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전
백일장도 컴퓨터로… 손글씨와 함께 퇴장하는 원고지
2026.07.20 00:09
인쇄용지 생산량 14년 새 36% 뚝
로스쿨 등 수험생만 작성법 배워
최근 원고지를 사려고 서울시내 한 대형 문구점을 찾은 40대 직장인 A씨는 “원고지는 취급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돌아서야 했다. 인근 다른 문구점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A씨는 19일 “더는 문구점에서 살 수 없을 듯해 인터넷 쇼핑몰에서 구매하려 한다”며 “이제 원고지마저 유물인가 싶다”고 말했다.
한때 학생들의 글짓기 숙제 필수품이던 원고지가 문구점에서 자취를 감추고 있다. 손으로 글을 쓰는 문화가 쇠퇴하면서 과거의 필수 학용품이 이제는 시험을 준비할 때나 찾는 문구로 성격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한국제지연합회에 따르면 글쓰기와 출판 등에 쓰이는 국내 인쇄용지 생산량은 2011년 327만t으로 정점을 찍은 뒤 꾸준히 감소해 지난해 208만t으로 36% 줄었다. 반면 택배상자 등에 쓰이는 골판지원지 생산량은 같은 기간 415만t에서 564만t으로 인쇄용지 생산량의 2.7배에 달할 만큼 증가했다.
학교에서는 독후감과 글쓰기 과제는 물론 백일장까지 컴퓨터 작성을 점차 허용하는 분위기여서 손글씨가 설 자리를 잃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한 중학교 교사는 “학생들 가운데 원고지를 아예 써본 적이 없는 경우도 있다”며 “수행평가도 컴퓨터로 작성해 제출하는 경우가 늘면서 손으로 긴 글을 쓸 기회 자체가 많이 줄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학원가에서는 대학 논술전형이나 법학전문대학원 입학시험 등을 앞둔 수험생을 대상으로 원고지 작성법을 가르치는 단기 특강이 운영되기도 한다.
서울 종로구의 한 초등학교 앞 문구점 상인은 “예전에는 학생들이 숙제를 위해 원고지를 많이 찾았지만 지금은 사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며 “노트 등 성인들이 사가던 상품도 판매량이 많이 줄어 취급을 잘 안 하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원고지의 퇴장은 종이 중심의 글쓰기 문화가 달라진 시대상을 보여주는 단면으로 해석된다. 유성호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원고지는 공정성과 규범성이 중요한 입시 현장에서 잔명을 유지하고 있다”며 “원고지가 사라지는 건 기록 문화의 세대교체를 상징하는 장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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