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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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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초' 직장서 '여성 노동자'로 사는 버스기사 구미정씨 이야기

2026.03.08 05:02

[3·8 세계 여성의 날]
여성 휴게실은커녕 여자 화장실도 없다
"화장실 들어갔다 깜짝…차에서 잠깐 쉬어"
4년간 스토킹 시달려…빈번한 성희롱도
서울 시내버스 '여성' 불과 1.98%에 그쳐
근무환경과 실효성 있는 성평등 교육 등 필요
여성 버스 기사 구미정씨가 지난달 28일 시내버스에 탄 승객에게 웃으며 인사하고 있다. 김지은 기자

"여성 기사가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그러면 다른 회사들처럼 그냥 평범하게 일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경기도 부천에서 서울 여의도까지 시내버스를 운전하는 구미정(59)씨는 운전이 참 즐겁다며 이렇게 말했다. 말하면서도 버스에 타는 승객들에게 "안녕하세요"라며 밝게 웃어 보였다. 미정씨는 올해로 10년차가 된 여성 버스 기사다.

운전석에 앉아 있는 미정씨를 보고 놀라는 승객들도 있다. 버스에 탄 한 아이가 "할머니, 왜 여자가 버스를 운전해?"라고 말한 적도 있다고 한다.

여성 버스 운전자는 계속 늘고 있지만 여전히 그 숫자는 적은 편이다. 서울시 버스정책과에 따르면 올해 1월 기준 시내버스 운전자는 남성 17555명, 여성 355명으로 여성 비율은 1.98%에 불과하다.

남성이 주축인 업종인 탓에 말 못할 크고 작은 어려움을 미정씨는 종종 마주한다. 여성 화장실이 없어 민망했던 과거, 여성 휴게실이 없어 불편했던 기억, 그리고 부적절한 농담과 성희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여성 휴게실은커녕 여자 화장실도 없다

미정씨가 버스를 운전하는 이유는 가장으로서 돈을 벌기 위해서다. 여느 다른 남성 기사들과 똑같다. 중소기업 경리로 일하며 최저임금도 받지 못했던 미정씨는 일자리를 구하던 중, 동네 마을버스 여성 기사를 보고 새로운 도전에 뛰어들게 됐다. '여성 버스 운전기사'라니. 생각지도 않았던 일자리에 '여성'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미정씨는 그렇게 운전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하지만 미정씨가 맞딱드린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일단 처음 일하기 시작한 마을버스 회사에서 여성은 미정씨 혼자였다. "여자는 나 혼자였는데 기사들을 관리하는 부장이 여자를 받았다고 굉장히 싫어했다. 불편한 점이 많고 일을 못 한다고"라고 씁쓸해 했다. 처음 일했던 곳이라 다소 부족했을 수는 있었지만, 그 이유가 왠지 '여성'에 대한 선입견에서 출발한 것은 아닌지 서운했다고 한다. 다른 신참 남성 기사들에게 그런 못마땅한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었다.

어쩌면 이같은 선입견은 두 번째 문제였다. 정말 근본적인 문제는 바로 화장실. 남자들만 있던 공간이다 보니 여자 화장실이 따로 없었다. 아무도 없을 때 재빨리 용변을 해결하느라 늘 가슴 졸였다고 한다. 미정씨는 "화장실 들어가다가 깜짝깜짝 놀라고 남자들이 볼일을 보고 있어 서로 당황했다"며 과거를 회상했다.  

