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다리밖 2030] ③ 서울에선 돈이 안 모인다…월세에 미래가 막힌 청년들
2026.07.20 07:00
소득 30% 이상 주거비로…'노동소득→자산' 연결고리 끊겨
청년주택 문턱 높아…"공공임대 확대로 자산 형성 기반 회복해야"
(세종=연합뉴스) 오진송 기자 = "지난 5년간 서울에서 살면서 서울이 집이라고 느껴본 적은 없었어요. 그저 방 한 칸을 내어준 느낌이죠. 서울에 발붙이고 살 수 있는 내 집이 있다고 느끼기는 정말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서울 용산구의 9평 남짓한 원룸에서 보증금 1천만원에 월세 70만원을 내며 사는 간호사 황씨(29)는 최근 임차 계약을 1년 연장했다. 구축 빌라라 벌레가 나오고 하수구 냄새가 올라올 때도 있지만 이사를 포기했다. 2년 전 집을 알아볼 때보다 서울 원룸 월세가 크게 올라 지금 수준의 월세로는 비슷한 방을 구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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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월세에 '노동 소득 → 자산' 연결고리 끊겨 황씨의 월급은 미래를 위한 종잣돈이 되기보다는 당장의 월세를 감당하는 데 먼저 쓰였다. 월 소득의 30%가량을 월세와 공과금으로 내고 나면 남은 돈으로 한 달을 버티기에도 빠듯했다.
전북 익산이 고향인 그는 5년 전 상경할 때만 해도 10년 정도 성실히 직장생활을 하면 서울에서 집을 마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기대는 현실 앞에서 점점 멀어졌다.
그는 "제가 사회초년생일 때보다 지금 집값이 훨씬 더 올랐잖아요. 월급 오르는 속도보다 집값 오르는 속도가 너무 빨라서 내 집 마련에 대한 희망이 점점 사라지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현실은 황씨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연합뉴스가 이달 20·30대 청년 11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월세 거주 청년의 54.5%는 소득의 30% 이상을 주거비로 지출한다고 답했다. 월급을 받아도 저축보다 월세를 감당하는 데 급급한 청년이 적지 않다는 의미다.
이러한 현실은 공공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서울연구원의 '2024 서울주거실태조사'에 따르면 월 소득 대비 월 임대료(RIR)가 25%를 넘거나 월 주거비(HCIR)가 월 소득의 30%를 초과하는 주거비 과부담 임차 가구는 64만6천가구로, 임차 가구의 29.2%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청년 가구(39세 이하)는 30만4천가구로 가장 많았으며 전체 과부담 가구의 46.9%를 차지했다.
청년들이 가장 먼저 털어놓은 고민은 '집을 사고 싶다'가 아니라 '돈을 모을 수 없다'는 현실이었다
과거에는 월급을 차곡차곡 모아 종잣돈을 만들고, 전세를 거쳐 내 집을 마련하는 경로를 기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청년들의 월급은 종잣돈보다 월세를 감당하는 데 먼저 쓰이고 있었다. 노동소득이 자산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가 끊기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현실은 청년들의 인식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서울에 거주한다고 응답한 청년 68명 가운데 57명(84.0%)은 향후 5년 안에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이 어렵거나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답했다. 응답자들은 근로소득만으로는 자산을 축적하기 어려운 현실을 공통적으로 토로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청년들은 "주거 비용으로 월급 대부분을 쓰게 될 것", "임금에 비해 주거비용이 워낙 높아 기성세대처럼 잘 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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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자리는 서울에…높은 월세 감수하는 청년들 청년들은 높은 월세에도 서울을 떠날 수 없다고 말했다. 양질의 일자리가 서울에 집중돼 있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연구직으로 일하는 김씨(31)는 서울 생활을 접고 고향인 창원으로 내려갔지만 결국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그는 "본가 근처에서 직장을 구해보려고 했지만 제대로 된 일자리가 없어서 다시 서울에 자리를 잡게 됐다"고 말했다.
처음 서울에 올라왔을 때 주거비는 가장 큰 부담이었다. 그는 첫 직장 인근인 강남에서 집을 구했는데 창원에서는 월세 30만원 안팎에 구할 수 있던 원룸이 서울에서는 60만원을 훌쩍 넘었다.
