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중앙] 1945년 광복 후 3년…대한민국 정체성 회복 가열차게 시작
2026.03.09 08:00
광복 이후 가장 변화한 일상은 우리말의 귀환입니다. 방송국에서는 일본어가 아닌 한국어를 제1방송 언어로 송출하고, 학교에서는 정규 국어 교육이 시작됐죠. 우리의 말과 글을 회복하고 바로 세우는 일은 일제강점기에 드리웠던 어둠을 씻어내고, 민족의 정체성을 정립하는 첫걸음이기도 했어요.
이 학예사가 『조선말큰사전』 옆에 있던 국어학자 최현배의 휘호를 가리켰어요. "1932년 한 음식점 방명록에 한글로 '한글이 목숨 최현배'라고 적은 거예요. 일제강점기에도 우리말을 지켜내고자 했던 그의 굳은 신념과 절박함이 드러나죠. 작고 전까지 한글학회에서 활동하며 『조선말큰사전』 전 6권 완간을 이끈 분이기도 해요."
어린이를 위한 동요도 우리말로 제작됐어요. 아동문학가 윤석중은 어린이를 위해 동요집 『초생달』(1946), 『굴렁쇠』(1948)을 연달아 펴냈죠. 윤석중은 당시를 "1945년 8월 14일까지만 해도 일본말밖에 모르던 우리 어린이들이 신기한 듯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혀를 놀리며 우리말 노래를 부르고 있을 때, 가르치던 노래 선생님과 옆에서 듣고 있던 어머니 아버지도 눈물이 나왔다"라는 회고하기도 했어요.
일제강점기에 우리 민족은 우리 역사가 아닌, 일본의 역사를 배웠습니다. 전시실에는 1930년대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초등 교육용 역사 교과서인 『초등국사 제5학년』이 있었어요. 일제는 1938년 제3차 조선교육령 이후 조선인의 민족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해 한국사는 배제하고 일본사만 중점적으로 다룬 역사 교육을 강화했죠. 그 옆에 진열된 『초등지리 권2』(1942)도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초등 교육용 지리 교과서로, 한반도의 산맥을 일본의 산맥 체계 안에 포함한 지도가 삽입됐으며 동해는 일본해로 표기돼 있죠.
광복 후에는 그간 배제되고 단절됐던 우리 역사를 다시 잇고, 왜곡된 역사에서 벗어나고자 우리 민족의 역사와 지리를 다룬 교과서가 제작됐어요. 1946년 진단학회가 펴낸 중등 교육용 국사 교과서 『국사교본』이 대표적이죠. 우리 역사를 상고·중고·근세·최근의 네 시기로 구분하고, 단군 신화와 이순신 장군의 승전 기록 등을 비중 있게 다루면서 민족 주체성을 강조했습니다.
하은 학생기자가 "전시 관련 자료에서 해방 이후 해금도서가 복간됐다는 내용을 읽었는데요. 해금도서란 무엇인가요"라고 질문했어요. "일제강점기에는 우리의 독립 의지와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내용을 담으면 금지된 책, 즉 금서로 지정됐어요. 광복 후 금지된 게 풀렸는데, 이걸 해금도서라고 해요."
또한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문화유산의 복구와 반출된 문화유산 환수 노력도 시작됐어요.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보존돼 있는 원공국사 승묘탑은 본래 강원도 원주 거돈사 터에 있던 고려시대 승려 원공국사의 사리탑인데요. 통일신라의 전형적인 승탑 형식을 보여주죠. 이 탑은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의 집에 놓였으나, 1948년 경복궁으로 옮겨왔어요. 1910년 한일강제병합 후 일제에 의해 약탈된 고종 황제의 국새 칙명지보는 광복 1주년 기념일에 당시 남한 지역을 통치한 미군정을 통해 우리나라에 반환됐어요.
일제에 의해 왜곡되거나 언급이 금기시됐던 역사적 인물과 사건도 도서·연극·기념식 등 여러 매체를 통해 재조명되고, 이들을 기억하고자 하는 열기가 이어졌어요.
소중 학생기자단은 해외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 5인(이준·안중근·이봉창·윤봉길·백정기)의 활약을 알리기 위해 1946년 무렵 나온 순국열사 포스터도 살펴봤어요. 이들은 일제강점기에는 일제의 철저한 언론 통제로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죠. 오늘날 우리가 이들을 교과서에서 배우고, 3·1절이나 광복절에 추모하는 것은 이들을 잊지 않기 위해 애썼던 많은 사람의 노력 덕분이란 사실을 알 수 있었죠.
임진왜란에서 크게 활약한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업적과 정신을 기리는 활동도 광복 이후 활발히 전개됐어요. 임진왜란 당시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 장군의 전공을 기리는 명량대첩비는 본래 1688년 전남 해남에 세워졌어요. 그런데 일제가 1942년 항일 유적을 철거하면서 비석은 경복궁 뒤뜰로 옮겨져 방치됐고, 비석을 보관하던 비각은 파괴됐죠. 다행스럽게도 광복 후 경복궁 내에서 버려진 비석이 발견됐고, 1946년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어요.
우리 민족의 전통과 고유한 생활 문화의 부활부터 항일 열사들의 재조명까지. 진짜 우리의 것을 회복하고자 하는 열망과 노력은 광복 이후 새로운 출발점에 선 우리 사회의 정신적 구심점이 됐죠.
동행취재=이서윤(서울사대부초 6)·정하은(서울 노원중 2)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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