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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에 닥친 ‘AI 쇼크’…“정부 개입” vs “풍요 기대” 엇갈린 전망

2026.03.03 05:02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6’ 당시 현대차그룹이 선보인 차세대 전동식 아틀라스 시제품이 손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글로벌 데이터 분석 기업인 ‘렐엑스’(RELX)는 지난해 영국 경제지 파이낸셜타임스(FT)가 선정한 ‘혁신 챔피언’에 올랐다. 종이 책을 만들던 150여년 전통의 출판사가 학술·의료·법률 등 정보 서비스 회사로 변신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이 회사 주가는 미국 뉴욕 증권거래소에서 올해 들어 최대 31% 폭락했다. 인공지능(AI) 모델 기업인 앤트로픽이 출시한 ‘클로드 코워크’ 탓이다.

클로드 코워크는 비전문가도 인공지능 비서(에이전트)에게 재무·법률·마케팅 등 전문 분야의 일을 시켜 업무를 자동화하는 도구다. 사람의 질문에 답하는 기존 챗봇 수준을 넘어 다재다능한 진짜 ‘인공지능 동료’가 등장하며 렐엑스의 주력 사업모델인 법률 정보 서비스(렉시스넥시스)를 대체하리란 우려가 커진 것이다.

렐엑스 같은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기업이 맞은 위기는 인공지능이 산업과 일자리에 미치는 충격이 본격화했다는 신호탄이다. 인공지능 비서들은 전용 소셜미디어(몰트북)에서 자기들끼리 토론하고, 인간의 컴퓨터를 직접 조작(오픈클로)하기까지 한다.

거대 기술기업의 최고경영자(CEO)와 석학들도 코앞에 닥친 ‘인공지능 시대’의 미래를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고 있다. 논쟁에 불씨를 댕긴 앤트로픽 최고경영자 다리오 아모데이의 에세이와 올해 다보스포럼 및 인공지능 정상회의 등에서 이뤄진 ‘빅샷’(기술 거물)들의 발언 등을 토대로 최신 논의를 짚어봤다.

■ ‘도구’에서 셀프 진화하는 ‘이민자’된 AI

“챗지피티(GPT) 같은 챗봇의 지능이란 기껏해야 ‘빠른 물고기’ 수준에 불과하다.”

챗지피티·제미나이·클로드 등 언어 기반의 인공지능(LLM) 모델은 얼마 전까지 이와 같은 평가를 받았다. 방대한 데이터 학습을 토대로 특정 단어 뒤에 올 문장을 확률적으로 계산하는 것이 기술의 뼈대이기 때문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도 인공지능의 작동 방식을 ‘계산기’나 ‘전자레인지’에 빗대며 일자리 파괴 우려 등에 선을 그어왔다. ‘인공지능 4대 석학’으로 불리는 얀 르쿤 뉴욕대 교수가 지난달 인도 인공지능 정상회의에서 “인공지능은 고양이 수준의 판단력을 가졌을 뿐”이라고 지적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최근엔 상황이 달라졌다. 단순 기계적 도구에 불과했던 인공지능이 스스로 진화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이 단 9초 만에 스스로 문제를 해결했다.”

친구처럼 대화하며 컴퓨터를 스스로 조작하는 인공지능 모델인 ‘오픈클로’ 개발자 페터 슈타인베르거는 지난달 와이콤비네이터 인터뷰에서 이렇게 혀를 내둘렀다. 인공지능이 기존에 탑재하지도 않은 기능을 창의적으로 찾아내 실행하는 문제 해결 능력을 보여줬다는 얘기다.

인공지능발 공포에 불붙인 주인공인 다리오 아모데이는 올해 1월 공개한 자신의 에세이 ‘기술의 사춘기’에서 인공지능 기술의 현주소와 그 위험성을 훨씬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다리오는 “인공지능이 스스로 코딩 작업을 하는 ‘되먹임 고리’(피드백 루프)가 점점 더 강력해지며 차세대 인공지능을 구축하는 속도도 상당히 빨라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공지능이 스스로 지능을 발전시키는 단계에 이르며 인간을 뛰어넘는 것도 시간문제일 뿐이라는 뜻이다.

세계 최대 기술 기업인 구글도 전체 코드 작성 업무의 절반 남짓을 인공지능 비서에게 맡기며 개발 속도가 눈에 띄게 빨라지고 있다고 한다. 이에 그간 “인공지능이 향후 1∼5년 안에 초급(신입) 사무직 일자리의 절반을 대체할 수 있다”고 전망해 왔던 다리오는, 최근 노동시장이 단기적으로 초유의 인공지능발 ‘일자리 쇼크’(충격)를 겪을 수 있다고 경고 수위를 높이고 있다.

유발 하라리 히브리대 교수는 아예 인공지능을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진 행위자이자 이민자”라고 정의한다. 올해 1월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 연설에서다. 사람보다 뛰어난 언어 능력을 갖춘 인공지능이 국경을 넘으며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고 제도와 문화까지 흔들 수 있다는 말이다.

■ “불평등, 부의 집중 막기 위한 누진세 필요”

다리오는 이 같은 불평등 심화, 부와 권력의 집중을 완화할 방안으로 ‘정부 개입’이 필요하다고 촉구한다. 성장에 목매는 정부가 거대 기술기업과 짬짜미해 규제 완화에 올인하는 게 아니라, 이를 견제하고 인공지능 기업에 누진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대 인공지능 기업이 없는 한국의 경우 인공지능 수혜를 톡톡히 보는 반도체·인프라 기업이 과세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리오는 “인공지능 경제 호황의 최전선에 있는 이들이 자신의 부와 권력을 기꺼이 내놓을 의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부를 독점하는 거대 기업과 초고소득층을 상대로 누진세율을 적용하는 세금을 신설해 사회 안전망을 위한 재원을 마련하자는 뜻이다.

반면 일론 머스크(테슬라 최고경영자), 데미스 허사비스(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 등은 지난해 각종 인터뷰, 올해 다보스 세계경제포럼 대담 등에서 “10∼20년 안에 인공지능과 로봇 확산으로 일할 필요 없는 보편적 고소득의 시대를 맞을 것”, “물질적 결핍이 사라지는 급진적 풍요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낙관론을 폈다. 먼 미래의 장밋빛 전망과 낙관론에만 무게를 두며 과도기의 사회·경제적 충격을 외면하는 셈이다.

최병호 고려대 연구교수(휴먼 인스파이어드 인공지능연구원)는 “앤트로픽이 최근 내놓은 모델을 보면 직업군의 예외가 없이 대부분의 일에서 주니어(초급 실무자)가 필요하지 않은 수준”이라며 “실제 기업에 적용하기까진 시간이 걸리겠지만, 산업 현장의 구조조정을 돌이킬 수 없는 새로운 문을 연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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