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MS의 프로젝트 헬릭스의 정체는 '혹시' 이것이 아닐까?
2026.03.06 16:41
마이크로소프트(MS) 신임 게이밍 CEO 아샤 샤르마가 '프로젝트 헬릭스(Project Helix)'를 발표하면서 내가 떠올린 기억이다.
많은 이들이 이 발표를 차세대 엑스박스 하드웨어의 연장선쯤으로 읽고 있을 것이라 생각 한다. 나 역시 처음에는 그랬으니까. 하지만 행간을 계속 되뇌어보니 MS의 칼끝이 전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는 걸 금세 눈치챌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 MS는 더 이상 거실 한구석을 차지하기 위한 '플라스틱 상자' 경쟁에 얽매이지 않을 작정으로 보인다. '프로젝트 헬릭스'를 통해 그들이 그려 보인 청사진은 물리적인 게임기가 아니라, 규격화된 플랫폼 생태계라고 생각된다.
쉽게 말해, 상자를 파는 게 아니라 상자를 만드는 룰 자체를 장악하겠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 매킨토시 vs IBM, 그리고 애플 vs 안드로이드
MS의 이번 전략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IT 역사의 두 차례 세기적 전쟁을 먼저 복습해야 한다.
1980년대, 애플의 매킨토시(Macintosh)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하나로 결합한 정교한 폐쇄형 기기였다. 애플 팬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그 시절이 신화처럼 회자되지만, 당시의 결말은 냉혹했다.
IBM은 PC 규격을 과감하게 공개했고, DOS라는 운영체제를 얹은 컴팩(Compaq), 델(Dell) 등 다양한 업체에서 '클론 PC'들이 시장에 쏟아지며 매킨토시를 구석으로 밀어붙였다. 개방형 규격의 압승으로 일부 고급스러운 전문가 영역을 제외한 대부분의 비지니스 영역을 IBM 호환 PC들이 차지했다.
스마트폰 시대에도 역사는 성실하게 반복됐다. 독자적인 기기 생산과 통제된 생태계로 프리미엄을 독식하던 애플(iOS)에 맞서, 구글은 안드로이드라는 OS 규격을 삼성, LG, 샤오미 등 수많은 제조사에 아낌없이 뿌렸다.
기기 파편화니 최적화 문제니 온갖 잡음이 끊이질 않았지만, 결국 안드로이드는 다기종의 물량 공세와 압도적인 접근성을 앞세워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의 70%를 집어삼켰다.
아이러니하게도 MS는 마치 방망이 깍는 노인의 심정으로 Xbox를 만들어 2001년 콘솔 게임기 시장에 뛰어들었다. 당시 개발자들의 평가는 하드웨어 스펙이나 개발 편의성만 다지면 Xbox는 명품과 같은 게임기였다.
하지만 직접 만든 게임기로 이른바 맞다이를 한 경쟁에서는 계속 뒤쳐졌다. 결국 스스로 만든 판에 상대를 올려야 했다. 그래서 지금 MS가 헬릭스를 통해 하려는 것이 바로 '게임계의 IBM PC', '게임계의 안드로이드' 가 되겠다는 선언처럼 들린다.
특정 하드웨어 스펙과 OS 기준을 충족하는 기기라면 제조사가 어디든 'XBOX 인증(Certified)'을 부여하겠다는 것. 에이수스(ASUS), 레노버(Lenovo) 등 OEM 파트너사들이 각자의 폼팩터로 '클론 엑스박스'를 마음껏 쏟아내는 세상을 만들겠다는 얘기다.
이미 ASUS를 통해서 'ROG XBOX Ally & Ally X' 라는 물건도 세상에 나왔다. 그리고 그 반응도 이미 확인 했다.
# OEM 제조사들은 기꺼이 합류할까?
사실 이건 제조사 입장에서 거절하기 어려운 제안이다.
UMPC(휴대용 PC) 시장이 커지면서 제조사들은 무거운 윈도우 OS의 한계와 빈약한 게이밍 UI/UX 때문에 적잖이 골머리를 앓아왔다.
여기에 MS가 게임에 완벽히 최적화된 경량 OS와 게임패스라는 거대한 콘텐츠 라이브러리를 통째로 얹어준다면? 제조사는 소프트웨어 최적화라는 복잡한 숙제를 MS에게 떠넘기고, 자신들이 잘하는 기기 성능과 디자인에만 오롯이 집중할 수 있다.
안드로이드가 스마트폰 제조사들에게 그랬듯, MS는 하드웨어 명가들에게 가장 솔깃한 '생태계 무임승차' 티켓을 쥐여주는 셈이다. 마다할 이유가 없다.
여기서 가장 주목해야 할 대목은 "특정 스토어에 갇히지 않겠다" 라는 MS의 도발적인 선언이다.
