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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 신드롬…‘왕과 사는 남자’ 관객 1,000만 돌파

2026.03.06 21:00

장항준 감독의 첫 사극 도전, 천만 흥행과 함께 관광·축제로 번진 영월 신드롬
천만 관객을 사로잡은 웰메이드 사극, 스크린 밖 영월까지 뒤흔든 ‘왕사남’ 열풍
장항준 감독의 첫 사극 연출작인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마침내 누적 관객 수 1,000만 명을 돌파하며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금자탑을 쌓아 올렸다. 이 영화는 1457년 계유정난 이후 단종의 유배지였던 강원도 영월 청령포를 배경으로, 마을의 부흥을 위해 유배지를 자처한 촌장 엄흥도와 왕위에서 쫓겨난 어린 선왕 이홍위(단종)의 묵직한 인간적 교류를 그려내며 극장가에 완벽한 활력을 불어넣었다. 흥행 기록부터 웰메이드 사극을 탄생시킨 비하인드 스토리, 역사적 사실과의 차이점, 그리고 전국을 휩쓸고 있는 강원도 영월 관광 특수까지 ‘왕사남’ 신드롬에 대해 알아본다.



범죄도시 4 이후 2년 만의 천만 쾌거, 사극으로는 12년 만의 대기록

‘왕과 사는 남자‘의 1,000만 관객 돌파는 침체기에 빠져있던 한국 영화계의 비관론을 보기 좋게 깨부순 상징적인 사건이다. 개봉일인 지난달 4일부터 박스오피스 1위에 오른 이 작품은 개봉 13일 차에 손익분기점인 260만 명을 돌파했다. 이후 거침없는 흥행 질주를 이어가며 개봉 18일 차에 500만 명, 20일 차에 600만 명, 26일 차에 800만 명을 넘어섰고, 지난 2일 삼일절 연휴의 수혜를 받아 900만 고지까지 점령한 뒤 마침내 6일 1,000만 관객의 위업을 달성했다.

이는 2024년 5월 ‘범죄도시 4’ 이후 약 1년 10개월 만에 탄생한 천만 영화이자, 사극 장르로는 2014년 ‘명량’ 이후 무려 12년 만에 달성한 진기록이다. 흥미롭게도 ‘왕의 남자’, ‘광해, 왕이 된 남자’에 이어 제목에 ‘왕’과 ‘남자’가 들어간 조선 시대 사극 세 편이 모두 천만 영화에 등극하는 흥행 마법도 증명됐다.



◇ 스크린을 장악한 배우들의 압도적 열연과 캐릭터 비하인드

이 영화가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가장 큰 원동력은 구멍 없는 배우들의 압도적인 연기력과 캐릭터의 입체성에 있다. 광천골 촌장 엄흥도 역의 유해진은 전반부의 능청스러운 생활 연기부터 후반부 사약을 받는 왕을 위해 직접 활시위를 당겨야 하는 처절한 비극의 순간까지, 희극과 비극을 넘나드는 신들린 연기로 극을 멱살 잡고 끌고 갔다는 극찬을 받았다.

어린 선왕 이홍위(단종)를 연기한 박지훈은 ‘아이돌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완벽히 떼어냈다. 그는 피골이 상접한 단종의 모습을 구현하기 위해 사과 한 쪽만 먹으며 15kg을 감량했고, 촬영 중에도 버석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물조차 마시지 않는 투혼을 발휘했다. 무기력했던 소년에서 군왕의 기개인 '범의 눈'을 회복해가는 그의 눈빛 연기는 관객들에게 깊은 잔상을 남겼다.

당대 최고의 권력자 한명회를 연기한 유지태의 변신도 놀랍다. 기존 미디어에서 묘사되던 얇고 가벼운 간신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역사적 사료에 기록된 ‘기골이 장대하고 무예가 출중한’ 한명회를 복원했다. 이를 위해 몸무게를 100kg까지 증량(벌크업)하고 눈가에 테이핑을 해 사나운 인상을 연출하며 세조가 등장하지 않음에도 묵직한 공포와 위압감을 선사했다. 이외에도 단종을 보필하는 매화 역의 전미도, 촌장의 아들 태산 역의 김민, 특별출연으로 극의 무게감을 더한 금성대군 역의 이준혁까지 모든 배우의 연기 조화가 빛났다.



◇ 철저한 고증과 우연이 빚어낸 영화적 디테일

장항준 감독과 제작진은 시대의 공기를 스크린에 담기 위해 미장센과 소품에 심혈을 기울였다. 심현섭 의상감독은 약 500벌의 의상을 직접 제작했는데, 단종에게는 계유정난 이후 상왕 시절 실제로 착용했던 흑색 곤룡포를 고증해 입혔고, 그의 슬픈 처지를 대변하기 위해 흰색과 파스텔 톤의 도포를 활용했다. 배정윤 미술감독은 강원도 기후 특성에 맞춘 너와집을 세트로 짓고, 시멘트 대신 황토로 기왓장을 구워내며 사실감을 극대화했다.

영화의 명장면 중 하나인 엔딩의 ‘노랑나비’와 ‘물장구’ 장면에는 숨겨진 비하인드가 있다. 후반부 엄흥도가 단종을 그리워하는 장면에 등장한 노랑나비는 원래 CG로 처리될 예정이었으나, 실제 촬영 현장에서 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유해진의 어깨에 앉는 기적이 일어나며 그대로 엔딩에 사용됐다고 한다. 또 단종이 강가에서 손으로 물장구를 치는 마지막 장면은 쉬는 시간 박지훈의 모습을 본 유해진이 “실제 단종이라면 고향을 그리워하며 저렇게 물장구를 치지 않았을까”라고 감독에게 제안하면서 탄생한 결과물이다.



