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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도박판’ 만든 레버리지 뒷북 규제, 3000만원 벽 세웠다

2026.07.20 06:04

개인투자자 비명 늘자 예탁금·매매단위 상향
급한 불 껐지만 변동성 줄일 수 있을지 미지수
이재명 대통령이 7월 15일 청와대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경제부처 업무 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단일종목 레버리지를 언급하며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삼성전자·SK하이닉스(삼전닉스)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장지수펀드(ETF)가 국내 증시를 ‘도박판’으로 만들었다는 비판이 들끓자 금융당국이 뒤늦게 칼을 뺐다. 이재명 대통령이 7월 15일 경제 분야 업무 보고에서 단일종목 레버리지를 언급하며 “대책 마련을 서두르라”고 지시한 지 하루 만이다. 단일종목 레버리지는 기초자산의 일간 등락률 2배를 추종하는 파생상품으로 증시 변동성을 키우는 증폭기 역할을 해 상장폐지론까지 일었다.

7월 16일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긴급 시장상황점검회의’(F4 회의)를 열고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레버리지 규제안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8월부터 단일종목 레버리지를 매매하려면 기본예탁금으로 현금 3000만원이 있어야 한다. 기존에는 1000만원 중 70%는 보유한 주식의 가치로 충당할 수 있어 700만원어치의 주식과 300만원 현금이 있으면 투자가 가능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3000만원이 모두 ‘현금’으로 있어야 투자할 수 있다. 필요한 현금이 사실상 최소 3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늘어난 것이다. 금융위원회는 현금 3000만원 기준을 적용하면 현재 약 12조원인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 규모가 출시 초기 수준인 4조~5조원으로 줄어들 것으로 추산했다.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레버리지 투자자 중에는 적은 자금으로 고수익을 추구하는 소액 투자자가 상당수일 것으로 추정되는데, 진입장벽이 높아지는 만큼 투기 광풍을 식히는 급한 불을 끄는 효과가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상품의 위험을 감내할 수 있는 사람들만 들어오도록 진입 규제를 높인 것으로, 소액 개인투자자들의 진입을 원천 차단해 이들은 투자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는 형평성 논란이 일 수 있다.

연합뉴스 제공


11월부터는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은 1주씩 매매할 수 없고 20주씩만 사고팔 수 있게 돼 거래량이 현재보다 줄어든다. 괴리율 관리방식도 강화한다. 괴리율은 ETF의 실제 가치인 순자산가치(NAV)와 시장에서 거래되는 실제 가격(종가) 사이의 차이를 백분율로 나타낸 지표다. 증권사 괴리율 관리의무 기준을 현행 3%에서 2%로 강화하고, 적정괴리율 위반 ETF의 운용사는 신규 ETF 상장 제한을 검토키로 했다.

상품 투자를 위해 이수해야 하는 교육도 기존 2시간에서 3시간으로 늘리고, 새로운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의 신규 상장을 잠정 중단한다. 개인투자자의 상품 매수를 어렵게 만들겠다는 취지지만, 증시 변동성을 줄이는 효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이날 대책 발표 후 한 온라인 주식 투자 커뮤니티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는 전체 응답자 5398명 중 85%(4563명)가 “이번 대책이 효과가 없다”고 답했다.


올해 5월 27일 나온 단일종목 레버리지 16종(인버스 2종 포함)은 홍콩 증시 레버리지 투자자들을 국장으로 복귀시켜 원·달러 환율을 잡겠다는 취지 등으로 도입됐다. 하지만 환율은 못 잡고 시장만 잡았다. 해외 주요 외신도 국내 시장의 극심한 변동성을 연일 보도하며 “섬뜩”, “코스피 니라미(주시)”, “오징어게임 같은 코스피” 등으로 표현하며 레버리지 도입을 ‘정책 실패’로 규정했다.

