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단계 신호등과 직모제, 방독면을 발명한 '블랙 에디슨'
2026.03.04 04:31
“붉은색 푸른색 사이 짧은 시간 노란색 빛을 내는” 신호등이 가수 이무진에겐 경계에 선 청춘의 당혹감 혹은 망설임의 은유였지만, 미국 흑인 발명가 개릿 모건(Garrett Morgan, 1877.3.4~1963.8.27)에겐 사고를 막기 위한 생명의 등불이었다. 그는 1920년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의 한 교차로에서 자동차와 마차가 충돌해 말이 죽고 아이가 크게 다치는 사고를 목격한 뒤 '진행-유예-정지'의 3단계 신호등(1823년 특허)을 발명했다.
그의 신호등은 기둥 꼭대기 가로대가 펼쳐지는 기계식 신호등이었다. 3색 신호등은 1920년 디트로이트의 한 경찰관(William Potts)이 처음 개발했지만, 공무원이어서 특허를 낼 수 없었고, 1935년 미국 ‘통일 교통통제 편람’이 발간되기 전까지 신호등 체계는 도시마다 제각각이었다.
재봉업자였던 모건은 1910년대 고속의 재봉틀 바늘 때문에 옷감이 변색되는 문제가 빈발하자 마찰열을 줄이는 실험을 거듭하다 어느 날 화학용액이 묻은 헝겊 표면의 구불구불한 섬유가 곧게 펴져 있는 걸 발견한 뒤 직모제를 개발했다. 그는 모발 직모제로 큰돈을 벌었다.
1912년엔 방독면의 원형인 가스 마스크(Safety Hood)도 개발했다. 화재 열기로 솟구치는 유독가스 대신 바닥 공기를 마실 수 있도록 긴 튜브를 매단 밀착형 마스크. 인종차별이 극심하던 때여서 그는 백인 배우를 고용해 발명가인 척 연기하게 하고 자신은 조수인 양 시연하며 제품을 홍보했다. 1916년 7월 이리호 터널 폭발사고 당시 그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자신의 가스 마스크를 착용하고 호수 바닥 터널에 고립된 인부 20여 명을 구조했지만, 당시 신문들은 백인 봉사자들의 활약만 대서특필했고, 그는 카네기 영웅기금 메달 수여자 명단에서도 누락됐다. 미 국방부는 그의 마스크 디자인을 응용, 화학 필터를 장착한 신형 방독면을 제작해 1차 대전을 치렀다. 그는 1920년 ‘클리블랜드 콜’이란 흑인 신문을 창간, 흑인 인권을 위해서도 헌신했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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