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양’이 문화적 액세서리로 전락한 까닭 [의사소통의 심리학]
2026.03.13 21:01
(27) 타인의 시선만 의식하는 한국인
‘사람은 교양이 있어야 해!’ 도덕과 질서를 지키며, 무례한 행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을 뭉뚱그려 이야기할 때, 우리는 ‘교양’이라는 단어를 씁니다. 교양은 단순히 태도에 국한된 것만이 아닙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이 ‘교양’은 원래 없던 개념입니다.
‘교양’은 일본 다이쇼 시대(1912~1926년)에 처음 나타났습니다. 서양의 신문물을 받아들이던 일본 지식인들은 독일어 ‘빌둥(Bildung, 자기 형성)’이란 단어를 보고 당황했습니다. 서구의 자유로운 ‘근대적 자아’가 자신의 내면을 성숙하게 갈고닦는 ‘빌둥’에 해당하는 단어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메이지 시대의 교육학자 유하라 모토이치는 ‘도자기를 굽고 쇠를 불린다’는 뜻으로 ‘도야(陶冶)’라고 번역했습니다. 이후 도쿄제국대에서 독일 철학을 가르치던 라파엘 폰 케버와 그의 일본인 제자들이 맹자(孟子)의 핵심 사상인 ‘키우다’를 뜻하는 ‘양(養)’과 ‘가르치다’의 ‘교(敎)’를 합친 조어(造語) ‘교양’을 빌둥의 번역어로 적극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후 근대화 과정에서 일본어 ‘교양’은 독일어 ‘빌둥’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고 실천됐습니다.
독일의 빌둥은 ‘내가 어떤 사람이 되는가’의 문제지만, 일본의 교양은 선택받은 신분을 과시하는 신분증이 되어버렸습니다. 내면을 갈고닦는 방법이 아니라, ‘문화적 액세서리’가 된 것이지요. 일본의 왜곡된 ‘교양’이 서양의 근대성을 대표하는 줄 알고, 이를 적극 수용했던 식민지 시대의 한반도 지식인 역시 일본식 ‘엘리트 교양주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서구의 모더니티를 성급하게 흉내 내다가 자멸한 일본의 교양과 스스로 근대화를 이루지 못해 일본과 미국에 의해 이식된 근대화를 강요받았던 한국에서의 교양은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전개됩니다. ‘인정투쟁(Kampf um Anerkennung)’이라는 전혀 다른 아이덴티티 확인의 방식이 된 것입니다.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은 한반도의 모든 과거를 ‘리셋(reset)’시켰습니다. 양반도 상놈도, 지주도 소작농도 모두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하는 무한 경쟁의 룰이 세팅된 것입니다. 한국인의 인정투쟁은 가능한 빨리 성과를 축적해, 외부의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자기 입증의 윤리학’이 됩니다.
한국식 자기 입증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타인과의 비교, 객관적 지표로 증명, 외부 승인 의존성. 21세기 들어 한국이 스마트폰 강국이 되자, 이러한 자기 입증 방식은 아주 구체적으로 생활화됩니다. 팔로워 수, 좋아요, 구독자 수, 조회 수는 ‘비교와 증명을 위한 객관적 지표’가 됩니다. 아울러 실시간 반응, 댓글, 공유 등은 ‘외부 승인의 증거’가 되는 것이지요.
자율적 주체를 지향하는 서구의 개인주의는 타인으로부터의 독립이 궁극적 목표입니다. 그러나 한국식 개인주의는 끊임없는 노출을 매개로 타인의 시선으로 평가받고, 증명하고, 인정받고자 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다 보니 내면은 언제나 공허합니다. 항상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살다보니,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 속도전에서 뒤처졌을 때 발생합니다. 텅 빈 자신의 내면을 감당할 자신이 없습니다. 자신의 실패와 부족함을 인정하는 순간, 존재가 송두리째 무너져 내리기 때문입니다.
인정받지 못해 붕괴하는 자아를 지키기 위해 한국인이 필사적으로 소환하는 무기가 있습니다. ‘피해자 서사’입니다. 내면이 공허한 사람은 실패의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을 수 없습니다. 대신 외부의 적을 만들어냅니다. ‘피해자 정체성(victimhood identity)’이란 ‘피해자는 언제나 옳다!’라는 서사를 동원합니다. 성취(success)를 통해 얻지 못한 인정을, ‘억울함(resentment)’을 통해 얻으려는 슬픈 보상 심리, 이것이 바로 속도전에 지친 한국인이 자신의 공허를 메우는 방식입니다.
