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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중앙] 1945년 광복 후 3년…대한민국 정체성 회복 가열차게 시작

2026.03.09 08:00

우리 말과 글, 학교에서 배우는 문학 작품과 역사, 한글로 된 나의 이름, 박물관에서 만나는 우리의 문화유산. 이러한 일상이 우리 민족에게 당연한 일이 된 것은 80년 정도밖에 되지 않아요. 일제강점기(1910~1945)에는 일본어로 말하고, 일본어로 이름을 쓰고, 일본의 역사를 배워야 했기 때문입니다.

정하은(왼쪽)·이서윤 학생기자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을 찾아 광복 이후 3년 동안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되찾기 위한 노력을 살폈다.
그렇다면 우리는 광복 이후 어떤 과정을 거쳐 말과 역사, 문화를 되찾았을까요. 서울 종로구에 있는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는 1945년 광복부터 1948년 정부 수립까지 3년 동안 온전한 우리를 되찾고자 했던 노력을 조명하는 전시 '1945-1948 역사 되찾기, 다시 우리로'가 진행 중입니다. 이서윤·정하은 학생기자가 이명주 학예연구사와 함께 광복 이후 3년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살펴봤죠.

광복 이후 가장 변화한 일상은 우리말의 귀환입니다. 방송국에서는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를 제1방송 언어로 송출하고, 학교에서는 정규 국어 교육이 시작됐죠. 우리의 말과 글을 회복하고 바로 세우는 일은 일제강점기에 드리웠던 어둠을 씻어내고, 민족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첫걸음이기도 했어요.

이명주(가운데) 학예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에게 광복 이후 우리 말·역사·문화를 되찾은 과정을 설명했다.
전시실에는 1947년 한글날에 제1권이 출간된 『조선말큰사전』이 있었어요. 조선어학회가 펴낸 최초의 우리말 사전으로, 일제의 탄압으로 유실된 원고가 광복 직후 서울역 창고에서 발견되면서 극적으로 출간됐죠. 후에 한글학회로 명칭을 바꾸는 조선어학회는 광복 후 최초의 국어 교과서 『한글 첫 걸음』도 편찬했어요. 한글을 자음과 모음, 단어·문장·이야기 순으로 학습하도록 41과로 구성한 교과서입니다. 또 문맹 퇴치를 위해 한글 강습회를 열기도 했죠.

이 학예사가 『조선말큰사전』 옆에 있던 국어학자 최현배의 휘호를 가리켰어요. "1932년 한 음식점 방명록에 한글로 '한글이 목숨 최현배'라고 적은 거예요. 일제강점기에도 우리말을 지켜내고자 했던 그의 굳은 신념과 절박함이 드러나죠. 작고 전까지 한글학회에서 활동하며 『조선말큰사전』 전 6권 완간을 이끈 분이기도 해요."

조선어학회가 편찬한 『초등국어교본』.
우리 민족의 정서를 담은 문학작품도 광복 이후 한글로 발간됐어요. 해방을 앞둔 1944년 옥사한 이육사 시인의 '광야'는 1946년 유고시집에 수록됐으며, 일제의 검열로 생전에 출간되지 못한 심훈 시인의 '그날이 오면'은 1949년 세상에 나왔죠. 1948년 출간된 윤동주 시인의 유고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도 만날 수 있어요.

어린이를 위한 동요도 우리말로 제작됐어요. 아동문학가 윤석중은 어린이를 위해 동요집 『초생달』(1946), 『굴렁쇠』(1948)을 연달아 펴냈죠. 윤석중은 당시를 "1945년 8월 14일까지만 해도 일본말밖에 모르던 우리 어린이들이 신기한 듯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혀를 놀리며 우리말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가르치던 노래 선생님과 옆에서 듣고 있던 어머니 아버지도 눈물이 나왔다"라는 회고하기도 했어요.

