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는 그냥 한 사람이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
2026.03.04 10:31
| 빛의 기록 릴레이 인터뷰 |
| 비상계엄이 선포된 2024년 12월 3일 밤부터, 파면 선고에 이르기까지 이어진 123일. 이 시간은 거대한 정치적 사건의 연속이었지만, 동시에 개개인의 일상과 감정, 선택이 겹겹이 쌓인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누군가는 광장에 섰고, 누군가는 망설였으며, 또 누군가는 온라인에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며 하루를 버텼습니다. 그렇게 지나온 시간 속에서 시민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기록으로 남기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 연재는 '빛의 기록'(https://archives.bisang1203.net/) 사이트에 기록을 남기고, 연말·연초 모임 이벤트로 진행한 '빛의 모임'에 참여한 시민들의 이야기를 릴레이 인터뷰로 전합니다. 기록으로 남겨진 문장과 사진, 그리고 모임에서 오간 대화를 따라가며, 한 사람 한 사람의 123일이 어떻게 민주주의의 기억으로 이어졌는지를 들여다봅니다. 광장에 나선 경험뿐 아니라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했던 망설임과 두려움, 아이를 데리고 나설지 고민했던 순간들, 그리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온 뒤 마음에 남은 감정과 바람까지. 사건의 이면에 놓인 개인의 시간을 조명합니다. 총 6회에 걸쳐 이어질 이 릴레이 인터뷰는 '빛의 기록'으로 남겨진 시민의 목소리를 차례로 소개합니다. 이 이야기들이 모여, 우리가 함께 건너온 시간을 다시 바라보고 새로운 사회로 향하는 다음 질문으로 나아가는 작은 빛이 되기를 바랍니다. |
"저는 경남 진주에 살며 직장을 다니고 있는 57세 시민 후유입니다. 친구들과 독서 모임을 하면서 책을 읽고 독후감을 나누고, 그 과정에서 사회 전반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참여연대에 후원하고 있고, 빠띠 모임에도 가끔 줌으로 참여해 이야기를 듣곤 했어요. 작년 여름쯤 퍼실리테이션으로 진행된 모임에 참여했을 때 특히 인상 깊었고, 마음이 많이 움직였습니다. 그러다 '빛의 모임'을 한다는 소식을 접하자마자 "이건 우리 독서클럽 회원들과 같이 이야기하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빛의 속도로 신청했습니다. 이렇게 인터뷰 요청까지 받게 되어 기쁘게 생각합니다."
| ▲ 후유 님이 만든 피켓 |
| ⓒ 후유 |
- 계엄 소식 접하시고 광장에 나가시게 된 건 언제쯤이었을까요? 진주에서도 집회가 있었나요?
"새벽에 잠든 저를 신랑이 깨워 계엄 소식을 알려줬는데, 그 순간 너무 놀랐습니다. 광장에는 제가 참여하고 있는 다른 모임에서 '서울에 빛의 광장으로 모임 가니까 같이 가자'고 해서 그때 나갔습니다. 아무래도 진주부터 서울까지는 거리도 있고 제가 직장을 다니는 관계로 한두 번 정도. 서울에 자주는 못 갔습니다.
진주에서도 집회가 있었는데, 진주라는 지역이 굉장히 좀 보수적이다 보니 진주시에서 하는 모임을 나가기에는 제가 아직 그 정도로 용기가 없더라고요. 지역사회에 살면서 자기 개방을 하는 분들을 참 존경하지만 저는 아직 그 정도까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제가 다니는 직장이 중립을 요하다 보니 정치적 중립을 얘기를 하다 보면 좀 애매한 부분이 있어서 지금은 이렇게 예명으로 활동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은퇴를 하게 되면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해야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지금은 하고 있습니다."
- 무엇보다도 불법 비상계엄 같은 상황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게 되는 것 같은데요.
"사실은 저희 신랑이 1980년대에 전투 경찰을 했거든요. 그래서 그 계엄 선포 뉴스를 접하고는 놀래서 저를 막 일어나라고 깨우고. 저도 너무 어이가 없었어요. 저는 1987년도에도 대학에서 광장에 나갔는데 그때 최루탄도 맞아보고 그 최루탄이 얼마나 격한지 그런 것도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이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리나라가 어떤 나라인데 이런 일을 벌였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어이도 없고 정말 기가 막힌 상황을 접한 거죠.
저는 좀 나이 든 사람으로서 좀 부끄럽기도 하지만 제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나름대로는 이 지역사회에서 최선을 다 했습니다. 이 정도밖에 못 했다는 아쉬움도 있지만요. 아무쪼록 서울에서도 진주에서도 젊은 분들이 고생을 많이 해 주셔 가지고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 추운 날 정말 너무 고생 많이 하신 것 같아요.
그런데 주변에 그런 얘기를 꺼냈을 때 그런 게 아님에도 불구하고 정치적인 얘기라고 느끼는 사람들도 있고 관계가 틀어지기도 하더라고요. 서로 별로 언급하고 싶어 하지 않고. 그래서 상호 존중하는 차원에서 그런 얘기는 좀 기피하게 되기도 했어요.
그래도 다행히 소수긴 하지만 저희 독서 클럽 회원들과는 이야기가 잘 통했어요. '윤석열이 탄핵돼야 된다'거나 '계엄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같이 말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었고, 한 친구는 108배를 하기도 했습니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없도록 우리가 열심히 하자' 이런 얘기도 많이 했습니다."
| ▲ 108배를 한 방석 |
| ⓒ 후유 |
- 빛의 모임에서 계엄부터 파면 선고까지 123일을 꼬박 돌아보면서 어떤 생각이나 느낌이 드셨나요? 어떤 기록을 남기셨고 그 기록을 남긴 이유가 무엇이셨나요?
