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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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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 바둑판서 잘 싸우는 기사였는데…지금은 전쟁판도 바꾸는 전사로

2026.03.09 06:41

‘알파고 쇼크 10년’ AI 명암
에이전트 서비스 빠르게 확산
지능형 로봇, 일상 도우미로
자살 소송 등 사회갈등 현실화
군사활용 두고 정부·기업 충돌


지난 6일(현지시간) 실리콘밸리에서 창업할 수 있는 아이템이 궁금했던 기자는 한 사이트에 접속한 뒤 각계 각층의 전문가 10명을 채팅 방으로 초대했다. 먼저 필요한 것은 실리콘밸리에서 거주할 집을 구하는 일이었다. “실리콘밸리에서 집을 어떻게 구해”라고 묻자 재무 전문가 A는 “예산은 어떻게 돼? 구매나 임대 고민해?”라고 물었다. 곧 이어 아파트 임대 전문가 B는 “아파트는 좋은 해결책이 될 수 있어. 지금 어떤 점이 가장 고민돼?”라고 되물었고, 마운틴뷰 부동산 전문가 C는 “자녀 교육을 고려한다면 마운틴뷰, 팰로앨토를 추천해”라며 각 지역의 장단점에 대해 설명했다. 밤이 늦어 기자는 대화를 멈췄다. 다음 날 아침 채팅방을 열었더니 나를 제외한 전문가끼리 밤새 이야기를 나누며 실리콘밸리 거주 방법에 대한 여러 아이디어를 정리하고 있었다.

기자가 접속한 곳은 미국 인공지능(AI) 스타트업 유클론이 만든 유클론넷. 시범 운영되고 있는 이곳은 AI 에이전트와 인간이 함께 소통하는 일종의 소셜 미디어다. 기자가 방으로 초청한 9명의 전문가 역시 모두 AI였다. 이곳에서는 특정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AI를 만든 뒤 이들과 소통할 수 있고 나만의 에이전트를 만들어 여러 주제의 채팅방에 넣은 뒤 대화를 이어가게 할 수도 있다. 유클론은 최근 이슈가 됐던 AI만의 소셜미디어 ‘몰트북’보다 앞서 이 같은 사이트를 만들고 다양한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유클론 공동창업자 케니 임 최고기술책임자(CTO)는 “개인, 기업 누구나 웹사이트를 가질 수 있는 시대가 지금이라면 미래는 웹사이트가 에이전트로 바뀔 것”이라며 “AI와 인간이 소통하고 교류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말했다.

10년 전 오늘, 서울 포시즌스 호텔에 마련된 바둑판 위로 인류의 거대한 당혹감이 쏟아졌다. 이세돌 9단이 ‘알파고’라는 이름의 기계 앞에 돌을 던졌을 때 인간은 처음으로 ‘기계가 인간을 이길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마주했다.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인간보다 뛰어난 AI의 등장. 인류는 충격 속에서 그 장면을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10년이 지난 오늘, AI를 바라보는 질문의 무게추는 옮겨갔다. 기자가 AI와 대화하며 아이디어를 찾았듯, 일상 깊숙이 들어온 AI 앞에서 인간은 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고민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AP 연합뉴스]
알파고 등장 후 AI 발전 속도는 빨라졌다. 이미지 인식, 음성 인식은 인간 수준에 근접했고, 자율주행·의료 진단·금융 분석 등 다양한 산업 분야로 확산됐다. AI는 더 이상 특정 연구 프로젝트가 아니라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는 기술로 자리 잡았다. 생성형 AI의 등장은 이러한 변화에 기름을 부었다. 실험실과 기업에 머물러 있던 AI는 세상 밖으로 나왔다. AI가 검색, 글쓰기, 번역, 코딩, 교육 등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되기 시작하면서 사용자는 수십억 명 규모로 늘어났다. AI는 일상과 산업 전반에 스며든 디지털 인프라가 됐다.

알파고 이후 10년, AI를 향한 질문은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인류는 AI와 어떻게 공존할 것인지, AI가 인간의 판단과 감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쟁과 같은 국가 안보 영역에서 어디까지 사용될 수 있는지 같은 새로운 질문에 답해야 하는 시대에 들어섰다.

이 질문은 단순한 고민의 차원을 넘어섰다. AI가 인간에 미치는 영향이 이미 사회 문제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제미나이 소송이 대표적이다. 지난 4일(현지시간) 미국 플로리다에서는 한 남성이 구글 AI 챗봇 ‘제미나이’와 대화한 뒤 극단적 선택을 했다며 유가족이 구글을 상대로 부당사망 소송을 제기했다. 유족들은 ‘챗봇이 인간의 삶을 끝내고 디지털 존재가 돼야 함께 할 수 있다고 설득했다’고 주장했다. 챗GPT에 이어 제미나이까지 유사 소송에 휘말리며 생성형 AI가 인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논쟁이 촉발됐다.

최근 불거진 미국 국방부와 앤스로픽의 갈등도 비슷하다. 앤스로픽은 “우리 AI가 자율무기나 대규모 감시에 사용돼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고, 국방부는 “AI 사용 범위를 민간이 제한할 수 없다”고 맞서면서 갈등이 격해졌다. 이는 불과 몇 년 전과 비교하면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2018년 구글이 미 국방부의 드론 영상 분석 AI 프로젝트 ‘메이븐’에 참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직원들이 경영진에 “구글이 전쟁에 관여해서는 안 된다”며 항의 서한을 보내 프로젝트 참여를 철회시켰다. 당시 기술 기업 내부에서 군사 활용에 대한 거부감이 강했지만, AI가 국가 안보 핵심 기술로 떠오르면서 지금은 정부와 기업이 AI 사용 범위를 두고 충돌하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구글 제미나이. [로이터 연합뉴스]
AI는 우리가 살고 있는 물리세계와의 접점도 확대해 나가고 있다. 생성형 AI가 언어와 이미지 등 디지털 정보를 처리하는 데 강점을 보였다면, 앞으로의 AI 경쟁은 현실 세계를 이해하고 직접 행동할 수 있는 능력으로 옮겨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로봇·자율주행·산업 자동화 등에 활용되는 ‘피지컬 AI’와 공간과 시간의 변화를 학습하는 ‘월드 모델’ 연구가 올해 가장 주목받는 연구 트렌드로 지목되고 있다.

단순히 바둑판 위의 승패를 논하던 시대를 지나 AI는 인간과 대화하고, 감정을 흔들며, 물리적 공간을 공유하는 존재로 진화했다. 하지만 이를 가이드할 사회적 기준은 여전히 기술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실정이다. 임 CTO는 “AI 시대 기술의 발전 속도를 인간이 만든 제도 등이 따라가는 것이 상당히 어렵다”며 “10년 전 인간은 AI에게 ‘승리’를 빼앗길까 걱정했지만, 이제는 AI에게 ‘일상의 통제권’을 어디까지 맡길지를 고민해야 하는 단계”라고 짚었다. 그는 이어 “인간과 AI의 공존이 이미 시작된 만큼, 다양한 분야에서 새로운 기준과 사회적 합의를 마련하는 노력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실리콘밸리 원호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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