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포성에 한국 경제 출렁…다시 고개 드는 '3高 리스크'
2026.03.06 10:34
증시 '역대급 폭락' 뒤 V자 반등…환율도 롤러코스터
전쟁 장기화 땐 유가 쇼크 우려…정부·금융권 비상 대응 가동
'장대한 분노(Epic Fury)' 작전이 때린 것은 이란만이 아니었다. 중동발 리스크가 전 세계를 불확실성에 빠뜨리면서 한국 경제에도 큰 파장이 일었다. 최고가 랠리를 이어가던 코스피와 코스닥은 역대 최대 낙폭 이후 'V자 반등'을 했고, 잠시 1500원 선까지 치솟았던 원-달러 환율도 다시 하락하는 등 시장 변동성이 극대화됐다. 중동전쟁의 흐름에 따라 한국 금융시장이 급격하게 요동치는 가운데 시장의 시선은 분쟁의 종식 시점에 쏠리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유가 상승이 현실화하면서 한국 경제 전반에 연쇄 충격이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시장 불안이 커지자 정부와 금융권도 시장 안정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긴급 금융지원 등에 나섰다.
유례없는 급락·급등…금융시장 변동성↑
중동전쟁의 충격파는 한국 금융시장까지 크게 강타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한국 증시는 '검은 화요일'과 '공포의 수요일'에 급락했다가 다음 날인 목요일에 급등하는 유례없는 흐름을 보였다. 3월3일 코스피가 전 거래일보다 452.22포인트(7.24%) 떨어진 데 이어, 3월4일에는 698.37포인트(12.06%) 폭락하며 5100선이 붕괴됐다. 하락률·낙폭 모두 역대 최대로, 하락률은 미국 9·11 테러로 충격을 받은 2001년 9월12일 기록(12.02%)마저 넘어섰다.
급락장이 이어지면서 코스피 프로그램 매도호가 일시효력정지(사이드카)와 코스닥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됐고, 장 중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가 8% 넘게 폭락하며 두 시장의 거래를 20분간 중단하는 서킷브레이커까지 발동됐다. 3월5일에는 상황이 반전됐다. 코스피와 코스닥이 전날 급락한 이후 강하게 반등하면서 양 시장에서는 매수 사이드카가 발동됐다. 이날 코스피는 5580선까지 회복했다. 미국과 이란이 종전을 위한 물밑 접촉을 시작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면서 긴장 완화 기대감이 매수세에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외환시장 역시 크게 요동쳤다. 최근 1440원대에서 안정세를 보이던 원-달러 환율은 중동전쟁 이후 1480원 선에 근접했고, 한때 야간거래에서는 심리적 저항선으로 여겨지던 1500원까지 돌파했다.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이다. 3월5일에는 다시 1460원대까지 내려오는 등 환율 변동성도 지속되고 있다.
이란이 종전 협상설을 부인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장은 분쟁의 지속 기간에 주목한다. 증권가는 전쟁이 일주일 전후로 마무리될 경우 코스피와 글로벌 증시는 5% 안팎 조정 이후 상승 추세를 이어갈 수 있지만, 분쟁이 길어질 경우 유가 변동성이 확대되면서 금융시장 전반의 변동성도 커질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대신증권은 "1개월 내 상황이 진정되고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한다"면서도 "사태 장기화와 원유 공급망 안정성 훼손이 유가 급등으로 이어질 경우 장기적 경기 영향이 불가피하다"고 짚었다. IBK투자증권도 "단기간에 상황이 종료되고 증시가 단기 조정에 그친다면 증시 탄력은 재차 강화될 수도 있다"면서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유가 폭등과 경기 침체가 전개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호르무즈 리스크' 우려…"단기 수급 문제 없어"
원유 공급의 핵심 지역인 중동에서 군사 충돌이 확대될 경우 국제유가가 가장 먼저 반응한다. 세계 해상 원유 물동량의 상당 부분이 통과하는 호르무즈해협의 긴장이 높아지면 글로벌 에너지 시장의 불안도 커진다. 특히 원유·천연가스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한국은 이른바 '유가 공습'의 영향을 크게 받게 된다.