지금 미정씨가 일하는 회사 차고지의 여자 화장실. 원래 남자 화장실이었던 공간 안에 5년 전 여자 화장실 칸이 설치됐다. 김지은 기자

일터를 옮긴 지금, 회사에는 '여성 칸'이 마련돼 있다. '여자 화장실'을 별도로 마련해주지 않는 대신 화장실 안에 '여성 칸'을 설치해 준 것이다. 5년 전 여성 버스기사들이 늘어나면서 생긴 변화였다. 여성 휴게실도 생겼다. 하지만 여전히 여성 휴게실이 없는 차고지가 많다고 한다.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 서울지부가 2024년 11~12월 서울 시내버스 여성기사 4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64.3%가 여성 휴게실이 없다고 답했다. 미정씨도 "다른 곳에서 일하는 여성 기사들이 모이면 제일 먼저 나오는 얘기가 휴게·화장실"이라며 "화장실은 남녀 공용으로 같이 쓸 수밖에 없고 휴게실에서 같이 쉬는 건 불편하니까 이용을 안 하게 된다. 자신이 운행하는 차 안에서 잠깐 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스토킹과 희롱의 대상‥일터에서 '여성' 겪는 고충

"2017년에 한 회사 동료가 쉬는 날 밥 먹자고 온 연락이 시작이었어요".

미정씨는 그때부터 4년을 동료 남성 기사의 스토킹에 시달렸다. 처음에는 에둘러, 그리고 정중히, 나중에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하지만 그 남자는 포기하지 않고 연락을 해왔다고 한다. 급기야 미정씨가 운행하는 버스에 올라타 운행 내내 따라다닌 일까지 겪고 나서야, 미정씨는 경찰의 도움을 구했다.

"남자가 많은 곳에 갑자기 여자가 나타나니까 호기심의 대상이 되더라고요. 자꾸 만나자고 연락하는 문제도 생기고".

희롱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피곤한 기색을 보이는 날 누군가 "어제 애인 만났냐"며 놀리던 말. 매번 정색하거나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러면 "농담인데 그 나이 먹어서 그것도 이해 못 하냐"며 핀잔만 돌아온다. 미정씨는 "결국 농담처럼 맞받아치거나 웃으면서 넘기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말했다. 남초 사회에서 굳은살이 배긴 담담한 대답이었다.

미정씨뿐만 아니라 많은 여성 버스기사들이 겪는 일이다. 공공운수노조 민주버스본부 서울지부 실태조사에 따르면 직·간접적인 성희롱·성폭력 경험이 있다고 답한 경우는 52.4%로 과반이 넘었다.

남녀 임금 격차 없지만…"남성들의 공간, 여성 권익 고려해야"

그래도 미정씨는 "운전이 참 즐겁다"며 여성 기사로서 장점도 많다고 말했다. "버스 타면서 '멋있어요'라고 해주는 여성분들이 꽤 있어요. 그럴 때 되게 좋아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버스 기사는 남성과 여성 간 임금 격차가 없다. 미정씨도 그 부분이 가장 큰 장점이라며 여성들도 충분히 잘할 수 있는 직업이라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더 많은 여성 버스 기사가 나오기 위해선 근무 환경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 미정씨는 "앞으로도 더 많은 기사가 필요하다. 여자들도 훌륭한 노동력이기 때문에 여성 기사를 양성하는 교육 지원이 있으면 좋겠다"며 "또 공식적으로는 채용에서 여자를 뽑겠다고 하지만 실제로 여자를 탈락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를 막을 수 있는 제도나 사회적 분위기가 만들어지면 여자들이 더 많이 진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강조했다.

민주버스본부 서울지부 이예진 한서교통지회장은 "버스 업계는 남성들이 많았고 남성들의 공간이었기 때문에 성평등이나 여성 권리에 대한 부분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가장 큰 문제는 여성 휴게실이 없다는 것이다. 화장실도 우리의 경우 1층 2곳은 남자만 써서 여자는 2층까지 가야 하는 문제 등 차별이 있다"며 "성평등 기본 교육도 받는데, 인터넷으로 각자 듣게 하는 식이라 형식적인 수준에 그친다"고 말했다.

이에 "성평등 교육은 강당에서 대면으로 실시하는 식으로 효과를 높이면 좋겠다"며 "휴게실과 화장실 문제는 관리 주체가 되는 회사들이 여성 기사의 권익을 생각해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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