아동문학가 윤석중이 광복 이후 어린이들을 위해 발간한 동요집의 일부.
서윤 학생기자가 "일본어 사용 외에 일제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강요했던 것들은 무엇이 있나요"라고 질문했어요. 이 학예사가 소중 학생기자단을 1943년 만든 창씨개명 호적부 앞으로 데려갔어요. 창씨개명은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바꾸게 한 것으로, 광복이 되자 일본식 성을 호적부에서 붉은 줄로 지우고 그 위에 원래 우리 성을 다시 적었어요. "광복 후 일상에 남은 일본어 잔재를 청산하려는 노력이 다각도로 진행됐는데, 일제에 의해 강요된 창씨개명을 본래의 성명으로 되돌리는 것도 그 노력 중 하나였죠."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은 우리 역사가 아닌, 일본의 역사를 배웠습니다. 전시실에는 1930년대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초등 교육용 역사 교과서인 『초등국사 제5학년』이 있었어요. 일제는 1938년 제3차 조선교육령 이후 조선인의 민족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해 한국사는 배제하고 일본사만 중점적으로 다룬 역사 교육을 강화했죠. 그 옆에 진열된 『초등지리 권2』(1942)도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초등 교육용 지리 교과서로, 한반도의 산맥을 일본의 산맥 체계 안에 포함한 지도가 삽입됐으며 동해는 일본해로 표기돼 있죠.
광복 이후 일본어가 아닌 우리말로 간행된 역사·지리 교과서를 살펴본 이서윤(왼쪽)·정하은 학생기자.

광복 후에는 그간 배제되고 단절됐던 우리 역사를 다시 잇고, 왜곡된 역사에서 벗어나고자 우리 민족의 역사와 지리를 다룬 교과서가 제작됐어요. 1946년 진단학회가 펴낸 중등 교육용 국사 교과서 『국사교본』이 대표적이죠. 우리 역사를 상고·중고·근세·최근의 네 시기로 구분하고, 단군 신화와 이순신 장군의 승전 기록 등을 비중 있게 다루면서 민족 주체성을 강조했습니다.

하은 학생기자가 "전시 관련 자료에서 해방 이후 해금도서가 복간됐다는 내용을 읽었는데요. 해금도서란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했어요. "일제강점기에는 우리의 독립 의지와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내용을 담으면 금지된 책, 즉 금서로 지정됐어요. 광복 후 금지된 게 풀렸는데, 이걸 해금도서라고 해요."

일제강점기 일본인의 집에 있었던 원공국사 승묘탑. ⓒ국립중앙박물관
국가는 멸망해도 민족혼이 살아있다면 반드시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내용의 『한국통사』(1915), 국권 피탈 전후의 독립운동을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한 역사서 『한국독립운동지혈사』(1920) 등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새로 편찬된 역사 교과서와 복간된 서적들은 우리 민족이 우리의 역사와 영토를 인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죠.

또한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문화유산의 복구와 반출된 문화유산 환수 노력도 시작됐어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돼 있는 원공국사 승묘탑은 본래 강원도 원주 거돈사 터에 있던 고려시대 승려 원공국사의 사리탑인데요.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승탑 형식을 보여주죠. 이 탑은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의 집에 놓였으나, 1948년 경복궁으로 옮겨왔어요. 1910년 한일강제병합 후 일제에 의해 약탈된 고종 황제의 국새 칙명지보는 광복 1주년 기념일에 당시 남한 지역을 통치한 미군정을 통해 우리나라에 반환됐어요.

광복 이후에 국립박물관이 실시한 첫 고적 발굴인 호우총에서 나온 청동 그릇. ⓒ국립중앙박물관
또 문화유산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우리 민족의 유산을 현재와 연결하는 구심점을 만들기 위해 1945년 12월 3일 국립박물관(현 국립중앙박물관), 1946년 국내 최초의 민속학·인류학 전문 국립민족박물관(한국전쟁 중 국립박물관에 흡수)이 개관했죠. 일제에 의해 통제되고 침체됐던 창극·탈춤·줄다리기·농악 등 우리 민족의 전통과 고유한 생활 문화도 다시 제자리를 찾았어요. 전시실에서는 국악 활성화를 위해 1947년 국악원 주최로 열린 제2회 전국농악경연대회 상장, 민속학자 송석하가 국립민족박물관장 시절 미군정 소속 문화유산 전문가 헬렌 채핀에게 봉산탈춤을 소개하기 위해 썼던 편지 등을 볼 수 있었습니다.

일제에 의해 왜곡되거나 언급이 금기시됐던 역사적 인물과 사건도 도서·연극·기념식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재조명되고, 이들을 기억하고자 하는 열기가 이어졌어요.

