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지도 눕지도 못하고 삶의 마지막을 버틴 환자
2026.03.07 19:41
| ▲ 우리는 단지 오래 사는 삶을 원하는가, 아니면 고통 없이 존엄하게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삶을 원하는가. |
| ⓒ 픽사베이 |
사람은 죽음을 앞두고 무엇이 가장 두려울까. 죽음 그 자체일까, 아니면 죽음에 이르기까지 겪어야 하는 고통의 시간일까.
오래전, 암 투병 중인 지인을 병문안한 적이 있다. 누님처럼 가깝게 지내던 분이었다. 병실에 들어갔을 때 그분은 제대로 눕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몸을 약 135도 정도 기울인 자세로 겨우 버티고 있었다. 그 자세가 아니면 통증이 너무 심해 견딜 수 없다고 했다. 하루 대부분을 그렇게 보내야 한다고 했다.
짧은 문병이었지만 병실을 나서면서 마음이 무거웠다. 그리고 일주일쯤 뒤 그분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어쩌면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죽어가는 과정의 고통이 아닐까.'
스스로 삶을 마무리 한 노학자
현대 의학은 놀라울 만큼 발전했다. 인공호흡기와 심폐소생술, 각종 연명의료 장비는 인간의 생명을 과거보다 훨씬 더 오래 유지할 수 있게 만들었다. 과거 같으면 이미 생을 마감했을 상황에서도 의료기술 덕분에 생명이 연장되는 일이 많아졌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는 또 하나의 질문과 마주하게 된다.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것이 과연 인간다운 삶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는가.
2018년 5월, 한 노학자가 마지막 여행을 떠났다. 호주의 식물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다. 당시 그의 나이는 104세였다. 그는 불치병 환자는 아니었지만 노쇠로 인해 삶의 질이 크게 떨어졌다고 판단했고 스스로 삶을 마무리하기로 했다.
그가 향한 곳은 스위스였다. 스위스는 일정한 조건 아래 의사의 도움을 받아 생을 마감하는 선택을 허용하는 나라다. 구달 박사는 현지 존엄사 단체의 도움을 받아 생을 마감했다. 그는 마지막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단지 죽을 권리를 원할 뿐이다."
이 사건은 세계적으로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한편에서는 인간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다른 한편에서는 생명의 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질문도 던져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조력 존엄사 또는 의사 조력 자살을 법적으로 허용하는 나라들은 적지 않다. 대표적으로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에서는 일정한 조건 아래 의사가 직접 환자의 생을 마감하도록 돕는 적극적 안락사가 법적으로 허용돼 있다. 또 캐나다와 스위스 그리고 미국 일부 주에서는 환자가 스스로 선택하는 의사 조력 자살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이들 국가는 세계적으로 인권과 민주주의 수준이 높은 나라들로 평가받는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다. 이 나라들이 생명의 존엄성을 가볍게 여기거나 인권 감수성이 부족해서 이런 제도를 도입한 것일까. 오히려 그 반대일지도 모른다. 극심한 고통 속에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 스스로 선택할 권리 역시 인간의 존엄과 연결된 문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조력 존엄사 합법화에 국민 82%가 찬성
이 문제는 더 이상 먼 나라 이야기만은 아니다. 우리나라 역시 2018년부터 연명의료결정법을 시행하고 있다. 회복 가능성이 없는 임종 과정의 환자가 심폐소생술이나 인공호흡기 착용 등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받지 않거나 중단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제도 시행 이후 삶의 마지막을 스스로 준비하려는 움직임도 꾸준히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등록자는 200만 명을 넘어섰다(보건복지부 발표, 2023년 10월 12일 / 연합뉴스 보도). 이는 제도가 시행된 지 약 5년 만에 나타난 변화다.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것보다 인간다운 마지막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볼 수 있다.
존엄한 죽음에 대한 국민 인식도 변하고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웰다잉 인식 조사'에 따르면 조력 존엄사 합법화에 대해 국민의 약 82%가 찬성한다는 결과가 나타났다(2024년 4월 23일~5월 7일 조사 / 2025년 2월 연합뉴스, MBC 등 보도). 같은 조사에서 응답자의 92%는 자신이 말기 환자가 될 경우 무의미한 연명의료를 중단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좋은 죽음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는 통증 최소화가 가장 많이 꼽혔다.
이러한 결과는 많은 사람들이 단순히 오래 사는 것보다 고통 없이 인간다운 마지막을 맞이하는 삶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러한 여론이 곧바로 제도 도입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이며, 제도가 잘못 설계될 경우 생명을 경시하는 사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역시 충분히 경청해야 한다.
다만 이미 여러 선진국에서는 조력 존엄사 제도를 시행하면서 환자의 자발적 의사 확인, 복수의 의사 판단, 일정 기간 숙려 절차, 독립적인 심의 과정 등 엄격한 절차와 검증 장치를 함께 마련해 두고 있다. 이러한 사례들을 참고해 철저한 절차와 검증 체계를 갖춘다면 우리 사회에서도 충분히 신중한 논의가 가능하지 않을까.
또한 환자의 의사가 존중되고 무의미한 연명치료가 줄어든다면 건강보험 재정에도 일정 부분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가능성 역시 생각해 볼 수 있다.
우리가 지금 던져야 할 질문
존엄사 논의의 핵심은 죽음을 권장하는 데 있지 않다. 오히려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의 존엄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라는 질문에 가깝다.
죽음은 누구도 피할 수 없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까지 인간다운 선택이 존중되는 사회라면 우리는 삶을 조금 더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 던져야 할 질문은 이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단지 오래 사는 삶을 원하는가, 아니면 고통 없이 존엄하게 삶의 마지막을 맞이하는 삶을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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