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 와인의 진화④ 샤르도네 이야기>
저명 와인 교육자 일레인 추칸 브라운과 떠나는 ‘캘리포니아 와인 지도의 재구성’/‘파리의 심판’ 계기 가격·품질 모두 잡은 ‘미드티어 샤르도네’ 대중화 이끌어/버터리한 맛 극대화한 클래식 캘리포니아 샤르도네도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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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리의 심판 유산 캘리포니아 화이트 와인 이야기 세미나 와인. 최현태 기자 |
1976년 ‘파리의 심판’에서 샤토 몬텔레나가 만든 샤르도네가 부르고뉴의 유명 도멘들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면서 캘리포니아에서 생산자들은 큰 자신감을 갖게 됩니다. 특히 샤토 몬텔레나의 파리의 심판 스토리는 영화 ‘와인 미라클(원제 보틀 쇼크·Bottle Shock)’로 제작되면서 전 세계 와인시장에 나파밸리 샤르도네에 큰 관심을 집중시킵니다. 이에 생산자들은 최고의 샤르도네를 만들 수 있는 와인 산지를 개발하고 다양한 양조 방식을 시도하면서 품질을 끌어 올려 샤르도네를 나파밸리, 나아가 캘리포니아, 오리건, 워싱턴을 대표하는 화이트 품종으로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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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미나를 진행하는 일레인 추칸 브라운. 최현태 기자 |
◆‘갓성비’ 미드티어 샤도네이 탄생
▶캔달 잭슨 빈트너스 리저브 샤르도네(Kendall Jackson Vintner’s Reserve Chardonnay) 2024
와인 평론가나 소비자들은 보통 나파밸리처럼 유명한 산지나 규모가 작은 싱글 빈야드 포도로만 만든 와인이 휠씬 더 뛰어난 맛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와인 레이블에 미국포도재배지역(AVA)이 단순히 ‘Califonia’로 적혀 있는 와인은 흥미가 다소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캘리포니아의 전역의 포도를 섞어서 만들기 때문입니다. 실제 ‘California’ 표기를 쓰는 와인들은 센트럴 밸리라고 부르는 내륙의 인랜드 밸리(Inland Valley) AVA에서 대형 와이너리들이 대량 생산하는 저가 와인들이 많이 있습니다. 인랜드 밸리 와인 생산량은 캘리포니아 전체 생산량의 70~80%를 차지할 정도입니다.
물론 이처럼 저가 와인도 많지만 어디까지나 선입견과 편견에 불과합니다. 좋은 산지의 포도를 써도 규정상 특정 세부 AVA 포도가 85% 이상 들어가야 그 AVA를 표기할 수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냥 ‘California’로 표기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보통 이런 생산자들은 다양한 산지의 캐릭터가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밸런스가 뛰어난 와인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여러 지역 포도를 섞어서 와인을 만들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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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캔달 잭슨 빈트너스 리저브 샤르도네. 최현태 기자 |
대표 와인이 한국 소비자들에게도 아주 익숙한 캔달 잭슨 빈트너스 리저브 샤르도네입니다. 1982년 캔달 잭슨을 설립한 제시 잭슨(Jess Jackson)은 처음부터 여러 지역에서 포도를 소싱하는 방식을 선택합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캘리포니아 샤르도네는 이미 1976년 파리의 심판을 통해 최고의 품종이 될 잠재력이 충분하다는 사실을 입증했습니다. 하지만 제시 잭슨이 와이너리를 설립할 당시만해도 샤르도네는 많이 재배하던 품종이 아니어서 포도를 쉽게 확보하기 어려웠습니다. 생산량이 많지 않으니 일반 소비자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캔달 잭슨은 고민 끝에 생산량도 늘리고 밸런스를 유지하기 위해 여러 지역의 포도를 섞은 샤르도네를 고안해 냈는데 이게 ‘신의 한수’가 됩니다.
캘리포니아 와인 산업은 파리의 심판 당시만해도 여러 품종을 섞어 만든 저가 와인 이 지배하던 시절입니다. 품질이나 실제 산지와 상관없이, 소비자에게 익숙한 유럽의 유명 산지 이름으로 통칭하며 레이블에 표기했기 ‘제네릭(generic) 와인’으로 불렸습니다. 화이트는 ‘샤블리(Chablis)’, 레드는 ‘버건디(Burgundy)’, 독일 리슬링 스타일은 라인 와인(Rhine Wine), 이탈리아 스타일 레드는 키안티(Chianti)로 적는 식입니다. 어떤 포도로 만들었냐보다 ‘얼마나 저렴하고 양이 많은가’가 더 중요했습니다.