◇ 역사적 사실(Fact)과 허구(Fiction)의 경계, 그리고 엇갈리는 시선

영화는 역사적 뼈대 위에 과감한 상상력을 덧입힌 ‘팩션(Faction)’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영화에서는 엄흥도가 광천골의 ‘촌장’으로 등장해 마을을 위해 유배객을 유치하려 하지만, 실제 역사 속 엄흥도는 영월군 관아 소속의 향리 우두머리인 ‘호장’이었다. 또 영화에서 위압감을 뽐내며 영월에 직접 내려와 단종을 압박하는 한명회의 행보 역시 권력을 상징화하기 위한 영화적 각색일 뿐, 그가 영월을 방문했다는 역사적 기록은 없다.

가장 큰 차이는 단종의 최후에 있다. 영화는 단종이 마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사약을 거부하고, 엄흥도에게 부탁해 활시위로 교살당하는 존엄하고 주체적인 죽음을 택한 것으로 묘사한다. 하지만 실제 ‘세조실록‘에는 자결로, 야사인 ‘병자록’ 등에서는 하급 관리(통인)에 의한 살해로 기록돼 있다. 영화는 단종을 죽인 통인과 시신을 수습한 의인 엄흥도를 동일 인물로 설정하는 과감한 해석을 시도한 것이다.

다만 이러한 영화적 선택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심용환 역사학자는 영화가 과감한 시도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1920년대 이광수의 소설 ‘단종애사’가 심어놓은 ‘비극적이고 착한 임금’이라는 근대적 통념을 반복하는 데 그쳤다고 지적했다. 특히 조선 전기 강원도의 현실과 동떨어진 통돼지 바비큐, 흰쌀밥과 고깃국에 대한 과도한 집착, 방금 꺼내 입은 듯 지나치게 깨끗한 한복 등은 인위적인 고증의 아쉬움으로 꼽혔다. 관람객들 사이에서도 전반부의 낡은 코미디 연출과 투박한 호랑이 CG 처리 등은 약점으로 지적되기도 했다.



◇ 극장 밖으로 번진 ‘과몰입’ 신드롬, 영월군의 관광 활황

영화가 던진 묵직한 정서적 여운은 극장을 넘어 오프라인 관광지로 이어지며 거대한 사회문화적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다. 관객들은 단종의 유배지였던 영월의 청령포를 직접 찾으며 영화의 감동을 되새기고 있다.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배를 타야만 들어갈 수 있는 육지 속의 섬 청령포는 설 연휴 기간 방문객이 전년 대비 5배 이상 폭증했으며, 오전 9시에 도착해도 100m 이상 줄을 서 3시간을 대기해야 할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이에 영월군에서는 원활한 관리를 위해 오후 4시 이후 도착하는 방문객의 입장을 제한하는 공지를 띄우기도 했다.

단종이 생의 마지막을 맞이한 영월 ‘관풍헌’과, 엄흥도가 목숨을 걸고 시신을 거두어 조성된 단종의 무덤 ‘장릉’에도 추모객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특히 영화에 과몰입한 네티즌들이 세조의 묘인 ‘광릉’ 지도 앱 리뷰 페이지에 낮은 별점과 함께 비판 글을 쏟아내 임시 폐쇄되는 해프닝이 벌어진 반면, 단종의 장릉에는 훈훈한 추모 리뷰가 이어지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여행객들은 영월 서부시장에서 메밀전병, 올챙이국수, 어수리 나물 정식(단종의 밥상), 꼴두국수 등 지역 향토 음식을 즐기며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다.

◇지난해 단종문화제에서 재현된 단종 국장 모습. 강원일보 DB


◇4월 '단종문화제'로 결집하는 폭발적 시너지, K-콘텐츠의 선순환

이러한 전국적인 흥행 열기는 영월에서 열리는 지역 축제에서 절정에 달할 전망이다. 영월군과 영월문화관광재단은 올 4월 24일부터 26일까지 사흘간 장릉과 청령포 일대에서 ‘왕의 귀환, 희망의 서막’이라는 주제로 ‘제59회 단종문화제’를 대대적으로 개최한다. 올해 단종 문화제에는 영화의 대흥행에 힘입어 역대 최고 수준의 인파가 몰릴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국민적 열기에 보답하기 위해 영화의 주역들도 발 벗고 나섰다. 장항준 감독은 당초 겹쳐있던 해외 영화제 일정까지 전격 취소하고 4월 24일 축제에 참석해 ‘단종의 이야기’를 주제로 특강을 진행하며 지역민들과 소통할 예정이다. 또한 이홍위 역의 박지훈은 영월에 대한 애정을 담은 축제 홍보 영상을 직접 제작해 전달하기로 했으며, 엄흥도 역의 유해진과 한명회 역의 유지태 역시 축하 영상 전달 및 영월 직접 방문 일정을 긍정적으로 조율하고 있다. 한 편의 웰메이드 영화가 문화재 탐방과 미식 여행, 지역 축제 활성화로까지 이어지며, 훌륭한 K-콘텐츠가 어떻게 지역 경제를 살리고 역사를 현재로 호출하는지 보여주는 완벽한 선순환 모델이 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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