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악 대법관 퇴임 “정치의 사법화, 사법 불신으로 이어질 것”
2026.03.03 10:38
“사법권 독립, 공정한 재판으로 신뢰 얻을 때 실현”
문재인 정부 때 임명돼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을 지낸 노태악(64·사법연수원 16기) 대법관이 6년 임기를 마치고 3일 퇴임했다.
노 대법관은 이날 오전 대법원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사법부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사법 본연의 역할과 책무에 집중하고 신뢰와 지혜를 모은다면, 현재 겪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진정 국민을 위하는 사법부로 발전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노 대법관은 “사회적 갈등이 법정 안으로 깊게 들어와 있다”며 “특히 정치적으로 해결할 수 있고 그렇게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한 사안을 사법부로 가져오는 현상이 더욱 심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치의 사법화는 지금처럼 양극화된 사회에서 결국 사법 불신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많다”며 “사법의 결론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어느 한쪽의 비난과 공격을 피해 나가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 가운데서도 법관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내야 하며, 법관에게 용기라는 덕목이 점점 더 크게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 사법부 관련 입법을 염두에 둔 듯한 발언도 나왔다. 노 대법관은 “설마 하는 우려가 현실이 되는 상황을 마주하며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사법부 독립을 흔들 수 있다는 우려를 낳은 이른바 ‘사법 3법(재판소원 도입·법 왜곡죄 신설·대법관 증원법)‘이 최근 국회를 통과한 상황을 고려한 발언으로 해석된다. 그는 후배 법관들에게 “사법부가 국민의 신뢰를 다시 회복하고 존경을 받을 때까지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노 대법관은 사법권 독립에 대해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고 법관에게 주어지는 특권은 더욱 아니다”라며 “오직 재판이 공정하게 이뤄지는 것을 보장함으로써 법치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끊임없는 자기반성과 공정한 재판을 통해 국민의 신뢰를 얻을 때 제대로 실현될 수 있다”고 말했다. 노 대법관은 인공지능(AI) 시대 사법부 역할에 대해 “어떤 경우에도 사법의 중심에는 인간의 존엄성에 기초한 법관의 통찰력이 자리해야 한다”고도 했다.
조희대 대법원장 등을 비롯해 법원 동료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도 전했다. 노 대법관은 “대법원장님과 동료 대법관님들, 그리고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사법부를 지켜온 법원 가족 여러분의 헌신이 있었기에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또 “사법부와 국민으로부터 부여받은 책무를 온전히 다했는지 스스로 물어본다”며 “만약 조금이라도 그렇다고 대답할 수 있다면, 그것은 동료 대법관님들을 포함한 법원 가족 여러분들 모두의 덕분”이라고 했다.
노 대법관은 “36년을 보내온 법복의 무게를 이제 벗으려 한다”는 말로 퇴임사를 마쳤다. 그는 1987년 사법연수원을 16기로 수료한 뒤 1990년 수원지법 성남지원 판사로 임용됐다. 이후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등을 지낸 뒤 2011년 서울고법 부장판사로 승진했다. 이후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를 지냈다. 대법원 형사법연구회장, 국제거래법연구회장을 지냈고, 2020년 3월 대법관에 취임했다. 2022년 5월부터는 중앙선거관리위원장도 맡아 왔다.
노 대법관은 2024년 5월 혼인 무효 청구 소송의 주심을 맡아 40년 만에 “이혼한 뒤에도 혼인을 무효로 할 수 있다”는 취지로 판례를 변경했다. 2021년 4월엔 김미희·김재연 등 통합진보당 출신 전직 의원들이 “국회의원직을 돌려달라”며 낸 사건 주심을 맡아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작년 7월엔 ‘대장동 개발 비리’와 관련해 뇌물을 주고받은 혐의로 기소된 김만배씨와 최윤길 전 성남시의회 의장에게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
다만 조 대법원장이 이날까지 40일 넘게 노 대법관의 후임을 이재명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하지 않으면서 대법관 공백 사태가 현실화됐다. 대법원장의 대법관 임명 제청 후에도 국회 인사청문회, 본회의 표결, 대통령 재가 등 임명 절차가 남아 있어 노 대법관 후임 자리는 4주 이상 공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조 대법원장은 이날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후임 대법관 인선에 대해 “(청와대와) 협의 중이기 때문에 대법원이 일방적으로 말씀드리기는 어렵다”며 “계속 협의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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