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바 알머슨의 그림, 뮤지컬로 살아나다...캔버스 찢고 나온 리나 "우리는 모두 히어로"
2026.07.20 10:48
[파이낸셜뉴스] '행복을 그리는 화가'로 유명한 스페인 작가 에바 알머슨의 따뜻한 그림 세계가 뮤지컬 무대 위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인다. 지난 10일 개막한 가족뮤지컬 '리나, 슈퍼히어로'는 알머슨 특유의 사랑스러운 화풍에 탄탄한 스토리와 음악, 오감으로 즐기는 체험형 전시를 결합해 관객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다.
■알머슨·한국 창작진 1년 협업…그림 속 세계를 무대로
이번 공연은 기존의 그림책을 단순히 무대로 옮긴 것이 아니다. 국내 유수의 창작진이 알머슨의 예술 세계에서 영감을 얻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와 음악을 창작했다. 알머슨이 직접 프로듀서로 참여해 1년 넘게 긴밀히 협업한 결과물이다. 알머슨은 이번 무대를 위해 주인공 리나, 미노, 딩동 등 캐릭터를 직접 그렸을 뿐만 아니라, 무대 디자인과 의상, 소품을 아우르는 시각적 콘셉트까지 진두지휘했다.
작품은 꽃과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열한 살 소녀 리나의 모험을 그린다. 동생 미노가 무심코 버린 쓰레기들이 뭉쳐 탄생한 괴물 '붙어붙어'가 할머니의 꽃밭을 망가뜨리자 리나는 미노, 로봇인형 딩동과 함께 이를 되돌리기 위해 스케치북 속 세계로 뛰어든다.
무대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알머슨의 그림을 그대로 펼쳐놓은 듯한 무대 미술이다. 시그니처 오브제인 '하트 포털'을 중심으로 부드러운 곡선을 살린 무대 세트와 따뜻한 색감의 배경 영상이 장면에 따라 바다와 숲, 꽃밭으로 변신한다.
조재국 연출가는 20일 "작가 특유의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화풍을 무대 위에 살아 숨 쉬게 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며 "소품과 의상, 영상 등 무대를 채우는 모든 시각적 요소의 작은 디테일까지 세심하게 조율했다"고 밝혔다. 조 연출은 가족뮤지컬 '100층짜리 집' '전천당' 등을 작업했다. 극작은 어린이 프로그램 '뽀뽀뽀' '딩동댕 유치원'과 뮤지컬 '전천당' 등을 집필한 박수경 작가가 맡았다.
베어베어, 먹어먹어, 붙어붙어 등 주변 캐릭터까지 사랑스럽다. 특히 쓰레기 괴물 붙어붙어는 귀엽고 친근하게 디자인돼 어린이 관객의 호응이 뜨겁다.
조 연출은 "알머슨의 2D 캐릭터를 입체적인 인형으로 옮기는 과정에서도 원작의 충실한 재현에 초점을 맞췄다"며 "단색 천을 사용하는 대신 원화의 섬세한 붓 터치를 원단에 직접 프린트했다"고 설명했다.
극적인 음악과 배우들의 탄탄한 가창력은 작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공개 오디션에서 약 60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리나 역에 발탁된 유소연을 비롯해 17명의 배우가 노래와 연기, 객석을 넘나드는 퍼포먼스로 관객을 이야기 속으로 이끈다.
'뽀미언니'로 활동해온 유소연은 밝고 청아한 목소리와 따뜻한 이미지가 돋보인다.
유소연은 "리나의 능력은 '따뜻함'과 '배려하는 마음'에 있다"며 "어떤 순간에도 희망을 잃지 않고 주변 친구들의 마음에 깊이 공감하며 움직이는 따뜻한 에너지가 리나의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설명했다.
리나가 스케치북 속 세계로 들어간 뒤 화려한 의상으로 변신하는 장면도 주요 볼거리다. 유소연은 "의상을 입는 순간 정말 무대 위의 '슈퍼히어로 리나'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며 "리나처럼 꽃과 태양, 대자연의 응원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온몸으로 받는 느낌"이라고 했다.
조 연출은 "포근한 선율과 극적인 오케스트레이션을 통해 음악만 들어도 눈앞에 거대한 캔버스가 펼쳐지는 듯한 경험을 선사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작품의 OST는 이미 발매됐다.
■공연 보고 전시 체험까지…"작은 실천이 세상 바꿔"
개막일 객석에는 판교와 용산에서 온 어린이집 단체 관객들이 자리했다. 용산의 한 어린이집은 먼저 알머슨의 그림 전시를 관람한 뒤 아이들의 반응이 좋아 뮤지컬까지 관람했다고 한다. 그림을 통해 리나와 친구들에게 친숙해진 상태에서 공연을 관람한 덕분에 아이들의 몰입과 반응이 한층 컸다고 관계자는 전했다.
어머니의 생일을 맞아 아홉 살 딸과 공연장을 찾은 한 여성 관객은 "3대가 함께 볼 작품을 찾다가 평소 알고 있던 유명 화가의 그림을 뮤지컬로 옮겼다고 해 관람하게 됐다"며 "연출이 돋보였고 무대와 소품 등 곳곳에 볼거리가 풍성했다"고 말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딸과 공연이 끝난 뒤 전시장에서 체험활동에도 참여할 예정이라고 했다.
공연과 함께 운영되는 특별전시는 작품 세계를 무대 밖까지 확장한다. AI 아트 필름과 인터랙티브 콘텐츠 등을 통해 관객이 알머슨의 그림 속으로 들어간 듯한 몰입형 경험을 제공한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앙코르 무대였다. 배우들이 객석으로 직접 뛰어 내려와 아이들과 손바닥을 마주치고 다정하게 눈을 맞췄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완전히 허물어지는 순간, 객석의 아이들 역시 리나와 함께 지구를 구하는 당당한 '슈퍼히어로'가 됐다.
조 연출은 "관객들이 극장을 나서며 '내가 지켜낼 수 있는 푸른 바다와 초록빛 숲'을 마음속에 품고 돌아갔으면 한다"고 바랐다. 한전아트센터에서 8월23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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