체탄 아야 모건스탠리 아시아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제조업 비중이 높고 수출 지향형인 아시아 국가들이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유가 변동에 더 민감하다고 분석했다. 석유·가스 무역적자 수준을 근거로 볼 때, 한국·대만·인도 등이 성장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하방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것이다. 글로벌 금융그룹 ING도 "아시아가 지속적인 유가 충격에 특히 취약하다. 호르무즈해협 통행이 차질을 빚으면 석유 부족 사태가 발생하고 아시아 전역의 경제 활동을 위축시키는 한편 제조업에 압력을 가할 수 있다"며 "한국·태국·베트남·대만·필리핀이 가장 큰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70% 이상, LNG의 20% 이상(2023년 기준)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다. 산업연구원(KIET)에 따르면, 한국 경제의 원유 의존도(5.7)는 브라질(5.87), 인도(6.41) 등과 비슷한 수준이고, 중국(3.49)보다 훨씬 높다. KIET는 앞서 호르무즈해협이 봉쇄될 경우 전 산업에서 생산비용이 3.02% 상승하고 제조업(5.19%)과 서비스업(1.39%)의 생산비용도 오를 것으로 예측했다. 석유나 가스가 산업 전반에 사용되는 상황에서 생산비용이 상승하고 운송비와 전력비용까지 올라가면 소비자물가는 오르고 기업 투자와 소비심리는 위축될 수 있다.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고유가·고환율·고물가가 동시에 나타나는 이른바 '3고(高)'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불안한 정세에 따른 불확실성이 시장을 엄습하자 정부와 금융권도 대응에 나섰다. 3월5일 이재명 대통령은 시장 변동성이 발생할 경우 적극 가동하기로 한 100조원 규모의 시장 안정 프로그램을 신속하게 집행하라고 지시했다. 미국의 이란 공습 당시부터 긴급대책반을 가동해온 산업통상부는 같은 날 긴급 수출바우처를 도입하고 유동성 지원을 확대해 수출 차질을 최소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강감찬 무역투자실장은 "중동 정세 불안으로 어려움을 겪는 수출 중소기업의 부담을 완화하고 현재의 수출 상승 흐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겠다"고 했다.
국내 금융그룹은 비상대응 체계를 가동하고 긴급 금융지원을 실시한다. KB국민은행은 분쟁 리스크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을 위해 피해 규모 내에서 최대 5억원의 운전자금과 시설자금을 지원하는 금융지원 프로그램을 시행한다. 하나은행도 피해 기업 긴급 유동성 지원을 위해 총 12조원 규모의 자금을 공급하고 최대 5억원의 긴급 경영 안정 자금을 지원하는 등 시장 안정 지원에 만전을 기하기로 했다. 신한·우리은행도 분쟁 리스크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 지원을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정부는 현재 에너지 수급에는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전략 비축유 등을 활용한 단기 공급 안정 장치, 수입 구조의 다변화 등을 방어선으로 삼고 있다. 재정경제부는 "국제에너지기구(IEA) 기준 208일분의 비축유를 보유해 수급 위기 대응력이 충분한 상황"이라며 "대부분의 소재·부품·장비 품목의 경우 대체 수입선 확보 또는 국내 생산 전환이 가능해 현재까지 중동 상황이 국내 수급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또 유조선 통항 상황 등을 모니터링하면서 해협 봉쇄 등 비상 상황이 발생할 경우 운항 일정 조정 등 대안을 즉시 시행할 수 있도록 준비를 강화하기로 했다.
다만 대응 방안이 단기적 쇼크를 완화하기 위한 수단에 그친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축유 등으로 버틴다고 해도 에너지 의존 구조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유사한 상황에서 한국 경제에 대한 타격이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빙현지 KIET 통상전략실 전문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원유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유가 상승에 따른 영향이 크며, 비용 상승 압력은 정유·화학·도로운송·항공운송 등에서 크게 나타난다"며 "단기적으로는 모니터링을 강화하고 안정 자금을 적절히 활용해 대응해야 하나, 장기적으로는 유가 충격에 대한 취약성을 완화하기 위한 산업구조 전환이 필요하다"고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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