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박·일몰·트레킹... 정선 1박2일 겨울 코스 [낭만야영 정선 트레킹]
2026.03.05 07:50
신비한 얼음왕국, 광대곡으로
요즘은 겨울 필수 코스처럼 꽁꽁 얼어붙은 곳이라면 빙박을 즐기려는 백패커들로 인산인해다. 알록달록 다양한 색상의 텐트들이 빼곡히 들어선 얼음 위의 풍경은 장관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에 둘러싸여 시끌벅적하게 보낼 용기는 없다.
작년 말, 경남 고성 적석산에서 겨울 백패킹의 매력에 빠져버린 경실이는 우모복을 장만했다며 두 번째 겨울 백패킹을 가자고 졸랐다. 기대가 하늘을 찌르는 그녀에게 오지의 신비한 얼음왕국을 보여 주기 위해 강원도 정선의 광대곡 영천폭포에서 빙박을 하기로 했다.
광대사에 도착하니 오후 3시가 훌쩍 넘었다. 광대곡은 짧은 코스지만 일몰 후에는 위험할 수 있으니, 밝을 때 야영지 컨디션도 볼 겸 텐트를 설치해 놓고 움직이기로 했다. 쌓인 눈 밑에 숨은 살얼음이라도 밟을 새라 조심스레 발을 옮겼다. 얼음을 짓이기는 아이젠은 어그적어그적 요란스러운 소리를 냈다. 계곡에 들어서자 트레킹을 마치고 돌아오는 등산객을 만나 인사를 건넸다.
"백패커 네 명이 먼저 올라가던데, 좋은 자리는 뺏길 수도 있겠네요."
그는 빙박지 상황을 잘 알고 있는 듯했다.
"자리가 없으면 다른 곳에 치죠 뭐. 영천폭포 쪽은 꽁꽁 얼었나요?"
"그렇지 않아도 주말에 친구랑 오려고 먼저 답사 와봤는데, 가장자리는 아직 얼지 않아서 안전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조심하세요."
용소는 약 5m 깊이다. 괜히 욕심 부렸다가는 사고가 날 수도 있다. 야영지에 도착하면 얼음 두께를 철저하게 확인하기로 했다. 계곡에서 불어오는 세찬 바람이 훑고 지나갔다. 한파 소식에 온몸을 꽁꽁 싸맨 탓에 뺨을 스치는 바람이 오히려 상쾌했다.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날카로운 공기가 폐 속 깊이 파고들었다. 순간 헛기침이 나왔다. 코끝은 얼어붙은 듯 찡했다. 온도계를 보니 영하 16℃였다. 배낭에 든 핫팩 딸랑 하나에 의지해서 밤을 보낼 생각을 하니, 몸서리가 쳐졌다. 경실이는 신이 난 듯 브레이크를 거는 아이젠은 아랑곳하지 않고 얼음 위에서 미끄럼을 탔다.
얼어붙은 용소 위 텐트 치기
첫 번째 용소가 나타났다. 상류에서 흘러내려오던 폭포는 옥색을 띠며 얼어붙었다. 반면 거대한 바위벽에 둘러싸인 용소는 얼었다 녹기를 반복한 듯 거무스름한 띠를 두른 채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물속이 고스란히 비쳤다. 커다란 돌멩이를 던졌다. "우직!" 하며 얼음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한 발짝 물러섰다. 위쪽도 같은 상황이면 폭포 쪽은 포기하고 얕은 빙판 어딘가에서 하룻밤을 보내야 한다. 용소를 에워싼 암릉 위로 아슬아슬하게 이어진 좁은 돌계단에는 거북이 등짝 같은 얼음이 얼어붙어 있었다. 아차 하는 순간 미끄러져 떨어질 수도 있다. 아이젠과 폴 끝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한 계단씩 올랐다. 반대쪽으로 넘어서자 널찍한 빙판이 나왔다.
"미정이 누나!"
순간 놀라 걸음을 멈췄다.
'이런 오지에서 누구지?'
