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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년 만에 간첩법 개정, 정보기관 역량은 물음표

2026.03.09 04:00

지난 2월 26일 국회에서 열린 제432회 국회(임시회) 제8차 본회의에서 형법 일부개정법률안(대안)에 대한 수정안이 재석 170인 중 찬성 163인, 반대 3인, 기권 4인으로 가결되고 있다. photo 뉴스1


지난 2월 26일 형법 98조(간첩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간첩법은 1953년 일본의 전시형법을 모방해 제정된 이후 단 한 번도 개정되지 않았으나 이번 개정안 통과로 큰 변화를 맞게 됐다.

개정안의 골자는 간첩죄 적용 대상을 기존 '적국(북한)'에서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로 넓혔다는 점이다. 또 간첩 행위를 이전보다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기존 조항에서 '적국을 위하여 간첩하거나 적국의 간첩을 방조한 자'였던 내용을 '적국 또는 외국을 위해 지령, 사주, 그 밖의 의사 연락하에 국가기밀을 탐지·수집·누설·전달·중개하거나 이를 방조한 행위'로 구체화했다. 법 개정을 통해 간첩 행위는 물론 '산업스파이'를 직접 처벌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는 평가다. 그간 우리나라의 산업 역량이 고도화되면서 외국 등에 의한 핵심 기술 유출이 빈번해졌지만 이에 대한 처벌은 어려웠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인을 포함한 외국인의 군사기지 무단 촬영 등이 늘어나는 가운데, 간첩법 개정은 군사안보 차원에서도 처벌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는 평가다. 다만 법 적용에서 실효성 문제가 제기된다. 특히 산업스파이와 관련해 외국 기업이 간첩죄 적용의 대상인 '외국 또는 이에 준하는 단체'에 포함되는지 해석이 엇갈릴 수 있다. 또 개정안에 명시된 '국가기밀'에 사기업이 가진 산업 기술도 포함될 수 있는지 모호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에 비해 국내 수사기관과 정보기관이 실제 간첩과 산업스파이를 색출할 수 있는 역량을 가졌는지에 대한 의문도 남아있다. 해체 수순에 들어간 방첩사를 비롯한 군 조직의 와해, 국가정보원 등 정보기관의 국내 정보 파트 축소 등이 진행된 상황에서 법만 만들어 놓은 것 아니냐는 것이다.

국가기밀·행위 대상 기준 '모호'

우선 이번 조항에 포함된 '국가기밀'이라는 부분이 명확하지 않다. 개정안은 국가기밀을 '지정 또는 분류된 사항'으로 규정하는데 실무적으로 어떤 기준으로 분류했는지에 따라 기밀 범위가 달라질 수 있다. 법원은 기존 판례에서 '비공지성'과 '기밀로서의 상징성' 등을 근거로 국가기밀 요건을 봐왔는데 이번 개정안과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해 형법 전문 변호사인 곽준호 법무법인 청 변호사는 "기존에 간첩이라는 것은 군사 기밀이나 외교상 기밀을 유출한 것만 해당했는데 이제는 산업스파이도 국가 기밀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 기밀이 단지 국가가 보유한 군사상 기밀뿐만 아니라 국가 이익에 중대한 침해를 끼치는 내용으로까지도 넓힌다면 해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적국'으로만 정의했던 간첩 행위 대상을 '외국에 준하는 단체'라고 넓힌 것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단순 외국인이 산업스파이로 활동하거나 국가기밀을 무단 촬영하는 행위 등은 명확한 처벌 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에 준하는 단체에는 외국 기업, 외국 NGO, 국제기구 등도 포함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어디까지를 처벌 대상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기는 것.

앞서 곽 변호사는 이에 대해 "외국인 기업을 위해 일하는 단체나 조직은 속할 수 있다"면서 "비록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더라도 그 목적 자체가 외국을 위해 모여 있을 경우 해당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변호사는 "외국 기업이 이를 악용해 작정하고 기술을 빼내더라도 기업은 포함시킬 수 없다는 해석이 나오면 무용지물"이라며 "향후 보완 입법이 필요한 이유가 된다"고 말했다.

수사·정보기관 역량 강화도 필수

간첩 행위에 대한 처벌 기준은 구체적으로 마련됐지만 이를 위한 대공수사 역량은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국가정보원의 대공수사권이 2024년 경찰로 이관된 후부터 국정원의 국내정보 파트는 힘을 쓰지 못했다. 이런 가운데 국정원은 간첩법 개정안이 통과된 직후 이례적으로 환영의 뜻을 공개적으로 내비쳤다. 국정원은 개정안 통과 다음날인 지난 2월 27일 '간첩죄 개정 관련 국가정보원 입장'을 내고 "26일 형법 제98조 개정(제98조의 2 신설)과 관련, 고도화된 외국 등의 간첩 행위로부터 국가안보와 국익을 수호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마련된 데 대해 환영한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국정원을 중심으로 한 정보기관의 역량을 다시 강화해야 한다는 시각도 나온다. 국정원 출신 모 인사는 주간조선에 "간첩법 개정안이 통과된 이후 (국정원 출신) 선후배들 얘기를 들어보면, '이제 정보기관 역량을 강화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분위기를 잡는 것 같다"며 "경찰이나 수사기관만 갖고는 실효적으로 어렵다는 것 아니겠느냐"고 전했다. 남성욱 숙명여대 석좌교수 역시 "국정원의 본질적인 기능 회복이 따라주지 않는다면 현장에서 대응은 약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경찰을 포함한 수사기관의 역량도 제도에 맞게 키워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앞서 남 교수는 "형식은 갖춰졌지만 범죄나 산업스파이를 하려는 해당 국가는 결국 바뀐 법망을 피하려 할 것"이라며 "법이 시행되더라도 현실적으로 간첩 행위자들을 잡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제 하드웨어는 만들어졌으니 소프트웨어를 키워야 한다"면서 "간첩의 위장 수법 등은 고도화하고 있기 때문에 결국 방첩과 수사 능력이 보완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태희 건국대학교 일반대학원 안보재난관리학과 교수 역시 "최근 일본은 '일본판 CIA' 출범을 준비할 정도로 속도를 내고 있다"며 "선진국과 비교해보면 경찰의 수사 역량을 강화하는 게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개정안에 담긴 형량이 이미 스파이 관련법을 시행하는 국가에 비해 비교적 '솜방망이 형량'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개정안에서 형량은 사형, 무기 또는 7년 이상의 징역으로 규정했다. 하지만 형사법 특성상 엄격한 해석을 원칙으로 삼는 탓에 수사기관이 입증에 어려움을 겪는다면 산업스파이에 대해 간첩죄를 쉽게 적용하기 어렵다. 이럴 경우 기존에 존재하는 산업기술보호법이 적용되는데 가중 처벌해도 형량은 6년이 최대다. 다시 간첩법 개정안 이전으로 도돌이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경제 스파이법'에 따라 외국 정부의 개입이 입증될 경우 최대 15년 이하의 징역형을 내릴 수 있다. 또 정부의 개입이 없이 단순 민간 유출인 경우에도 최대 10년 이하의 징역형이 내려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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