유관순 열사의 전기인 『유관순전』.
많은 사람이 3·1 운동을 주도한 유관순 열사를 '조선의 잔다르크'로 기억하는데요. 이는 유관순 열사의 삶을 처음으로 기록한 전기인 『유관순전』(1948)이 계기였죠. 1926년 동양척식주식회사에 폭탄을 던지고 순국한 나석주 의사의 전기 『건국투사 의사 나석주전』(1946)도 비슷한 시기에 출간됐어요. 또 안중근·윤봉길 등 독립열사의 행적은 창작 판소리 '열사가' 공연으로 만들어졌죠.

소중 학생기자단은 해외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 5인(이준·안중근·이봉창·윤봉길·백정기)의 활약을 알리기 위해 1946년 무렵 나온 순국열사 포스터도 살펴봤어요. 이들은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의 철저한 언론 통제로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죠. 오늘날 우리가 이들을 교과서에서 배우고, 3·1절이나 광복절에 추모하는 것은 이들을 잊지 않기 위해 애썼던 많은 사람의 노력 덕분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죠.
이명주(맨 왼쪽) 학예사와 함께 광복 이후 훼손된 문화유산 복구와 환수 노력을 알아본 소중 학생기자단.

임진왜란에서 크게 활약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는 활동도 광복 이후 활발히 전개됐어요. 임진왜란 당시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의 전공을 기리는 명량대첩비는 본래 1688년 전남 해남에 세워졌어요. 그런데 일제가 1942년 항일 유적을 철거하면서 비석은 경복궁 뒤뜰로 옮겨져 방치됐고, 비석을 보관하던 비각은 파괴됐죠. 다행스럽게도 광복 후 경복궁 내에서 버려진 비석이 발견됐고, 1946년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어요.

우리 민족의 전통과 고유한 생활 문화의 부활부터 항일 열사들의 재조명까지. 진짜 우리의 것을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과 노력은 광복 이후 새로운 출발점에 선 우리 사회의 정신적 구심점이 됐죠.

봉산탈춤 말뚝이 가면. ⓒ국립민속박물관
지금까지 1945년 광복 이후 3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살펴봤는데요.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우리말, 한국어로 된 이름, 우리 민족의 역사와 문화 등은 광복 이후 지난한 노력을 통해 회복되고 재정립된 결과물임을 알 수 있었죠. 대한민국 국민이 잃어버린 말과 글을 되찾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우며, 문화와 기억을 회복해나가는 여정은 지금도 현재 진행형입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우리의 말과 글, 역사와 문화를 누리는 건 어떨까요.
동행취재=이서윤(서울사대부초 6)·정하은(서울 노원중 2) 학생기자
학생기자단 취재 후기
이번 취재에서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우리 말을 되찾는 과정'이었습니다. 해방 직후 새 교과서를 만들고, 우리말 사전을 편찬하며, 한글을 바로 세우려 했던 분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어땠을까요.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하는 한글이지만, 그 뒤에는 그분들의 땀과 노력이 있었다는 사실을 절대로 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일제에서 해방된 1945년부터 대한민국 정부가 세워진 1948년까지 이 3년은 단순히 일제의 식민지에서 벗어난 시기가 아니에요. 이명주 학예사님이 이 3년은 잃어버린 이름을 되찾고,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우며, 우리 말과 문화 그리고 기억을 회복해 나가는 길고 긴 여정이었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역사는 시험을 위해 외워야 하는 공부가 아니라,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이야기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됐어요. '역사 되찾기, 다시 우리로'라는 전시 제목처럼 역사를 아는 일은 결국 우리 자신을 바로 세우는 일임을 잊지 말아야겠어요.

이서윤(서울사대부초 6) 학생기자

광복 후 3년 동안 사람들이 다시 우리나라를 한국으로 돌려놓기 위해 했던 노력을 중점적으로 다룬 전시를 살펴봤습니다. 1945년 광복, 1948년 정부 수립 같은 큰 사건들은 잘 알지만 그 사건들 사이의 내용은 세부적으로 잘 모르는 경우가 있는데,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그러나 이번 전시를 취재하면서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기까지 사람들이 정말 많은 노력을 했음을 느낄 수 있었고, 정말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지금 우리는 대한민국의 문화유산이 국내에 있고, 우리의 성이 한글이고, 한글로 된 책으로 한국어를 하며 수업하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그것이 당연하지 않은 시간이 있었음을 전시를 통해 깨닫는다면 좋겠어요.

정하은(서울 노원중 2)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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