그러다 파리의 심판을 계기로 1970년대 말에서 1980년대에는 ‘파이팅 버라이어티(Fighting Variety)’ 개념이 등장합니다. 저가 제네릭 와인과 경쟁하기 위해 만든 품종 표시 와인을 말하며, 단일 품종만으로도 충분히 높은 품질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지금은 단일 품종 와인이 전혀 낯설지 않지만, 당시에는 단일 품종 와인이 흔하지 않던 시절입니다.
이런 파이팅 버라이어티를 이끈 선두 주자가 캔달 잭슨입니다. 품질 좋은 여러 지역 포도를 블렌딩해 단일 품종으로 만든 빈트너스 리저브 샤르도네를 1983년 시장에 처음 선보입니다. 이 와인은 중간 가격대 와인을 뜻하는 ‘미드 티어(mid-tier)’의 시초로 기록됩니다. 이보다 앞서 캔달 잭슨은 설립 초기 두 가지로 와인을 출시합니다. 대량 생산하는 저가 벌크 와인과 소량 생산하는 고가의 파인 와인입니다. 여기에 여러 포도밭에서 소싱한 단일 품종 샤르도네를 추가한 겁니다. 가격대는 벌크 와인보다 조금 높고 프리미엄 와인보다 낮은 ‘미드 티어’로 설정합니다. 이 개념은 당시 매우 획기적이었습니다. 벌크 와인보다 품질은 확실히 좋지만 프리미엄 와인처럼 지나치게 비싸서 시도조차 하기 어려운 와인이 아닌, 아주 합리적인 와인이라는 명확한 메시지를 소비자에게 전달합니다. 이는 소비자에게는 확실한 대안이 될 수 있었기에 캔달 잭슨은 ‘미드 티어 와인의 창시자’라고 불리게 됩니다. 캔달 잭슨 샤르도네는 대량 생산을 통해 현재 미국에서 가장 많이 판매되는 와인 중 하나로 자리잡았고 샤르도네의 대중화를 이끈 일등공신으로 평가됩니다.
양조 방식에서도 특징이 있습니다. 단순한 오크 숙성이 아니라 프렌치 오크와 아메리칸 오크를 반반씩 사용하는데, 이런 양조는 캘리포니아에서 흔한 방식은 아닙니다. 뉴 오크 역시 프렌치와 아메리칸을 섞어 사용해 풍성하고 복합적인 아로마를 형성합니다. 특히 캔달 잭슨 리저브 샤르도네는 ‘쿨 클라이밋 지역 최고급 산지 포도를 섞어 최고의 밸런스를 만든다’는 컨셉도 도입합니다. 실제 소노마(Sonoma·잘 익은 과실 풍미), 멘도시노(Mendocino·높은 산도와 구조감 시트러스 풍미), 몬터레이(Monterey·선명한 산도), 산타 바바라(Santa Barbara·세이보리) 등 유명 산지의 포도만 사용해 가격은 낮췄지만 프리미엄 품질을 만들어 냅니다. 더구나 포도밭별로 구분한 무려 1000개의 로트(lot)를 모두 따로 발효한 뒤 나중에 블렌딩합니다. 밸런드가 뛰어날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캔달 잭슨 빈트너스 리저브 샤르도네는 바닐라와 꿀의 향이 섬세하게 얽혀 있으며, 토스티한 오크 향이 깊이감을 더합니다. 파인애플, 망고, 파파야의 열대 과일 풍미가 풍부하게 느껴지며, 입안에서 터지는 시트러스 노트가 특징입니다. 버터와 구운 오크의 힌트가 부드럽고 긴 여운을 남깁니다. 알코올 도수는 13.5%, 4개월 오크 숙성합니다. 프렌치 오크 47%(새 오크 4%), 미국산 오크 46%(새 오크 6%)를 섞어 만듭니다. 아영FBC 수입
◆클래식 ‘버터리 샤르도네’ 탄생
▶롬바우어 카르네로스 샤르도네(Rombauer Carneros Chardonnay) 2024
캔달 잭슨이 부드럽고 잔당감 있는 샤르도네라면 롬바우어는 이를 보다 극대화해 버티리한 샤르도네를 만들어냅니다. ‘캘리포니아 샤르도네 버터리하다’는 캐릭터를 만든 장본인입니다. 롬바우어 샤르도네는 보통 잘 익은 열대 과일 향과 버터, 크림, 파인애플, 바닐라, 구운 토스트의 풍미가 매우 강렬하며, 질감이 아주 크리미하고 묵직합니다. 알코올 도수도 14% 이상으로 꽤 높은 편입니다. 완전히 잘 익은 포도를 사용하고, 양조과정에서 100% 젖산 발효를 거쳐 뾰족한 사과산을 둥글둥글하게 만듭니다. 특히 새 오크통 숙성 비중을 대폭 늘려 특유의 고소하고 리치한 맛을 극대화합니다. 실제 캔달 잭슨은 새 오크 비율중이 약 10%인 반면, 롬바우어는 약 37%까지 올라갑니다.