"123일이 그냥 이루어진 게 아니잖아요. 민주주의가 그냥 이루어지는 게 아니죠. 윤석열과 그의 무리들은 어떻게든 법을 빠져나가기 위해서 온갖 방법과 수단을 다 사용을 했는데 결국에는 우리 민주 시민들이 각자의 위치에서 수많은 희생을 하고 탄핵을 성공시켰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광주 민주화운동을 겪기도 했고 동학농민혁명의 현장에 직접 찾아 가서 보기도 했어요. '정말 민주주의는 지키기가 너무 어려운 거구나'라는 걸 항상 생각하면서 사는 겁니다. 조금만 방심하고 조금만 느긋하면 권력이나 자본이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 그런 거를 매 순간 느끼는 거예요. 한편으로는 '그게 인간의 본성인가' 하는 생각도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까 오히려 '모임을 빨리 해서 빨리 기록을 남겨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대학을 다닐 때 저는 사실은 민주화나 이런 데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어요. '지금 먹고 사는 게 더 급하고 생활이 더 중요하지 민주주의 뭐가 그렇게 중요한 거야?'라는 생각을 하고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저는 저의 안위를 위해서 직장도 구하고 생활적인 부분에 신경을 많이 쓰면서 살았어요. 그런데 제 동기들 중에는 당시 대학의 학생 운동이나 민주화를 위한 활동을 많이 하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한 친구는 공장에 다니면서 공장 노동자들과 민주주의 노동조합에 대한 활동도 했고요. 아마 잘 되지는 않았을 거예요. 지금도 제대로 안 되는 부분이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런 분들 덕분에 이렇게 민주화가 됐는데, 내가 그분들의 그 도움을 무시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를 찾아서 최선을 다해야겠다.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지 행동을 해야겠다. 왜냐하면 다음 세대도 그렇고 그다음 세대도 그렇고 역사는 계속 반복되기 때문에 여전히 말도 안 되는 얘기하는 사람들이나 언론들을 보자면 어떤 사람들은 그 말을 그대로 믿고 단순하게 얘기하기도 하니까요."
- 1년 전 빛의 혁명 당시 또는 40년 전 1980년대의 후유 님에게 해주고 싶으신 말이 있으신가요?
"1980년대에는 대체적으로 대학에 가는 것도 모두가 가는 게 아닌 시기였어요. 집에서 어려운 형편에 대학을 보낸 그런 학생들이 대다수였고 이제 어떻게든지 자기가 성공을 해서 가정 경제를 좀 일으켜야 되는, 부모님이 힘들게 번 돈으로 공부를 하는 학생들이 많았죠. 그러다 보니까 민주주의나 어떤 사회적인 부분에 있어서 돌아볼 수 있는 여유나 시간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럼에도 학생 운동에 투신한 수많은 대학생들이 고문당하고 희생당했고, 앞서 말했듯 저희 신랑은 전투 경찰을 하면서 같은 대학생들을 막아야 했죠. 그때 학생들이 맨몸으로 던진 돌에 맞은 상처가 아직도 남을만큼, 참 비극적인 시기였어요. 그런 시기를 지나서 여기까지 정말 정말 어렵게 온 거죠.
지금 2020년대에도 민주주의는 그냥 한 사람이 잘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 같은 마음으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모두가 자유롭고 정의로운 나라에서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활동이 꾸준하게 많이 이루어져야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 ▲ 후유 님과 독서 모임 멤버들의 빛의 모임 |
| ⓒ 후유 |
-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를 보게 될 다양한 사람들을 위해서 책을 한 권 추천해 주신다면?
"홍세화 님의 〈파리의 택시 운전사〉를 저는 추천합니다. 책을 통해 홍세화 님의 삶을 들여다보면 그분도 역경이 있으셨고, 파리에서 택시 운전을 하시기도 하고, 파리에서 어떤 젊은이가 친절을 베풀어서 그게 너무 감동이었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경쟁이 치열한 사회에서는 하루하루 다들 살아나가기 위해서 애를 쓰잖아요. 사람들이 서로 눈빛이나 간단한 악수라도 건네면서 작은 친절을 베풀고 서로 좀 따뜻하게 따뜻하게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을 바라게 되는 것 같아요. 돌아가신 홍세화 님 생각을 하면서 그의 삶은 또 어떻게 인생이 이루어졌나 보는 것도 좋았고요. 본 적 없는 사람이지만 책을 통해서 한 인간의 삶을 돌아보는 방식이 좀 슬프면서도 좋더라고요. 그래서 이 책이 떠올랐어요."
덧붙이는 글 | “빛의 기록”은 내란청산·사회대개혁 비상행동 기록기념위원회가 시민과 함께 비상계엄부터 파면 선고까지 123일의 시간을 각자의 사진, 영상, 글 등으로 기록하고, 이를 공동의 기억으로 남기는 시민참여 캠페인입니다. 이 캠페인은 https://archives.bisang1203.net 에서 참여할 수 있습니다. 함께 모은 기록은 시민 123아카이브로 구축되며, 2026년 4월 4일 새로운 모습으로 공개됩니다.
<빛을 기록하고 리워드 뱃지를 받아보세요!> 2/9 ~ 3/22 리워드 뱃지 이벤트가 진행중입니다. 빛의 기록 참여로 의미있는 뱃지를 모을 수 있습니다. 이벤트 기간에 '빛의 기록'을 한 번이라도 작성해주시면 123분을 추첨하여 1만원 상당의 기프티콘을 선물로 드립니다. 이벤트 확인: https://archives.bisang1203.net/pages/ev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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