그가 선글라스를 벗었다. 액션캠 고프로 앰버서더로 함께 활동했던 맹 대장이었다. 요즘은 활동을 잘 안 해서 못 만났는데, 몇 년 만에 오지에서 보니 더욱 반가웠다. 영천폭포는 제대로 얼지 않아서 그곳에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우리도 시간이 없어 그곳에 자리 잡기로 했다. 맹 대장 일행이 넓은 빙판 위에 자리 잡아 폭포 쪽 용소는 우리 차지였다.
벽의 모양을 본 따 '골뱅이소'라고 한다. 오랜 시간 폭포수가 굽이쳐 바위벽을 둥글게 깎아 낸 듯 했다. 주위에는 작은 돌멩이밖에 없었다. 텐트 펙을 하나 꺼내 폭포 쪽으로 다가갔다. 매서운 한파에도 끄떡없다는 듯 거대하게 몸집을 키운 얼음덩어리에서 맥박처럼 물소리가 들렸다. 바위벽과 얼음 사이에 펙을 끼워 넣고 돌멩이로 내리쳤다. 펙이 거의 다 들어갈 때까지 물이 새어나오지는 않았다. 곡선을 따라 텐트 두 동을 아늑하게 칠 수 있었다.
벌써 한 시간이 지났다. 민둥산 정상에서 일몰을 보려면 서둘러 내려가야 했다. 뛰다시피 걸었다. 차를 타고 민둥산으로 향했다.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이었다. 경실이는 카레이서처럼 달렸다. 구불구불한 도로를 따라 우리의 몸도 기울었다. 민둥산 최단 코스인 돌리네 쉼터에 도착했다. 시간이 없다. 생각은 없고 판단만 있을 뿐이었다. 뛰느냐 걷느냐. 오른쪽이냐 왼쪽이냐. 빠른 사람 걸음에 맞추는 것이다.
어차피 민둥산은 수없이 올랐다. 일몰만 보면 된다. 재작년 겨울 불수사도북 종주 이후로 경주마처럼 산을 오르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괜한 오기가 생겼다. 정상까지 10m 남짓. 능선 저편으로 마지막 여운을 남기려는 듯 아련한 빛이 감돌았다. 일몰은 놓쳤다. 발걸음을 늦추었다. 심장은 여전히 요동쳤다. 얼음장 같은 공기를 쉴 새 없이 들이 마신 탓에 목이 칼칼했다. 정상에 도착했다. 검은 산그리메 위로 붉게 익은 차디찬 노을이 길게 펼쳐 있었다. 그 짧은 순간만으로도 쉼 없이 달려온 보람이 있었다.
"내일 아침 물속에서 눈뜰지도 몰라"
골뱅이소에 도착했다. 붉게 빛나는 맹 대장팀 텐트 안에서 소곤소곤 대화가 흘러나왔다. 우리도 텐트에 불을 켰다. 은은하게 새어나오는 불빛이 얼음 속에 스며들어 빛을 발했다. 하늘을 반쯤 가린 나무 숲 사이로 얼음 알갱이처럼 별들이 빛나고 있었다. 경실이 텐트에서 마주 앉았다. 나는 소중한 핫팩 하나를 터뜨렸다. 경실이는 파우치에서 한 뭉치의 접착식 핫팩을 꺼냈다. '핫팩 만수르'는 나에게도 몇 개 주고는 자기 발에 붙였다.
"조심해! 발바닥 열기 때문에 얼음 바닥 녹아서 내일 아침 물속에서 눈 뜰지도 몰라."
경실이는 뒤로 발라당 누워 발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럼 안 되지! 우리 내일 워크숍은 가야지~"
바둥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한바탕 웃었다. 쌓였던 피로가 싹 가셨다. 차가운 샌드위치로 허기를 채우면서도 쉴 새 없이 달려온 사진을 보며 즐거웠다.
다음날 아침 일찍 영천폭포에 올랐다. SNS에서 봤던 천사의 날개처럼 뽀얗고 화려하게 얼어붙은 폭포의 모습은 없었다. 얼음바닥은 군데군데 검은 용소가 그대로 드러났다. 골뱅이소에서 야영하길 잘했다. 사이트를 정리하고 재빨리 내려갔다.
눈밭 뒹굴며 동심 속으로
월간산 3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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