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사남' 천만] '왕의 남자'부터 '왕과 사는 남자'까지…천만 사극 흥행 공식
2026.03.06 19:40
시대 고증한 볼거리…촬영 장소는 관광지로
[쇼박스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정래원 기자 =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6일 천만 관객을 돌파하며 역대 네 번째 '천만 사극'이 됐다.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는 사극 중 가장 먼저 천만을 달성한 '왕의 남자'(2005)와 '명량'(2014), '광해, 왕이 된 남자'(2012)에 이어 '천만 사극' 계보를 잇게 됐다.
단종의 유배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해 '아는 이야기'란 점에서 사실상 결말을 알고 보는 영화지만, 재미와 감동이 있다는 입소문에 세대를 아우른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였다.
[한국영상자료원 KMDb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왕과 사는 남자'보다 앞서 천만 관객을 달성한 '명량'과 '광해, 왕이 된 남자', '왕의 남자' 중 '명량'을 제외하면 우연히도 나머지 세 작품은 모두 제목에 '왕'과 '남자'가 들어간다.
조선 왕조의 실제 왕에 얽힌 이야기지만, 왕을 전면에 내세우기보다는 권력관계와 무관하게 살아가던 주변 인물들에 초점을 맞추는 변주를 통해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서사를 만들어냈다.
정지욱 평론가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단종을 다 알지만, 그 사람, 인물에 대한 자세한 이야기는 잘 모른다"며 "잘 알지 못하던 한 인물로서의 단종 이야기를 평민인 엄흥도와의 '브로맨스'로 그려낸 점이 감동의 요인으로 다가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왕과 사는 남자'를 비롯한 '천만 사극'의 공통점은 이렇게 정사가 아닌 야사를 다루고 있다는 점"이라며 "비록 영화적으로 상상해낸 것이라도 지나치게 허구적으로 다가오지 않고 몰입도를 높이는 비결"이라고 했다.
'왕과 사는 남자'는 단종의 삶이 관통하지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에는 왕이 아닌 유배지의 사람들, 특히 촌장 엄흥도가 있다.
권력의 중심이 아닌 주변 인물의 시선에서 왕을 바라보는 구조는 관객이 역사에 보다 쉽게 접근하도록 만든다.
이 같은 방식은 2005년 1천51만 관객을 동원한 '왕의 남자'와도 맞닿아 있다.
'왕의 남자'는 조선 연산조를 배경으로 하고 연산(정진영 분)도 극 중 주요 인물로 등장하지만, 왕보다는 두 광대 공길(이준기)과 장생(감우성)의 이야기를 중심에 뒀다.
또 다른 '천만 사극'인 '광해, 왕이 된 남자'는 광해(이병헌)가 자신을 대신할 대역을 찾아냈고, 이 '대역 왕'이 왕의 예법을 벼락치기로 익혀 백성들을 다스리기까지 한다는 신선한 설정으로 인기를 끌었다.
왕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평범한 인물인 왕의 대역은 권력다툼 속에서 두려움을 느끼는 왕의 인간적인 모습을 피부로 느끼게 하는 효과를 냈다.
[한국영상자료원 KMDb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당대 삶을 들여다볼 볼거리와 충실한 고증은 극장의 큰 스크린에서 '보는 맛'을 더하는 요소가 됐다.
역대 사극영화 가운데 가장 많은 1천761만 관객을 동원한 '명량'은 진도 울돌목을 배경으로 한 실감 나는 해상전투 장면이 화제를 모았다.
'왕과 사는 남자'를 재미있게 본 관객들이 영화 속 배경인 영월 청령포를 찾아 나서듯이, 2014년엔 '명량' 흥행 돌풍으로 진도 명량대첩지와 충무공 전적비, 명량대첩비 등 주요 유적지를 찾는 이들이 크게 늘었다. 그 해 열린 명량대첩축제에는 사상 최대 규모인 44만 명이 울돌목을 찾았다.
순제작비가 105억원의 중예산 영화인 '왕과 사는 남자'는 화려한 전투신 같은 볼거리가 등장하진 않는다. 대신 마을 사람들이 입고 먹는 것, 집에 두고 쓰던 물건들 같은 디테일한 부분까지 고증하며 그 시대 안에 들어간 듯한 생동감을 준다.
제작진은 광천골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담아내기 위해 당대의 풍속사 자료를 조사하며 인물들의 일상을 채워 나갔다.
배정윤 미술 감독은 "강원도 산골 마을의 생활감을 보여주는 데 주력했다"며 "사냥도구나 낚시용품, 채집해온 나물이나 말리는 생선 종류까지 확인하면서 작업했다"고 설명했다.
사극 영화에서 특히 중요한 배우들의 분장을 비롯해 복장, 호칭까지 역사적 자문과 인물의 특색을 고민하며 작업했다.
송종희 분장 감독은 "상투 머리와 수염, 쪽머리 등 외형적 틀로 사람의 신분과 나이, 혼인 여부가 드러났던 조선 초기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동시에 영화 속 입체적인 캐릭터들의 개성이 고스란히 드러날 수 있도록 했다"고 말했다.
역사 자문에 참여한 김순남 고려대학교 문화유산융합학부 교수는 "'대군마마'라 불러야 할지, 아님 '대군자가'라 불러야 할지, 또 영월로 유배 갈 때 수행 인원이 어떤 옷을 입었는지 계속 찾았다.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일이었다"고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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