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중장기 전략·제도 정비 병행'…'두 국가' 노선 당 대회서 재확인"
2026.03.09 05:30
사업 총화에서 '조국통일' 체계 완전 삭제…'김정은 노동당' 부각
(서울=뉴스1) 유민주 기자 = 북한은 체제의 시작 때부터 당이 국가의 위에서 통치하는 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노동당 규약과 헌법상 내용대로 '당이 국가를 지도, 지배하는' 구조다. 일당 지배체제의 특성상 당의 최고 의사 결정 기구인 노동당 대회(당 대회)는 북한 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정치 행사로 볼 수 있다. 최근 열린 북한의 9차 노동당 대회의 결과를 면밀히 분석해야 하는 이유다.
지난 5일 뉴스1과 만난 김인태 국가안보전략연구원(INSS·전략연) 수석연구위원은 80년간 이어지고 있는 '세습 정당'의 경로 의존성을 기반으로 당 대회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수석연구위원은 과거 양강도에서 청년동맹 1비서를 맡은 바 있는 북한이탈주민(탈북민·북향민)으로, 국가정보원(국정원) 산하 연구기관인 전략연에서 북한의 변화를 분석하고 기록해 왔다.
김 수석연구위원은 집권 이후 세 번째 당 대회를 맞이한 김정은이 당의 통치 논리를 강화하면서도, 앞선 두 번의 당 대회 때 노출한 정책 실패와 시행착오를 통해 유일체제를 보다 합리적인 구조로 만들어가고 있다는 점을 짚었다. 특히 '김정은표' 사회주의의 전면적 발전을 추진하면서 체제 강화에 집중한 9차 당 대회의 정책 결정과 그 이후 미세한 변화를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김 수석연구위원은 15기 최고인민회의 위원 선거가 2년 정도 미뤄진 것을 통해 많은 것을 유추해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노동당 중심의 운영 체제를 '정합적'으로 맞추려는 과정에서 나타난 형상이라는 설명이다.
입법권을 행사하는 북한의 주권기관인 최고인민회의는 당의 결정 사항을 법과 국가기구의 인사로 추인하는 기관이다. 따라서 노동당 대회에서 국가노선과 지도부를 먼저 확정한 뒤 최고인민회의를 통해 국가기구 인사를 정리하는 구조를 갖는 것이 합리적인 형식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김정은은 지난 2024년 1월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전쟁 시 대한민국을 공화국 영역에 편입하는 문제' 등 영토 조항을 반영해 헌법을 개정할 필요가 있다면서 "이는 다음번 최고인민회의에서 심의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같은 해 6월 최고인민회의에서는 의원들의 책임과 역할을 명시한 '대의원법'을 채택했지만 이미 늦어진 15기 선거 일정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지난 5일에 발표된 제15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선거 일정은 북한의 현행 선거법 규정에도 맞지 않는다. 2023년에 개정한 선거법에 따르면 '최고인민회의 선거 일정은 60일 전에 상임위원회 결정으로 공포한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10여일을 앞두고 약식으로 발표했다.
김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의 사회주의헌법 제90조에 따라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경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의 5년 임기를 연장할 수는 있지만, 이번엔 임기 연장의 이유가 과거와는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1948년 북한 정권 수립 이후 최고인민회의 선거가 늦춰진 경우는 6·25전쟁,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과 같은 중대한 정치적 사건이 발생했을 때가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제14기 최고인민회의의 임기가 연장된 의도는 체제 운영 구조를 보다 합리적으로 정비하려는 목적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이 과정에서 북한의 공식 의전서열 2위인 최룡해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제9기 당 지도기구 명단에서 빠진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 김 수석연구위원의 분석이다.최룡해와 함께 많은 주목을 받은 인물은 역시 김여정이다. 9차 노동당 대회 기간 열린 당 중앙위원회 제9기 1차 전원회의에서 당 부부장이던 김여정은 당 부장(장관급)으로 승진하면서 정치적 위상이 한층 높아졌다.