전통적인 콘솔 비즈니스의 핵심 수익원은 자사 스토어에서 발생하는 30%의 결제 수수료였다. 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얼마나 소중한지는 닌텐도, 소니, 심지어 애플의 앱스토어 분쟁만 봐도 잘 알 수 있다. 그런데 MS는 이 견고한 밥그릇마저 스스로 걷어차려 하고 있다.
XBOX 인증 기기 위에서 자사 스토어는 물론, 스팀(Steam)이나 에픽게임즈 스토어 같은 서드파티 플랫폼의 구동까지 허용하겠다는 뜻이다.
당장의 수수료 수익을 포기하더라도(포기할리는 없지만), 전 세계의 게이머와 기기를 XBOX 기반의 거대한 하부 구조(OS 및 규격)로 완전히 종속시키겠다는 IBM-안드로이드 성공 공식의 충실한 재현이다.
돈 받는 방식을 바꾸는 게 아니라, 게임 자체의 판을 바꿔버리는 전략이다. 과거 후발주자로서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이 만든 판에 뛰어들어 지금까지 2인자 신세를 경험하는 시점에서 어쩌면 당연한 전략일 수도 있다.
#MS의 DNA: DirectX의 XDK화
이런 규격화 전략이 허황되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MS가 이미 이 분야의 절대 강자이기 때문이다. DirectX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 있는가. PC 게임 개발자라면 도망칠 수 없는 바로 그 그래픽 API다.
개인적으로 MS가 이 기존의 DirectX SDK를 'XDK(Xbox Development Kit)' 라는 이름으로 재편할 것을 상상해본다. 개발자들이 단 하나의 환경에서 개발하면, PC와 수많은 형태의 XBOX 인증 기기, 심지어 타 스토어 버전까지 완벽하게 호환되는 진정한 '콘솔-PC 통합 레이블링' 시대가 열리는 것이다.
어찌보면 이미 MS는 차근이 이를 준비해온 것일 수도 있다. 지난 2016년 MS는 'Xbox Play Anywhere'(이하 XPA) 를 발표한바 있다.
그리고 과거 XPA 라이선스는 MS의 하드웨어 종속을 기반했지만, 오늘날엔 Xbox Game Pass를 통한 하나의 서비스 개념으로 게이머들의 통합 환경 생태계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프로젝트 헬릭스'를 통해 하드웨어 생산자와 게임 개발자들의 환경 통합 생태계를 만들어 내는 시도를 하고 있는게 아닐까?
엔비디아처럼 MS도 차기 Xbox 관련한 규격을 위해 레퍼런스 모델을 하나 만들고, 이후 다양한 제조사에서 커스텀된 제품을 만들어 내고 사용자 선택의 폭을 넓힌다면? 심지어 게이밍이라는 개념에 맞춰 거치형, 휴대형, 노트북, PC, 콘솔의 개념을 하나로 각각의 규격을 만들어 발표한다면?
# 소니의 대응: 완전한 '애플'의 길을 택하다
흥미로운 건 영원한 라이벌, 소니(플레이스테이션)의 선택이다.
MS가 생태계를 사방으로 열어젖히며 안드로이드의 길을 걷고 있다면, 소니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걸음을 옮기고 있다. 과거의 애플이 그랬듯, 철저히 통제된 프리미엄을 내세우는 '독자적 요새' 전략이다.
최근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소니는 퍼스트파티 싱글플레이 게임의 PC 이식 전략을 사실상 철회하고, 다시 철저한 '플레이스테이션 독점' 으로 회귀할 채비를 하고 있다.
메시지는 명확하다. "이 압도적인 경험을 원한다면, 파편화 없는 완벽한 최적화가 보장된 우리 기기를 사면 된다"라는 접근성 대신 희소성을, 개방 대신 완성도를 선택한 것이다.
어찌 보면 소니의 전략은 MS보다 훨씬 단순하고, 그만큼 더 순수하다. 설득하지 않는다. 그냥 갖고 싶게 만들어버린다. 결국 차세대 콘솔 전쟁은 예전처럼 기기 스펙을 줄 세우던 차원을 완전히 벗어났다.
스토어의 장벽마저 허물며 기기의 다변화를 이끄는 마이크로소프트는 '어디서나'를 무기로 삼고 소니는 '오직 여기서만'이라는 프리미엄 생태계를 무기로 삼는다.
IT 역사가 증명했듯, 두 전략 모두 충분히 성립한다. 애플은 지금도 건재하고, 안드로이드는 지금도 지배적이다. 그 역사적 대결이 이제 거실의 게임기를 무대로 다시 막을 올리려 하고 있다.
어느 쪽이 이길까. 사실 아무도 모른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전략이 위에서 추측한대로 말한 것일지조차 아직 모른다. 오는 3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GDC에서 '프로젝트 헬릭스'의 구체적인 윤곽이 나오길 기대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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