그는 "공인중개사무소에서는 괜찮은 집이라고 소개해줬지만 너무 낡아서 집이 고장이라도 날까 봐 조심스럽게 생활해야 했다"며 "직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살았지만 '이게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황씨 역시 "서울이 지방보다 훨씬 일자리가 다양하고 급여 차이도 크기 때문에 비싼 월세를 내더라도 서울에서 일하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방에 사는 친구들은 결혼하고 아파트를 마련해 아이를 낳고 사는 게 자연스러운 느낌인데, 서울에서 그렇게 살려면 로또 세 번은 당첨돼야 가능할 것처럼 느껴진다"며 "서울은 같은 나라인데도 다른 세상 같다"고 말했다.
청년들은 일자리를 따라 서울을 선택했지만, 서울에 남을수록 노동소득은 자산이 아닌 월세로 먼저 흘러가는 구조에 갇혔다.
높은 주거비는 청년들의 자산 형성을 늦출 뿐 아니라 삶의 중요한 선택까지 미루게 했다. 연합뉴스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38.4%는 주거 문제 때문에 독립을 미루거나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결혼(20.5%)과 출산(11.6%)을 미루거나 포기했다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서울=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24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앞 한 부동산중개업소에 원룸 매물이 표시돼있다.
이날 부동산 정보 플랫폼 다방이 지난달 자사에 등록된 서울 주요 10개 대학 인근 전용면적 33㎡ 이하 '원룸'의 보증금 1천만원 기준 평균 월세와 관리비를 분석한 결과 월세는 62만2천원, 관리비는 8만2천원으로 집계됐다.
성균관대 인근 지역 원룸의 경우 지난달 평균 월세가 73만8천원으로, 작년 1월(62만5천원) 대비 18.1% 올라 가장 큰 상승 폭을 나타냈다. 2026.2.24
seephoto@yna.co.kr
월세 줄자 비로소 저축…"청년 자산 형성 기반 다져야" 김씨의 삶은 청년주택에 당첨된 뒤 달라졌다.
재작년까지 병원 인근 6평 원룸에서 월세 86만원을 내며 살던 그는 교통비를 아끼려고 웬만하면 걸어 다니고 식사도 4천원짜리 구내식당에서 해결했지만, 월급의 40%에 달하는 월세를 내고 나면 저축할 여력이 없었다.
변화는 작년에 찾아왔다. 청년 민간임대주택에 입주하면서 월세가 45만원으로 줄었고, 그는 상경 4년 만에 비로소 저축을 시작할 수 있게 됐다.
김씨는 "임대주택에 들어가면서 월세가 반으로 줄고 나서야 저축을 시작했고 미래를 생각할 여유도 생겼다"고 말했다.
그러나 높은 당첨의 문턱 때문에 이러한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청년은 많지 않다.
김씨는 "주변 친구들에게도 청년주택을 계속 추천하지만 대부분 당첨되지 못한다"며 "공공임대는 조건이 더 까다롭고 물량이 적어 들어가기가 진짜 어렵다"고 말했다.
황씨 역시 정부가 청년을 대상으로 하는 월세 지원과 공공임대, 민간임대주택 공고가 나올 때마다 지원했지만 번번이 탈락했다.
그는 "나도 넉넉한 형편은 아닌데 소득 기준 때문에 계속 순위에서 밀린다"며 "정부가 청년 주거 지원을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 체감되는 것은 거의 없다"고 토로했다.
설문조사에서도 청년들은 정부가 가장 먼저 추진해야 할 정책으로 '청년 주택 공급 확대'(42.0%)를 꼽았다. 이어 주택구입·전세 금융 지원(25.9%), 공공임대 확대 및 전세 사기 예방(15.2%), 청년 월세 지원 확대(10.7%) 순으로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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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청년들의 높은 주거비 부담을 완화하고 자산 형성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박진백 국토연구원 부동산시장정책연구센터 박사는 청년들이 높은 주거비 부담으로 자산을 형성할 기회를 잃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생애 최초 주택 구입 연령이 계속 높아지는 것은 집값이 소득 상승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오르면서 청년들이 전월세 시장에 머무는 기간이 길어졌기 때문"이라며 "문제는 전월세 가격도 역사적으로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월급의 30∼40%를 주거비로 쓰면 종잣돈을 모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주거비 부담이 커질수록 다른 소비를 줄일 수밖에 없어 개인의 삶의 질은 물론 소비 위축을 통해 거시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했다.
박 박사는 청년들의 자산 형성을 돕기 위해 공공임대주택 공급을 대폭 확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공공임대는 청년들이 과도한 주거비 부담을 덜고 자산을 축적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정책 수단"이라며 "공공임대 거주 기간 동안 자산을 모을 수 있는 기금이나 적립 프로그램 등을 함께 운영해 자산 형성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dind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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