김 수석연구위원은 김여정의 승진은 김정은 유일영도체계와 노동당 중심의 통치 체제를 공고히 하려는 조치라고 분석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 북한은 당을 통한 정책 결정과 집행 구조를 강조해 왔는데, 이 과정에서 김정은의 신임이 두터운 측근을 당 핵심 직책에 배치함으로써 정책 집행력을 높이고 권력 구조를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김 수석연구위원은 최고지도자의 신임을 기반으로 정책 집행과 권력 운영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측근 그룹을 '이너서클'로 정의하며, 김여정이 김정은의 여동생이라는 혈연 관계를 넘어 정책 결정 과정에서 '이너서클'의 핵심 축으로, 김정은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핵심 인사로 자리 잡았다고 봤다.
김여정의 권력 상승은 이미 지난해 말 노동신문 보도에서도 잘 드러나는 부분이 있다. 김여정 개인 명의로 러시아 타스 통신사 사장에게 '도자기' 선물을 보냈다는 내용이 처음으로 공개된 것이다. 김 수석연구위원은 최고지도자가 아닌 사람이 공식적으로 해외 인사에게 선물을 보냈다는 사실이 공개된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분석했다.북한은 앞서 8차 노동당 대회에서 당 규약을 개정하면서 처음으로 당 간부들의 '임기'라는 용어를 썼다. 이는 간부들의 책임성과 실력 등을 엄격하게 따져 기용하고 필요시 책임을 묻는다는 의지가 반영됐다는 것이 김 수석연구위원의 해석이다.
이러한 기조가 반영된 것이 이번 대회에 참석한 당 중앙기관 구성원 숫자다. 과거엔 개회식 때 250명의 당 중앙위원회 위원과 후보위원을 어떻게든 전원 참석시켰는데, 북한은 이번 개회식엔 250명 중 224명 만이 참석했다고 밝혔다. 김 수석연구위원은 "26명은 '사전 아웃'됐다고 볼 수 있는데, 그 자리를 다시 보완하지 않은 것은 결국 '책임 임기제'로 바꿔가고 있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라며 "'책무를 다하지 못하면 자리를 내놔라'는 메시지를 내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선거법 개정을 통해 지난 2023년 11월 실행된 지방인민회의 대의원 선거에서 사상 처음으로 후보자 선정 단계에서 복수 후보를 추천하고 표결하는 제도를 도입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한편 김정은의 공개 활동에 빈번히 등장하는 딸 주애는 당 대회 기간엔 모습을 보이지 않다가 대회가 끝난 뒤 열린 열병식에만 참석했다. 김 수석연구위원은 애초에 주애를 당 대회와 연관시키는 것은 지금 단계에서 무리였다고 짚었다. 이번 당 대회의 중심은 '김정은 체제' 강화에 맞춰져 있고 김정은의 '수령화'는 아직 현재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지나치기 쉬운 '당 대회 무대'의 연출에도 정치적 메시지가 반영된다. 김 수석연구위원은 특히 주석단의 배경과 연단 구성을 당 대회의 '콘셉트'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요소로 꼽았다.
주석단 배경의 핵심은 주석단이 설치된 무대 뒤에 무엇을 배치하느냐에 있다. 김 수석연구위원은 시대에 따라 배치된 상징물도 달라져 왔다고 설명했다.
김 수석연구위원에 따르면 김일성 시대 때 열린 제1~4차 당 대회 때는 주석단 뒤에 노동당의 구호나 당 깃발을 배치하는 방식이 기본이었다. 이후 제5차 당 대회(1970년)에서 처음으로 김일성 초상화가 주석단 중앙에 등장했고, 이는 김일성 개인 우상화가 제도적으로 강화됐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으로 볼 수 있다고 김 수석연구위원은 짚었다.이후 제6차 당 대회에서도 김일성의 초상화가 무대에 배치됐으며, '김일성-김정일주의'를 강조하며 체제의 정당성을 부각한 김정은 집권 후 첫 당 대회(7차) 때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초상화가 무대 배경에 배치됐다. 반면 김정은의 '자신감'이 부각된 제8차와 제9차 당 대회에서는 지도자의 초상화 대신 당 깃발과 노동당 마크가 무대 배경에 배치됐다.
