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시간 전
"학생 수업 주도" 광주부설초 '내일교실'…공교육 혁신 모델 부상
2026.07.20 11:00
"선생님은 도울 뿐, 아이들이 학급 전반 운영" 시스템화
"교사와 아이가 함께 성장하고 행복해야 올바른 혁신"아침 7시 40분, 등굣길 아이들의 표정에는 이미 몰입의 흔적이 담겨 있다. 운동장에서 땀 흘리며 뛰놀던 아이들이 교실에 들어서면, 누구의 지시도 없이 스스로 책을 편다. 광주교육대학교 광주부설초등학교의 하루는 이렇게 시작된다. 이 학교가 지난 4년에 걸쳐 다듬어 온 학급·학교 운영 시스템 '내일교실'이 최근 전국 교육정책 담당자들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고 있다.
지난 15~16일 이틀간 서울특별시교육청 공약추진위원회(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 맹보영 서울여자중학교 교장), 경기도교육청 인수위원회(한희숙 한솔고 교장, 서주희 인하대 IBEC 강사), 전남광주 인수위원회(문승태 부위원장), 부산시교육청 장학관·장학사팀, 한동대학교 교육대학원 IBEC(국제바칼로레아 교원양성 프로그램)팀 등이 광주부설초를 찾아 수업 참관과 간담회를 진행했다.
참관단 상당수는 지난 1일 출간된 도서 'IB를 넘어 KB로'에서 광주부설초가 한국형 IB, 즉 'KB(Korean Baccalaureate)' 학교 운영의 대표 사례로 소개된 것을 계기로 방문을 요청해왔다. 특히 이번 참관은 최근 발표된 서논술형 평가 정책을 둘러싸고 현장에서 제기돼 온 여러 우려에 대해 실질적인 해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참관단은 잠깐의 수업 참관에 그치지 않고 아침 7시 30분부터 하교까지 학교의 하루 전체를 밀착 관찰했다.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은 "현장을 직접 보지 않고는 말과 글, 사진만으로 실감하기 어려운 학교라며, IB(국제바칼로레아) 학교를 여러 곳 참관했지만, 이 학교는 다른 IB 학교들과도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고 밝혔다.
'내일교실'의 고요한 역동성
방문단이 가장 먼저 놀란 지점은 '조용함'이었다. 쉬는 시간, 복도로 쏟아져 나오는 아이들의 모습은 여느 학교와 다르지 않았지만, 소리는 전혀 달랐다. 큰 소리로 뛰거나 소리 지르는 아이 없이, 아이들은 소곤소곤 대화하며 복도를 지나갔다. 급식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광주부설초는 장소와 상황에 맞는 목소리 크기를 0에서 4까지 단계로 나눠 학생들이 스스로 지키도록 하는 '소리 규칙'을 운영하며, 복도와 급식실에서는 주로 0~1단계가 적용된다.
주목할 점은 이 규칙이 통제가 아니라 '내면화'를 통해 작동한다는 것이다. 매 학년 초 3주간 진행되는 '다지기' 기간 동안 학생들은 왜 이런 규칙이 필요한지 스스로 생각하는 데서 출발해, 규칙을 지켰을 때 자신과 주변에 일어나는 긍정적 변화를 직접 경험하며 그 이유를 체화한다. 이렇게 내면화된 동기는 시간이 지나며 '긍정적 또래 압력'으로 확산해 학급 전체의 문화로 자리 잡는다.
1교시 아침 독서 시간의 풍경도 참관단의 예상을 뒤집었다. 조금 전까지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아이들이 언제 그랬냐는 듯 자리에 앉아 책에서 눈을 떼지 못했고, 참관단이 들어가도 고개를 돌리는 아이가 거의 없었다. 서주희 경기도교육청 인수위원은 "잠을 자거나 집중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많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실제로 복도 끝에서 끝까지 모든 교실을 살펴보았지만, 딴짓을 하거나 조는 아이를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었다"고 전했다.