사실 이런 스타일은 요즘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립니다. 하지만 다양한 갤리포니아 샤르도네 스타일의 중요한 한 축을 완성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실제 롬바우어의 시장 영향력은 대단합니다. ‘롬바우어 스타일’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확고한 팬덤을 보유하고 있으며, 미국의 많은 레스토랑 와인 리스트에서 빠지지 않는 베스트셀러입니다. 1982년 첫 출시된 롬바우어 역시 대량 생산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샤르도네를 널리 알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캔달 잭슨이 캘리포니아 전역에서 포도를 소싱하는 반면, 롬바우어는 주로 나파밸리와 소노마에서 포도를 소싱합니다.
일반적으로 캘리포니아는 따뜻한 지역이라고 생각하지만, 샌프란시스코 만의 서늘한 기후가 긱접 들어오는 노스코스트의 나파 밸리 남쪽이나 소노마 코스트는 해안가 포도밭은 지속적으로 차가운 해류와 해풍의 영향을 받아 일조량이 뛰어나면서 일교차가 크게 납니다. 이에 따라 포도밭 위치에 따라 풍미와 캐릭터가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런 다양한 캐릭터를 버무리기 위해 여러 지역의 포도를 소싱해 블렌딩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노스코스트 레이크 카운티는 조금 더 따뜻한 기후에서 오는 단맛을 제공하고, 소노마 카운티는 뛰어난 과실 풍미를 부여합니다. 센트럴코스트의 산타바바라 카운티 포도는 세이보리한 캐릭터와 높은 산도가 도드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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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롬바우어 설립자 코너(오른쪽)와 조안 롬바우어. 홈페이지 |
롬바우어는 독일 유명 와인산지 라인가우(Rheingau) 출신 가문의 후손인 코너 롬바우어(Koerner Rombauer)와 조안 롬바우어(Joan Rombauer) 부부가 1980년 설립했습니다. 고모 할머니인 이르마 롬바우어(Irma Rombauer)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요리책 중 하나인 ‘더 조이 오브 쿠킹(The Joy of Cooking)’의 저자입니다.
롬바우어 카르네로 샤르도네는 나파밸리 남부와 산 파블로 베이의 서늘한 기후를 직접 받은 로스 카르네로스의 샤르도네로 만듭니다. 덕분에 산도가 비교적 산뜻한 스타일입니다. 옐로 피치, 잘 익은 멜론, 밝은 시트러스 노트로 시작해 망고의 열대 과일, 바닐라와 베이킹 스파이스, 풍부하고 크리미한 텍스처, 바닐라와 오크, 약한 버터 뉘앙스가 느껴지는 전형적인 클래식 캘리포니아 버터리 샤르도네입니다. 카르네로스의 서늘한 기운과 롬바우어 스타일이 잘 어우러진 와인으로 평가됩니다. 알코올 도수는 14.6%, 프렌치와 아메리칸 오크에서 9개월 숙성(새 오크 37%) 합니다. 새 오크 비중이 높기 때문에 롬바우어는 캔달 잭슨보다 양조바용이 약 3배 더 들어갑니다. 와인투유코리아 수입. <캘리포니아 와인의 진화⑤에서 계속>
최현태 기자는 국제공인와인전문가 과정 WSET(Wine & Spirit Education Trust) 레벨3 Advanced, 프랑스와인전문가 과정 FWS(French Wine Scholar), 부르고뉴와인 마스터 프로그램, 뉴질랜드와인전문가 과정, 캘리포니아와인전문가 과정 캡스톤(Capstone) 레벨1&2를 취득한 와인전문가입니다. 2018년부터 매년 유럽에서 열리는 세계최대와인경진대회 CMB(Concours Mondial De Bruxelles) 심사위원, 2017년부터 국제와인기구(OIV) 공인 아시아 유일 와인경진대회 아시아와인트로피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소펙사 코리아 한국소믈리에대회 심사위원도 역임했습니다. 독일 ProWein, 이탈리아 Vinitaly 등 다양한 와인 엑스포를 취재하며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미국, 호주, 독일, 체코, 스위스, 조지아, 중국 등 다양한 국가의 와이너리 투어 경험을 토대로 독자에게 알찬 와인 정보를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