이번 당 대회는 형식적으로는 '김일성-김정일주의'를 계승한다는 틀을 유지하면서도 실제 정치적 메시지는 '김정은 시대 노동당'의 위상과 권위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설계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평가다. 또한 주석단 구성과 무대 연출을 보다 세련되게 꾸미는 것 역시 노동당의 권위와 위상을 강조하려는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고 김 수석연구위원은 분석했다. 당 대회에선 먼저 지난 5년간의 사업을 총 결산하는 '사업 총화 보고' 발표가 진행된다. 김 수석연구위원은 이번 9차 당 대회 사업총화 발표 체계(구성)에 '조국의 자주적 통일'이라는 표현이 공식적으로 삭제된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짚었다.
북한은 과거엔 대남정책과 대외정책을 묶어서 사업 총과 보고 체계에 '조국의 자주적 통일과 대외관계 발전을 위하여'라고 명시했는데, 이번 당 대회에선 이러한 표현이 사라졌다는 것이다.
김 수석연구위원은 개정된 당 규약 개정 전문이 공개되진 않았지만 이러한 변화가 '적대적 두 국가' 명문화 기조를 뚜렷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평가했다. '조국의 자주적 통일을 위하여'(7차), '조국의 자주적 통일과 대외관계 발전을 위하여'(8차) 순으로 북한이 당 대회 사업총화 보고 체계에서 전통적으로 유지해 온 전통적 '조국통일'이라는 과제를 9차 당 대회에서는 '대외관계의 확대강화를 위하여'(9차)로만 표현하며 형해화한 것은 남북관계를 더 이상 통일 문제로 접근하지 않겠다는 전략적 인식을 반영한 것이라는 분석이다.
또 이번에 김정은은 한국에 대한 입장을 밝히면서 "국가의 노선과 정책을 확정하는 집권당의 최고지도기관인 당 대회를 통하여 다시금 천명한다"며 한국에 대한 입장이 당 차원의 중요 결정이었음을 강조했다. 이에 대해 김 수석연구위원은 그동안 북한이 법 제종 등을 통해 핵정책을 정당화했던 과정을 언급하며 중장기적 차원에서 한국에 대한 전략을 당 규약에 명문화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김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의 당 대회 정보 공개 방식도 변화하고 있다고 짚었다. 7차 당 대회까지는 사업 총화 보고 전문이 공개돼 정책 구조를 비교적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지만, 최근에는 요약본 중심으로 공개되면서 세부 내용 파악이 제한되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이 당 대회 정보를 의도적으로 관리하면서 외부에 공개하는 수준을 조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 이번 당 대회를 계기로 임명한 당 중앙위원회 부장들의 구체적 직함을 공개하지 않은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김 수석연구위원은 향후 북한이 '두 국가' 관계를 헌법에 명문화하는 과정에서 어떤 수준까지 제도화할지도 중요한 관전 포인트라고 말했다. 북한이 적대적 국가 관계를 공식화하고 제도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대응 역시 단기적 변화보다는 중장기적인 '한반도 평화 공존 정책'과 대북전략 차원에서 일관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국가 관계 규정을 명시하는 수준을 넘어 영토 조항 등 세부 규정까지 포함할지 여부가 향후 남북관계 구조를 가늠할 기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헌법은 일반적으로 거시적인 방향을 규정하는 성격이 강한 만큼 세부 시행 조치는 하위 법령을 통해 조정될 가능성도 있다고 김 수석연구위원은 예상했다.
<용어설명>
■ 일당 지배체제
하나의 정당만이 합법적이거나 권력을 독점하는 정치 체제
■ 경로의존성
과거에 형성된 특정 관행이나 제도, 규격, 제품 등에 익숙해져 이에 의존한 탓에 시간이 지난 후 이것이 비효율적인 것으로 밝혀지거나 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되었을 때에도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사회경제적 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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