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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만의 '기름값 상한제'…다음 카드는 유류세 인하·비축유 방출

2026.03.09 17:46



국제유가가 미국·이란 전쟁을 계기로 70% 이상 상승하면서 장중 한때 배럴당 110달러를 돌파했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 휘발유·경유 가격은 ℓ당 2000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정부는 이에 석유제품 최고가격지정제를 우선적으로 시행하고 유류세 인하, 비축유 방출 등도 유가 상황을 모니터링해 단계별로 돌입할 전망이다. 유가를 잡지 않으면 물가가 자극을 받고 이는 통화 긴축으로 이어질 수 있어, 경기 침체와 물가 상승이 동시에 나타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기 때문이다.

9일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정부는 오일쇼크에 버금가는 유가 폭등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석유 판매 최고 가격 지정을 위한 실무 작업을 사실상 마무리했다. 관계 부처 협의와 최종 의사결정 과정만 남겨둔 상태다.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이번주에 최고 가격 고시가 나올 수 있다"고 밝혔다.


정부가 주유소의 휘발유·경유 가격을 직접 정하는 최고가격지정제를 시행한다면 1997년 유가 자유화 조치 이후 29년 만에 사실상 가격 통제가 부활하는 셈이다. 현행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은 비상시 정부가 가격 상한을 정할 수 있는 근거를 두고 있다. 1996년까지는 정부가 주유소 휘발유·경유 가격을 책정했다.

다만 최고 가격 지정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지나치게 낮게 지정하면 사재기가 발생할 수 있고, 높게 책정하면 서민들이 체감하는 유가 인하 효과가 떨어진다는 평가다.



더욱이 최고 가격과 국제유가·원유 도입 단가 사이에 괴리가 커지면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에 따라 정부의 재정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 석유사업법 23조는 "정부는 필요시 제1항에 따른 석유 판매가격의 최고액 또는 최저액 지정으로 인하여 석유정제업자·석유수출입업자 또는 석유판매업자가 입은 손실을 보전하기 위한 재정 지원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김정식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유가나 환율이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에 최고가격제는 실행하기 쉽지 않다"면서 "유류세를 더 깎아 준다든지 그런 조치가 오히려 더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유류세 인하는 정부가 교통·에너지·환경세법 시행령만 고치면 곧장 시행할 수 있다. 유류세에는 휘발유와 경유에 붙는 교통·에너지·환경세, 교육세(교통세의 15%), 주행세(교통세의 26%)가 붙어 있다. 평시라면 ℓ당 유류세는 휘발유 820원, 경유 581원이다. 정부는 현재 휘발유와 경유 유류세를 각각 7%, 10% 인하해 763원과 523원을 부과하고 있다.

현행법상 유류세는 최대 50%까지 인하가 가능하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고유가 상황이 지속되자, 정부는 유류세 인하 폭을 20%에서 30%로 확대한 뒤 다시 37%까지 올렸다.

하지만 유류세 인하는 정부에 세수 부담을 안긴다. 재정경제부에 따르면 정부의 교통·에너지·환경세 수입은 2021년 16조6000억원에서 2022년 11조1000억원까지 감소했다. 2023~2024년 역대급 세수 결손 발생 당시 유류세 펑크도 큰 몫을 차지했다.

정부는 2023년 유류세를 11조1000억원 걷을 것으로 전망했지만 10조8000억원밖에 걷지 못했다. 2024년에는 15조3000억원 세수를 예상했지만 실제로 걷은 금액은 11조4000억원에 그쳤다. 작년에도 15조1000억원 세수를 에상했지만 결과는 13조2000억원으로 1조9000억원 결손이 발생했다.

마지막 카드는 비축유 방출이다. 유가가 150달러를 넘어 200달러로 치닫게 되면 정부는 마지막 카드로 전략 비축유 방출 카드를 꺼내들 전망이다. 비축유 방출은 '국가자원안보 확보를 위한 고시'상 자원안보 위기경보 단계(관심-주의-경계-심각) 중 '경계'에 해당할 때부터 가능하다. 지금은 '관심' 단계다. 비축유 방출이 결정되더라도 한국이 단독으로 실행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비축유 제도는 국제 공조 중심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 규정에 따르면 회원국은 최소 90일 이상의 순수입량에 해당하는 비축유를 유지해야 하며, 공급 충격이 발생하면 IEA가 상황을 평가해 회원국에 공동 방출을 요청한다.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1980년대 석유 비축 사업을 시작한 이후 한국이 비축유를 방출한 사례는 1991년 걸프전, 2005년 허리케인 카트리나, 2011년 리비아 사태,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사태 등에 불과하다. 장태훈 에너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비축량을 푸는 순간 대응할 수 있는 마지막 수단이 없기 때문에 비축유 방출은 최대한 안 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산업통상부에 따르면 지난 3일 기준 한국은 정부 7648만배럴, 민간 7383만배럴의 비축량이 있으며 3개월 내에 추가 확보가 가능한 물량은 3500만배럴이다. 약 208일분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이는 세계 6위 수준으로, IEA 권고 기준인 90일보다 훨씬 많다. 이 중 정부가 방출을 결정하면 정부 몫인 7648만배럴의 원유가 민간 정유사에 공급된다.

[문지웅 기자 / 강인선 기자 / 김금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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