석하면서 인류의 미래를 소통 이론으로 열고자 노력해왔다. 특히 그의 ‘소통정의’와 ‘소통민주주의’ 개념은 좌우 대립을 넘어 국내·국제정치의 지향점으로 폭넓은 공감을 얻었다.

dpa는 그가 ‘공론장(public sphere)’이라는 개념을 중심으로 민주사회를 조직하는 데 가장 적합한 담론의 형태를 탐구하면서 전후 독일의 지적 분위기를 형성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고 했다.

1929년 6월 독일 뒤셀도르프의 중산층 개신교 가정에서 태어난 그는 취리히, 본 대학 등에서 철학, 심리학, 독일 문학, 경제학 등을 공부했다. 이후 언론인으로 활동하다가 유럽 진보 운동의 ‘사상적 뿌리’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요람 프랑크푸르트사회연구소에서 1950년대부터 본격적인 학문 경력을 쌓았다.

스승 테오도르 아도르노의 비판 이론을 비판적으로 계승한 그는 ‘의사소통 합리성’ ‘생활세계’ 등의 개념을 통해 사회철학을 넘어서 20세기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81년 출간된 대표작 ‘의사소통 행위이론’은 현대 철학의 기념비적인 저작으로 평가된다. 그는 상아탑에만 머물지 않고 수십 년 동안 현실 정치 문제에도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며 독일 사회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한 ‘현실 참여’ 지식인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하버마스의 전기 ‘철학자’(The Philosopher)의 저자 필립 펠슈는 이런 그를 전후 독일 사회를 각성시킨 ‘대중 교육자’와 같은 존재로 평가하기도 했다.

1980년대 독일 일부 역사학자들이 ‘홀로코스트’(나치의 유대인 대학살)가 유럽의 전쟁과 폭력이라는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논란이 일자, 하버마스는 역사적 과오를 직시하고 반성하는 ‘과거사 청산’(Vergangenheitsbewältigung)을 독일 국가 정체성의 핵심으로 삼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독일 사회는 이런 논쟁을 거쳐 과거의 과오를 끊임없이 참회하고 사죄하는 ‘참회 문화’를 내재화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버마스는 독일 사회에 최근 나치에 동조적인 극우 정권의 세력이 급부상하며 참회 문화가 도전받는 것에 대해서도 우려의 시각을 드러낸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자신의 지도 아래 박사 학위를 딴 제자 송두율 독일 뮌스터 대학 교수가 2003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 기소되자 서울지법에 송 교수 석방을 위한 탄원서를 보내기도 했다.

위르겐 하버마스(오른쪽) 프랑크푸르트대학 명예교수가 2013년 11월 23일 독일 슈타른베르크의 자택에서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와 한반도 통일 문제를 주제로 대담을 하고 있다.

하버마스는 2013년 한상진 서울대 명예교수와의 본지 대담에서 “한국인이라면 새로운 아시아의 눈으로 경제적 상호 이익과 민주주의 가치를 향해 미국, 중국, 일본의 협력을 중재하는 역할을 하고 싶을 것”이라며 “강국들 사이에 끼어 있는 한국은 어려움과 함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한국에 대해 “지식정보 혁명과 함께 새로운 미디어가 이끄는 역동적 시민사회가 형성돼 있다”고 평가한 하버마스는 “반목과 대립의 심층 심리를 넘는 새로운 사유의 실험이 필요하다. 그리고 용기 있게 20세기 정치를 청산하는 새로운 선택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하버마스는 1996년 방한해 서울, 대구, 광주광역시 등지를 순회하며 7회의 공개 강연과 토론을 했다. 그는 대학, 사찰(해인사), 공장(포항제철), 5·18 묘지 등을 돌며 수많은 지식인, 언론인, 학생, 종교인, 인권 운동가를 만났다. 당시 그는 “불교의 순수한 내적 초월의 윤리와 공동체 지향이 강한 유교를 한국인이 잘 가꾸어 근대화 과정의 문화적 정체성을 회복하기 바란다”고 당부하기도 했다.

◇말년엔 ‘종교의 긍정적 가능성’ 모색... “불교·유교에 보편 가치 내장”

종교와 비판적 거리를 유지하며 세속화 담론을 지지했던 그는 말년으로 갈수록 종교가 현대 사회에서 긍정적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입장을 선회했는데, 이는 흥미로운 변화라고 로이터는 보도했다. 그는 본지 대담에서 종교사회학의 창시자 막스 베버가 연구한 ‘세계 종교’의 전개 과정을 가로질러 ‘보편 윤리’의 계보를 추적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계 종교는 윤리적으로 자각된 개인이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각기 다른 우주론적 전망으로 발전시켰다”며 “불교의 공(空) 개념은 존재의 우주론적 토대 개념의 좋은 보기”라고 했다. 또 서구 기독교가 근대성과의 관계 속에서 보편 윤리를 발전시켰음을 거론하며 “유교와 불교의 계보 안에도 보편 가치가 내장돼 있다는 점은 의문이 없다”고 했다. 동양의 종교 전통 역시 서구 기독교와 동등하게 근대 민주 국가의 윤리를 지탱하는 규범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타진한 발언으로 해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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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원선우 특파원 su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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