오늘날, 인터넷을 달구는 극우와 극좌의 논리는 그 분노와 적개심의 대상이 다를 뿐, 그 기본 구조는 동일한 ‘피해자 서사’입니다. 식민지 시대부터 시작된 ‘아이덴티티 확인의 반복된 실패’가 오늘날 한국 사회의 근본 문제라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관점 바꾸기(perspective taking)’가 긴급하게 요구되는 것입니다.
‘관점 바꾸기’는 상대를 용서하라는 감상적인 윤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나를 ‘피해자’라는 좁은 감옥에 가두고 있는 자기 연민의 사슬을 끊고 나오는 지적인 용기입니다. 타인의 관점으로 이동해 봄으로써 나의 억울함을 객관화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야 ‘도덕적으로 옳은 피해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식민지 시대 이후로 여전히 확인되지 않는 아이덴티티로 고민하는 한국 사회가 회복해야 할 진정한 의미의 ‘의사소통적 합리성’입니다.
심리학에서 ‘관점 바꾸기’는 억울함으로 매개되는 과도한 도덕적 편 가르기를 막는 인지적 제동 장치입니다. ‘관점 바꾸기’는 타자의 심적 상태와 상황을 상상할 수 있게 해줍니다. 관련 심리학 연구들은 관점 바꾸기가 분노 반응을 유의미하게 낮춘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보여줍니다. 동시에 타인에 대한 처벌 욕구는 감소하고, 갈등을 완화하려는 의도 또한 증가합니다. 관점 바꾸기가 도덕 감정의 폭주를 제어하는 정서적 조절 메커니즘으로 기능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 같은 ‘관점 바꾸기’가 작동하는 공간을 독일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는 ‘공론장(Offentlichkeit)’으로 개념화합니다.
근대 부르주아는 살롱, 커피하우스 같은 장소에서 공적 문제에 대해 이성적으로 의견을 교환했습니다. 이런 장소가 비판적 토론을 통해 공적 의견을 형성하는 절차와 네트워크 전체를 뜻하는 ‘공론장’의 기원입니다. 하버마스가 상정한 공론장은 단순히 물리적 모임이 아닙니다. 각자의 사적 이해관계와 억울함을 보편적 이성의 언어로 변환해 ‘관점 바꾸기’가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소통의 플랫폼입니다. 이곳에서 우리는 자신의 특수한 경험을 절대화하기보다는 타자의 관점을 수용하는 ‘탈중심화된 시선’을 학습합니다. 관점을 바꾸면 사건의 복잡한 층위가 재구성됩니다. 공론장은 감정의 폭발을 막는 여과장치가 되고, 이분법적 적대감을 공적 논의의 주제로 바꾸는 고도의 인지적 공간으로 기능하게 됩니다.
하버마스는 자신의 ‘공론장’을 설명하기 위해 심리학자 로버트 셀먼(Robert Selman)이 주장하는 ‘사회적 관점 수용(social perspective-taking)’ 개념을 끌어들입니다. 그는 셀먼의 ‘관점 바꾸기’가 단순한 심리 발달 단계론을 넘어, 공론장 주체들이 서로의 주장을 이해하고 합의에 이를 수 있는 ‘상호 이해 가능성’을 설명하는 핵심 기제로 생각했습니다.
로버트 셀먼은 아동이 성장하며 타인의 내면을 이해하는 능력이 어떻게 발달하는지를 5단계로 요약합니다. 0단계는 ‘자기중심적 관점 수용(egocentric, 약 3~6세)’의 단계로 타인과 자신이 서로 다른 생각과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아직 온전히 이해하지 못합니다. 1단계는 ‘사회·정보적 관점 수용(social-informational, 약 6~8세)’의 단계입니다. 타인이 자신과 다른 생각을 할 수 있다는 점은 알게 되지만, 이는 단순히 ‘다른 정보’를 가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2단계인 ‘자기 반영적 관점 수용(self-reflective, 약 8~10세)’의 단계에 이르면 아동은 비로소 상대방의 입장에서 자신을 바라볼 수 있게 됩니다. 타인이 나의 의도를 어떻게 생각할지 고민하기 시작하며, 서로의 관점이 다르다는 것을 인지합니다.
