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포커스] “결제 넘어 국고보조금까지”…한은, 예금토큰 ‘재정 인프라’ 실험
2026.07.20 11:44
전기차 충전 보조금 활용…자금 사용 조건·데이터 관리 과제로
[마이데일리 = 최주연 기자] 한국은행의 중앙은행 디지털화폐(CBDC) 기반 실증사업인 ‘프로젝트 한강’이 이르면 오는 9월 2단계 실거래에 들어간다. 개인 간 송금(P2P)과 생체인증 등 기능을 추가하고 참여 은행과 사용처를 확대하면서 예금토큰의 상용화 가능성을 본격적으로 시험한다.
특히 2단계에서는 예금토큰이 국고보조금 지급에 활용되면서 실증 범위가 민간 지급·결제를 넘어 공공 재정 영역으로 넓어진다. 자금 사용 조건을 설정할 수 있는 예금토큰의 특성을 활용하면 재정 집행의 투명성과 효율성을 높일 수 있지만, 활용 영역이 확대될수록 자금의 사용 조건과 거래 데이터의 관리 범위를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지도 새로운 과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20일 한은에 따르면 한은과 시중은행들은 프로젝트 한강 2단계 예금토큰 실거래 테스트를 위한 막바지 준비를 진행하고 있다. 시스템 개발과 참가자 모집 준비가 일정대로 마무리될 경우 이르면 9월께 실거래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프로젝트 한강은 한은이 블록체인 기반 기관용(도매) CBDC 인프라를 제공하고 시중은행들이 이를 기반으로 예금토큰을 발행해 일반 국민이 실제 지급·결제에 사용하는 과정을 검증하는 사업이다.
지난해 4~6월 진행된 1단계 실거래 테스트에는 전자지갑 기준 8만1000명이 참여해 예금토큰으로 총 11만4880건을 거래했다. 1단계가 예금토큰을 활용한 지급결제 시스템을 점검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2단계에서는 개인 간 송금과 공공 재정 등으로 실증 영역을 넓히는 데 무게가 실린다.
◇ 7개 은행서 9개로 확대…P2P 송금·생체인증 추가
참여 은행은 기존 7곳에서 9곳으로 늘어난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IBK기업·부산은행에 경남은행과 iM뱅크가 새롭게 합류한다.
서비스 기능도 확대된다. 가입 절차를 간소화하고 개인 간 송금과 생체인증, 예금토큰 자동 입출금 등의 기능을 새롭게 적용한다. 1단계에서는 한은 주도로 업종별 대표 사용처를 확보했지만, 2단계부터는 참여 은행들이 업무협약(MOU)을 맺은 가맹점까지 사용처에 포함할 예정이다.
실증 기간도 달라진다. 1단계는 3개월간의 파일럿 형태로 진행됐지만 2단계는 별도의 종료 시점을 미리 정하지 않고 금융규제 샌드박스가 허용하는 최대 4년 범위에서 실거래 테스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단기 실험을 넘어 실제 서비스로 발전할 가능성을 장기간 검증하는 단계로 접어드는 셈이다.
◇ 예금토큰으로 국고보조금 지급…‘어디까지 설계할 것인가’ 과제
프로젝트 한강 2단계에서는 예금토큰을 활용한 국고보조금 집행 실증이 추진된다. 첫 대상은 기후에너지환경부의 전기차 충전시설 보조금 지급 사업이다.
정부는 기존에 전기차 충전시설 사업자에게 일반 계좌로 지급하던 보조금 일부를 예금토큰으로 대체할 계획이다. 사업자가 예금토큰 지갑을 개설하면 해당 지갑을 통해 보조금을 지급받는 방식이다.
예금토큰은 블록체인 기술을 기반으로 사용처와 사용 기한 등을 사전에 설정할 수 있다. 이를 국고보조금에 적용하면 정해진 목적 이외의 자금 사용을 제한해 부정 수급이나 목적 외 사용을 방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공공부문 업무추진비를 예금토큰으로 지급하는 실증도 추진되며, 관계 부처 협의를 거쳐 연내 시범 부처가 정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러한 기능이 실제 공공 재정에 적용되기 시작하면서 기술적 가능성과 함께 제도적 논의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목적이 정해진 보조금의 사용처를 제한하는 것은 재정 누수를 막고 정책 효과를 높이는 수단이 될 수 있지만, 향후 적용 영역이 넓어질 경우 자금의 사용 조건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설정할 것인지에 대한 원칙도 함께 마련될 필요가 있다.
거래 데이터의 관리 범위도 과제다. 디지털 자금의 특성을 활용하면서 거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주체와 데이터 활용 범위, 개인정보 보호 체계를 명확하게 설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만 프로젝트 한강은 은행이 예금토큰을 발행하고 한은이 기관용 CBDC 인프라를 제공하는 구조인 만큼, 이를 중앙은행이 개인의 자금 사용을 직접 통제하는 체계로 단정하는 것은 경계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화폐 실증 범위는 향후 금융자산으로도 넓어질 전망이다. 정부는 내년 한은의 기관용 CBDC와 연계한 국채 토큰화 실증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블록체인 시스템에서 토큰화된 국채를 유통하고 기관용 CBDC를 활용해 결제하는 모델이다.
프로젝트 한강이 2단계에 접어들면서 예금토큰을 둘러싼 질문도 달라지고 있다. 1단계가 ‘예금토큰으로 실제 결제가 가능한가’를 확인하는 과정이었다면 2단계에서는 ‘어디까지 활용할 수 있는가’를 검증하게 된다. 이제 실험의 초점은 기술적 가능성을 넘어 제도적 경계를 설정하는 문제로 이동하고 있다. 결제 효율성과 재정 투명성이라는 장점을 살리면서도 프로그래밍 가능한 디지털 자금의 사용 조건과 데이터 활용에 어떤 원칙을 적용할지가 향후 제도화 과정의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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