블룸버그는 레버리지의 잘못된 출시 시점을 주목했다. 한국과 동일한 구조인 홍콩의 SK하이닉스 2배 추종 상품은 올해 270% 올랐지만, 한국 상품은 40% 넘게 급락했다. 블룸버그는 “두 상품의 성패를 가른 것은 종목이 아니라 상장 시점이었다”며 “한국의 레버리지가 도입된 시점은 최악의 타이밍으로, 레버리지 출시는 활활 타오르는 (변동성 높은) 시장에 기름을 부은 것”이라고 평했다. 블룸버그는 워런 버핏이 파생상품을 “대량살상무기”라고 표현했던 말을 전하며, 한국 투자자들의 최근 손실은 버핏의 경고를 다시 떠올리게 한다고 보도했다.

이찬진 금융감독원장도 레버리지 출시 한 달여 만에 열린 간담회에서 “도입 당시 급하게 준비했던 것이 맞다. 어떻게든 드러누워서라도 막았어야 했다”며 실패를 인정했다. 레버리지가 개별 투자자의 손실을 넘어 자본시장을 뒤흔드는 ‘구조적 리스크’로 확산하고 있어서다.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단일종목 레버리지 ETF 중 90% 안팎이 손실 구간에 물려 있어 개인투자자들의 피해가 커지고 있다. 기초자산 가격이 오르내리는 과정에서 손실이 누적되면서 원래 가격으로 돌아가기 어려워지는 ‘음의 복리 효과’ 때문이다. 음의 복리 효과는 손실에 손실이 곱해져 자산이 눈덩이처럼 깎여나가는 것을 말한다. 횡보장에서 레버리지 상품을 장기 보유할 때 피해가 더 커진다. 시장조성자와 외국인은 선물 거래와 단기 매매로 위험을 관리하지만, 개인투자자는 원금 손실 만회를 위해 장기 보유하거나 추가 매수를 하는 경우가 많아 변동성에 더 많이 노출된다.

레버리지는 국내 증시 전반의 생태계도 뒤흔들었다. 단일종목 레버리지가 시장의 유동성을 빨아들이면서 다른 종목은 힘을 받지 못하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6월 한 달간 특별한 이유 없이 코스피·코스닥에서 주가가 하락한 종목이 상장사의 95%에 달한다. 다른 우량 기업으로 들어갈 자금이 레버리지에 쏠리면서 시장의 건전한 기능이 사라졌다. 그 자리는 과도한 진폭과 공포가 메웠다.

올해 들어 코스피 시장에서 매수·매도 사이드카(프로그램매매 매수·매도 호가 효력 정지)는 36번 발동됐다. 지난해의 12배다. 그중 5월 27일 이후 발동된 사이드카는 18번이다. 올해 발동된 사이드카 중 절반이 최근 한 달 반새 몰린 것이다. 해당 기간 서킷 브레이커(거래 일시중단)도 5번 발동됐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투자 업계 관계자는 “상품 출시 전인 5월에도 이미 삼전닉스의 시총이 코스피에서 절반을 넘어선 데다 높은 변동성을 감안하면 (현 상황은) 예측 가능했던 사고로, 단일종목 레버리지는 시장에 나오지 말았어야 했다”며 “특정한 목적성을 갖고 시장을 섣불리 건드리면 실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충분한 검증 없이 성급하게 추진된 레버리지 도입이 투자자 보호망의 허점을 드러냈고, 이를 수습하기 위해 땜질식 처방을 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는 형국”이라고 비판했다.


금투업계는 이번 대책이 레버리지 상품 과열을 충분히 진정시키지 못할 경우 추가 규제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당국도 “시장이 안정되지 않을 경우 추가 보완조치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시장 안정과 투자자 보호, 자본시장 경쟁력이라는 세 가지 목표 중 이번 대책은 투자자 보호에 방점을 찍은 것이라는 게 업계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일각에선 이번 대책에도 효과가 나타나지 않으면 상품의 신규 설정이나 리밸런싱 방식을 직접 제한하는 방안 등이 논의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장기적으로 상품 팽창을 막고 운용과정에서 발생하는 시장 충격을 줄이면서 단기매매를 줄이는 입체적인 방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이준서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정부는 한국 증시와 유사한 구조인 대만이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업체인 TSMC 단일종목 레버리지를 왜 도입하지 않았는지 살폈어야 했다”며 “개인도 단일종목 레버리지가 외인과 기관에 피만 빨리는 상품으로, 굉장히 위험한 상품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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