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로] 패자의 품격, 2등의 인터뷰
2026.03.06 23:38
최가온 부상에 눈물 클로이 김
승자의 환호보다 큰 울림 전달
금메달 놓쳤지만, 품격 빛났다
메이저 테니스 대회 결승전이 끝나면 곧바로 열리는 시상식에서 승자와 패자가 짧은 연설을 한다. 챔피언 트로피를 차지한 선수는 박수 갈채를 만끽하면서 흥분과 기쁨에 겨워 마이크를 잡지만, 그 옆에 ‘들러리’처럼 서 있는 준우승자 입장에선 힘들고 곤욕스러운 시간이다. 패배의 쓰라림을 달랠 시간도 없이 전 세계로 중계되는 카메라 앞에서 ‘패배 소감’을 말하는 것이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것처럼 잔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미국의 테니스 선수 제니퍼 브레이디는 2021년 호주오픈 여자 단식 결승전에서 패한 뒤 코트에서 싸우는 것보다 준우승자 연설이 더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평생의 꿈 앞에서 좌절하고서 5분도 안 돼 상대를 축하하고, 대회 관계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말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여자 테니스 세계 1위 아리나 사발렌카는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을 만큼 힘겨운 준우승자를 시상식 내내 참석시키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했다.
하지만 패자(敗者)의 입에서 나오는 한마디가 승자의 환호보다 깊은 울림을 남길 때가 있다. 지난달 1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오픈 남자 단식 결승전이 그랬다. ‘메이저 25회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에 도전한 서른아홉 살 노장 노바크 조코비치는 현 세계 1위 카를로스 알카라스에게 무릎을 꿇었다. 어쩌면 선수 생활 마지막 메이저 우승 기회를 놓친 조코비치는 시상식에서 담담히 마이크를 들었다.
“이겼을 때와 졌을 때 연설을 모두 준비해 왔다”는 농담으로 말문을 연 그는 자신보다 열여섯 살 어린 알카라스를 “의심의 여지 없이 모든 것을 이뤄낼 수 있는 선수”라고 추어올렸다. 현역에서 은퇴하고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본 라파엘 나달을 향해서는 “오늘 밤 난 당신과 알카라스, 두 명의 스페인 전설을 상대로 혼자 싸워야 했다”고 말해 코트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패배의 아픔과 우승을 놓친 실망감을 유머로 승화시킨 거장의 여유였다.
지난달 끝난 밀라노 코르티나 동계 올림픽에서도 많은 사람을 감동시킨 ‘2등의 인터뷰’가 있었다. 미국의 클로이 김은 스노보드 여자 하프파이프에서 2차 시기까지 1위를 달리며 올림픽 3연속 금메달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러나 열여덟 살 최가온이 마지막 3차 시기에서 믿을 수 없는 연기로 역전에 성공했고, 클로이 김은 아쉽게 은메달에 머물렀다. 그는 몰려든 취재진 앞에서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독하게 노력하는 최가온만큼 금메달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다. 어릴 때부터 봐온 최가온이 이렇게 성장하다니 너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이에 최가온도 “1차 시기 때 넘어져 부상을 당했을 때 클로이 김 언니가 울먹이면서 나를 위로해 줘 너무 고마웠다”고 했다.
쇼트트랙 최초의 단일 종목 올림픽 3연패(連霸)에 도전한 최민정도 마찬가지였다. 여자 1500m 결선에서 레이스 막판 대표팀 후배에게 추월당한 그는 결승선을 통과한 뒤 김길리에게 “네가 1등이라 더 기쁘다”고 속삭였다. 경기 후 기자회견에선 “내가 선배들을 보면서 배운 것처럼 길리가 저를 보면서 꿈을 키워 오늘 같은 결과를 낸 게 뿌듯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제 편하게 쉴 수 있을 것 같다”며 올림픽 은퇴를 선언했다.
승자독식(勝者獨食)인 스포츠 세계에서 ‘패자의 품격’을 보여주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맞서 싸운 상대를 존중하고,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굳이 우리 정치판을 들먹이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비록 금메달은 놓쳤지만, 클로이 김이나 최민정의 인터뷰를 보면서 왜 이들이 자신의 종목에서 ‘전설’로 대우받는지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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