수업 시간 풍경은 더 이례적이었다. 교실에 들어서도 교탁도, 서 있는 교사도 언뜻 눈에 띄지 않았다. 한참을 둘러본 뒤에야 아이들 사이에 앉아 있는 교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아이들은 교사의 시선과 무관하게 자기 탐구에 몰두해 있었다. 모의 토론회에서는 토론자들 외의 학생들은 모두 토론자들을 평가하는 글을 써 내려가고 있었다.
독일에서 IB 학교 교사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서주희 위원은 "교실에서 자신이 눈을 돌리는 순간 아이들이 제멋대로 떠들기 시작했는데, 교사가 보고 있지 않아도 딴짓을 하거나 조는 학생이 없다는 데 인지 부조화를 느꼈다"며 "이는 교사 개인의 역량이 아니라 시스템이 만들어내는 결과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는 광주부설초가 구현한 '설계-탐구-평가' 수업 구조 덕분이다. 교사는 학기 시작 전 학년별로 머리를 맞대어 수준 높은 탐구 질문을 설계하고, 학생은 이 질문을 바탕으로 스스로 탐구 방향을 정하며, 자신이 설계한 평가 기준(루브릭)에 따라 스스로와 서로를 평가한다. 학생이 '나도 선생님'이 돼 친구를 가르치는 또래 교사 수업도 일상적으로 이뤄진다.
특히 교실에서는 교사가 제작한 PPT나 화려한 시청각 자료를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교사는 학생의 관심을 순간적으로 끌기 위한 자료보다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탐구 질문을 설계하는 데 집중한다. 학년별 교사들은 학기 시작 전 함께 교육과정을 분석하고 학생의 사고를 촉진할 핵심 질문을 만든다. 수업에서 교사는 분필로 칠판에 탐구 질문 하나를 적을 뿐, 학생들이 텍스트와 자료를 읽고 직접 의미를 구성하도록 한다. 교사들이 PPT 제작과 일회성 활동 준비에 사용하는 시간을 줄이면서 학생의 글과 탐구 과정에 피드백을 제공하는 시간은 늘어났다.
학생 주도 수업이 교사의 업무 경감으로 이어지다
학생 주도 수업은 교사가 준비와 평가를 모두 떠안는 방식으로 운영될 경우 오히려 교사의 부담을 늘릴 수 있다. 광주교대광주부설초가 주목받는 이유는 학생 주도성과 교사의 지속가능성을 하나의 학교 운영 체계 안에서 함께 구현했다는 데 있다.
광주부설초의 하루는 오전 7시 40분, 280여 명이 참여하는 '아침 늘봄학교'로 시작된다. 축구, 피구 같은 스포츠부터 가야금, 오케스트라 같은 예술 프로그램까지 다양하게 운영되며, 맞벌이 가정의 돌봄 수요와 학생의 신체·정서적 욕구를 함께 충족시킨다.
담임교사는 8시 40분 출근해 1교시 독서 시간 동안 학생들의 '내일교실 플래너'와 '내일북'에 서술형 피드백을 적어준다. 이 개별 피드백은 정규 수업 시간에도 이어지는데, 채점과 첨삭을 방과 후에 몰아서 처리하지 않고 수업시간 중에 상당 부분 마칠 수 있다. 수업시간 내에 평가와 피드백이 완결되는 구조 덕분에 교사들은 수업이 끝나면 조퇴가 가능할 만큼 유연한 복무를 누린다.
정종문 교장은 '학생의 탐구 역량 강화'라는 원칙 아래 과학대회, 축제 등 일회성 학교 행사를 전면 폐지하고, 그 교육적 목적을 정규 수업 안에 녹여냈다. 각종 행사를 없앴지만, 평상시 수업에 다양한 활동이 매우 많고 이를 상시 공개하기 때문에 '일상의 행사화'를 구현하고 있다. 교감과 코디네이터, 부장 교사로 구성된 리더십 지원팀이 공문 등 행정 업무를 전담해 담임교사의 부담을 없앴고, 교육적으로 의미가 낮거나 중복되는 업무를 줄였다.