3단계는 ‘제3자적 관점 수용(third-party, 약 10~12세)’의 단계입니다. 자신과 타인의 관계를 제3자의 객관적인 눈으로 동시에 바라볼 수 있습니다. 갈등 상황에서 두 사람의 입장을 조망하며 상호작용의 전체 맥락을 이해합니다. 4단계인 ‘사회적 체계 관점 수용(societal system, 약 12세 이상~성인)’에 이르면 개인 간의 관계를 넘어 법, 도덕, 종교와 같은 사회적 규범과 가치 체계 속에서 타인의 관점을 이해합니다. 하버마스가 공론장의 토대로 삼은 가장 고도화된 소통의 단계입니다.
도대체 우리는 언제부터 남의 생각을 이해하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할 수 있을까요? 이는 심리학이라는 학문이 출발할 때부터 제기된 질문입니다. 1980년대 들어 이 분야에 획기적인 논문들이 발표되며 ‘마음 이론’이라는 용어가 쓰이기 시작합니다. 타인의 마음을 언제부터 이해할 수 있는지 아주 간단한 실험으로 보여준 것입니다. 시작은 1983년 오스트리아의 발달심리학자 하인즈 위머(Heinz Wimmer)와 요제프 페르너(Josef Perner)가 발표한 ‘맥시와 초콜릿(Maxi and the Chocolate)’으로 불리는 실험입니다.
실험자는 아이들에게 인형극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주인공은 맥시(Maxi)라는 이름의 남자아이와 엄마입니다. 맥시가 부엌에 들어와 초콜릿을 ‘초록색 상자’에 넣고 놀러 나갑니다. 그때 엄마가 들어와 ‘초록색 상자’에서 초콜릿을 꺼냅니다. 사용 후 엄마는 남은 초콜릿을 ‘파란색 상자’에 넣고 나갑니다. 밖에서 놀던 맥시가 부엌에 다시 들어옵니다. 그리고 초콜릿을 먹으려고 합니다. 인형극이 여기까지 진행됐을 때, 실험자는 아이들에게 묻습니다. “맥시가 초콜릿을 어느 상자에서 꺼내려고 할까?”
정답은 물론 맥시가 초콜릿을 넣은 ‘초록색 상자’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만 3~4세의 아이들은 ‘파란색 상자’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아이가 아는 것(초콜릿이 파란색 상자로 옮겨진 것)과 맥시가 아는 것(초콜릿이 옮겨지는 것을 보지 못한 것)이 서로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모른다는 의미입니다. 만 4~5세가 되면 ‘초록색 상자’라고 대답합니다. ‘자신이 아는 것’과 ‘타인이 아는 것’이 다르다는 것, 즉 ‘타인이 현실에 대해 잘못된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이 실험을 ‘틀린 믿음 테스트(false belief test)’라고 부릅니다. 테스트의 핵심 질문은 ‘맥시는 틀릴 수 있다. 그런데도 맥시는 그 틀린 믿음대로 행동한다. 이 구조를 네가 이해하느냐?’입니다. 실험의 결과는 약 4세부터 그러한 능력이 생긴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위머와 페르너의 실험은 아주 간단했지만 매우 혁명적이었습니다. 그 이전의 발달심리학 연구에서는 아이와 외부세계(사물이나 공간)의 관계, 아이와 인지구조(자기 인식)의 변화에 초점을 맞췄다면 위머와 페르너는 ‘아이와 타인의 마음’이라는 상호작용적 구조를 연구 대상으로 삼았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생각을 한다는 것, ‘잘못된 믿음(틀린 추론)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한다는 것은 단순히 지능이 높아졌다는 차원을 넘어, 인간이 ‘보이는 세계(reality)’에서 ‘해석된 세계(representation)’로 인지혁명을 이뤄냈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눈앞에 펼쳐진 물리적 사실만이 유일한 진실이라고 믿던 ‘실재론(realism)’을 부수고 나오는 혁명적인 사건입니다. 아이는 비로소 내 머릿속의 정보와 타인의 머릿속 정보가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되며, 타인의 행동이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그가 믿고 있는 ‘주관적 마음’에 의해 결정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약 4세부터 그런 능력이 생긴다는 겁니다. 즉, 위머와 페르너의 실험은 인간이 타인을 ‘움직이는 사물’이 아닌 ‘마음을 가진 주체’로 대우하기 시작하는, 진정한 의미의 ‘사회적 탄생’을 포착해낸 것입니다.
[김정운 문화심리학자·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350호(2026.03.11~03.17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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