매주 수요일 열리는 '전문적 학습공동체(전학공)'는 이론이 아닌 교실에 바로 적용 가능한 실천 중심 연수로 운영돼 교사들 사이에서 참여할수록 수업이 쉬워진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교사들은 개인별로 모든 자료를 새롭게 만드는 대신 공동으로 수업을 설계하고 검증된 사례를 공유한다. 전학공에 참여한 교사들 사이에서 "빠지면 손해", "참여할수록 수업이 쉬워진다"는 인식이 형성된 배경이다.
김옥희 교감은 "내일교실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계속 더한 결과가 아니라 학생의 성장에 꼭 필요한 활동을 함께 정선한 결과"라며 "교사가 수업 시간 중에 피드백을 마치고 정해진 시간에 퇴근할 수 있어야 수업 혁신도 지속될 수 있다"고 말했다.
참관자들은 광주교대광주부설초의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교사에 따라 수업의 질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들었다. 특별히 뛰어나거나 헌신적인 한 교사의 교실만 변화한 것이 아니라, 여러 학년과 학급에서 학생들의 몰입과 자기조절, 탐구와 글쓰기 문화가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한 참관자는 "교사로 일할 때 학생들이 수업에 집중하지 않으면 내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자책하곤 했다"며 "경력과 개인적 특성이 다른 교사들의 교실에서도 학생들이 비슷하게 몰입하는 모습을 보고 문제는 개인 교사의 능력이나 희생이 아니라 학교 시스템일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밝혔다. 이어 "학생에게 자유를 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며 "배움과 성장에서 만족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학교문화와 수업 구조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고 평가했다.
서주희 인하대학교 강사는 "평가가 바뀌어야 수업이 바뀐다는 생각에 더해 학교문화가 바뀌어야 교사가 행복하게 가르치고 학생도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했다"며 "개별 교사의 역량에 의존하지 않고 학교 전체의 질을 높이는 모델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문승태 전남광주 인수위 부위원장은 "초등학교 1학년의 주도성이 6학년의 소논문으로 완성되는 모습을 보며 '과연 가능할까' 했던 의구심이 완전히 사라졌다. 교육의 혁신이 교실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분명하게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혜정 교육과혁신연구소장(서울시교육청 공약추진위 위원)은 "전국의 많은 학교가 IB 도입 후 교육은 너무 좋은데 일이 많아져 힘들다는 호소를 하는데, 광주부설초는 '내일교실'이라는 시스템이 안전한 둥지 역할을 하면서 학생 역량은 극대화되면서도 교사 일이 줄어드는 신기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며 "'모든' 아이들이 '모든' 수업에서 망설임 없이 깊이 있는 글을 써 내려가는 모습, 교사가 피드백에 집중하도록 할 수 있게 만드는 구조는 향후 서·논술을 강조하는 공교육에 훌륭한 롤모델을 제공한다"고 평가했다.
광주교대광주부설초는 교육청, 학교, 대학 연구진 등과 교류하며 내일교실의 운영 원리와 수업 사례를 공유할 계획이다. 내일교실이 특정 시설이나 많은 예산을 전제로 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좋은 탐구질문 ▲학년 초 자기조절 문화 형성 ▲학생 주도 탐구 ▲일상적인 글쓰기와 피드백 ▲교사 협업 ▲행정 지원이라는 원리를 학교의 여건에 맞게 구현하는 체계라는 설명이다.
정종문 교장은 "내일교실을 모든 학교가 똑같이 복제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며 "학생이 스스로 배우고 교사가 수업과 피드백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학교의 구조와 문화를 바꾸는 원리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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